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이웃동네, 일본

일본 총선 분석- 릿쿄대 이종원 교수 경향신문 기고

딸기21 2009. 9. 1.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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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이어 일본에서도 ‘변화’를 희구하는 거대한 쓰나미가 정치권을 휩쓸었다. ‘정권교체’를 내건 민주당의 신인 후보들이 수십년간 일본 정치를 주름잡아온 자민당 ‘거물’들을 잇달아 쓰러뜨리는 정치 드라마가 도시 농촌의 구별 없이 전국적으로 펼쳐졌다.

민주당은 총 480석 중 절대안정다수(269석)를 훨씬 넘는 308석을 획득, 유례가 없는 기록적 승리
를 거두었다. 전후 일본 정치 사상 유권자의 직접적 선택에 의해 정권교체가 실현된 최초의 사례다. 1947년과 93년에도 정권교체가 있었지만, 모두 총선거 이후 정당 간 이합집산의 결과였다. 국민의 손으로 반세기 이상 지속돼온 자민당 정치에 종지부를 찍은 ‘선거혁명’이라는 평가가 과장이 아니다.


자민당의 참패에는 역사적, 정책적, 전술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첫째, 큰 역사적 흐름으로서는 메이지(明治) 유신 이래 계속되어 온 관료주도의 중앙집권체제가 커다란 전환기를 맞고 있다.
2차대전 이후 냉전과 경제성장이 불변의 상수로 주어진 상황에서 기본적인 정책결정은 관료체제에 의존한 채 이익 유도와 배분에 전념해 온 것이 자민당 정치의 시스템이었다. 90년대 이후 냉전 종식과 세계화의 도전 속에서 기존의 전제조건이 소멸되면서, 지난 20여년간은 새로운 정치 시스템을 모색하는 시행착오가 반복되었다. 민주당이 표방하는 ‘탈관료’의 시민적 분권적 국가체제, ‘탈냉전’적인 외교지향 등은 이 같은 역사적 추세를 반영하고 있다.
 

둘째, 정책적으로는 시장원리의 신자유주의를 전면에 내세운 고이즈미 준이치로 정권의 구조개혁에 대한 반작용이다. 일본 국민들도 한때는 그의 개혁에 열광했지만 계층 간, 지역 간 격차확대와 지역 공동체의 파괴로 귀결된 ‘개혁’을 경험하면서 신자유주의에 대치되는 새로운 정책의 패러다임을 요구했다. 이번 선거에서는 도시 중하층과 농촌 등 경제적 약자의 ‘반란’이 두드러졌다. 정치학자 야마구치 지로(山口二郞)는 90년대 이후의 ‘개혁’ 논의에 대해 ‘시장화(市場化)’와 ‘시민화(市民化)’라는 두 가지 방향성을 지적하고 있다. 지나친 ‘시장화’에 대한 거부반응과 ‘시민화’에의 요구가 이번 선거에 나타난 민심이라 할 수 있다. 

사실 자민당 정치의 종언은 93년 비자민 연립정권 성립 때 시작되었으며 지난해 후쿠다 야스오 총리의 정권 포기와 아소 다로 정권의 출현 때 예견된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같은 기록적 패배는 아소 총리를 포함한 자민당 지도부의 실언과 실책에 기인하는 부분도 크다. 국민의 불만에 대해 명확하고 체계적인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채 종래의 이익 유도 남발에 급급하는 모습은 세계사적 변화에 대한 자민당의 대응능력의 결여를 인상지울 뿐이었다.

민주당은 국민의 압도적 지지를 얻었다. 그러나 확고한 ‘지지기반’을 형성한 것이 아니다. 따라서 비교적 단기간에 ‘변화’를 실감할 수 있는 정책 성과를 보이지 못하면 단명의 약체정권으로 끝날 수 있다. 우선 내년 7월의 참의원 선거가 당장 넘어야 할 ‘중간평가’가 된다. 

집권 경험이 없기 때문에 참의원 선거 승리로 기반을 다지기까지는 ‘안전운행’을 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그러나 거대한 관료와 기득권층의 저항을 억제하면서 변혁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정치 리더심 하에 ‘속도전’을 전개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관건이 되는 것은 하토야마 유키오 대표와 오자와 이치로 대표대행, 간 나오토 대표대행, 오카다 가쓰야 간사장 등 당 지도부의 단합이다. 민주당은 구사회당 계열 및 자민당 출신 보수정치가, 시민운동가 출신 등 다양한 그룹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집권 가능성이 현실로 다가오면서 정책적으로 수렴되는 경향을 보여왔다. 내각을 비롯해 정부 요직 인사를 잡음과 차질 없이 진행할 수 있을지가 최초의 관문이 될 것이다.

정책적으로 민주당은 연말까지 내년도 예산안을 전면 재검토하면서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책을 구체화하는 등 국내 정책의 개혁에 주력할 것이다. 대미관계 등 외교정책의 전환은 선택지의 폭이 현실적으로 좁고 국내적으로도 분열적 쟁점이라는 면에서 중장기적 과제로 추진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오히려 ‘아시아 외교의 강화’는 경제적인 실리로도 연결되기 때문에 한국 및 중국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 지역외교는 단기적으로도 적극적으로 추진될 가능성이 높다. 납치 문제로 교착상태에 빠진 북·일 교섭을 타개하려는 정책적 관심은 민주당 지도부 내에 적지 않게 존재한다. 가을 이후 북·미관계 진전 여하에 따라서는 북·일관계도 급속히 움직일 가능성이 있다. 

‘탈냉전’과 ‘민주화’라는 거대한 실험 과정에서 일본이 어떠한 모습을 보이는지는 한반도와 동아시아 국제관계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한·일 간에 공통된 과제도 적지 않으며 바람직한 동아시아 지역질서의 형성을 위해서도 한·일 간의 다각적인 협조체제를 구축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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