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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BBC방송에 22일 시위대가 ‘난입’하는 소동이 빚어졌다. BBC가 파시스트에 가까운 극우정당 당수를 주요 프로그램에 출연시키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소동 끝에 문제의 프로그램은 예정대로 녹화·방영됐지만, 파시스트 조직·정당과 반대세력 간 충돌은 갈수록 격해지고 있다.
Police clash with protestors at the entrance to the BBC headquarters in west London. (AFP)
Police block the entrance to the BBC headquarters in west London. (AFP)
반이슬람·반이민 파시스트 집단의 부상에 반대하는 시위대 30여명은 이날 극우정당인 영국국민당 닉 그리핀 당수의 방송출연에 항의, BBC방송 런던 본사에 난입해 소동을 벌였다고 BBC와 영국 언론들이 보도했다. 그리핀은 이날 오후 본사 방송센터에서 ‘퀘스천 타임’이라는 시사토론 프로그램 녹화에 참가할 예정이었다. 영국 진보주의자들과 반파시스트 시위대는 공영방송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쌓아온 BBC가 극우파 차별주의자에 전파를 할애해주어서는 안된다며 반대해왔고, 이날 녹화시간 전부터 500여명이 모여 방송국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방송국 경비원들이 차량을 출입시키려고 문을 여는 순간 30여명이 건물 안으로 들어가, 녹화장 밖에서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했다. 스튜디오 안에 있던 그리핀은 예정대로 녹화를 진행했다. 그는 방송에서 “나는 나치가 아닌데 일부 세력이 나를 악마처럼 몰아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날 방송 뒤 영국의 여론은 둘로 갈라졌다. 일부에서는 “BBC는 파시스트의 주장을 그대로 내보낸 것을 사과해야 한다”고 비판했고, 한쪽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였다. BBC방송은 인터넷판 뉴스에 ‘유럽의 미디어들은 극우파를 어떻게 다뤄왔는가’라는 별도의 기사를 싣고 “프랑스의 극우파 정치인 장 마리 르펜의 방송출연에서 보이듯 그들의 입장을 전하는 것 자체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였다. 방송국 밖에서는 그리핀 지지자들이 맞시위를 하기도 했다.
가디언 등은 이날 사건이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며, 영국에서 점점 목소리를 키워가는 극우파·파시스트 세력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울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리핀의 국민당은 유럽연합(EU) 탈퇴, 이민자 축출 등 앞세워온 정당으로, 영국 의회에는 의석이 없지만 지방의회에 진출해 있다. EU탈퇴를 외치면서도 지난 6월 유럽의회 선거에 후보를 내보내 2석을 차지했다. 영국 주요 정당들은 인종주의 성향인 국민당을 정당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고 시민·인권단체들은 신나치 조직으로 규정하며 반대해왔다.
하지만 극우파의 목소리는 경제 침체와 맞물려 갈수록 커지는 추세다. 극우파 조직 ‘잉글랜드방어연맹(EDL)’은 올들어 영국 곳곳에서 시위를 벌이며 무슬림 축출을 주장했다. 지난달에는 버밍엄과 런던의 모스크 앞에서 이슬람 반대를 외치며 시위를 했고, 극우파 남성이 기차에 폭탄을 장착하려다 경찰에 체포되기도 했다. 지난달 웨일즈에서는 EDL을 본뜬 ‘웨일즈방어연맹’이 축구경기장 앞에서 난동을 부렸다.
이들은 과거의 나치가 유대인을 핍박했던 것과 비슷하게 영국 내 무슬림 이민자들을 향해 증오를 퍼붓고 있다. 경제위기에 고용불안이 이어지자 저임금 노동자층을 구성하고 있던 흑인들도 파시스트 집단에 가입하는 양상이다. 한 흑인 시위자는 BBC 인터뷰에서 “내가 여기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듯 우린 인종차별주의자들이 아니다”라면서 “영국인이라고 볼 수 없는 무슬림들을 내보내고자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반파시스트운동가들은 “또다른 형태의 인종주의일 뿐”이라며 정부가 아예 파시스트들의 집회와 조직활동을 금지해야 한다고 말한다. 반파시스트연합의 잭 허포드는 “그들은 모든 무슬림을 테러범으로 몰아붙이며 증오를 확산시키려 하고 있다”면서 경계를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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