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은 이날 첫 방문지인 카메룬을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기자들과 간담회를 하면서 “돈이나 콘돔을 나눠주는 것으로는 에이즈가 퍼지는 것을 막을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이 질병을 막는 방법은 영적인 각성”이라며 “콘돔을 권장하는 행위는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킬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로마 가톨릭은 콘돔 사용을 비롯한 피임이 신의 섭리에 위배된다며 반대하는 입장을 견지해왔습니다. 특히 가톨릭 내에서도 보수적인 인물로 꼽혀온 베네딕토16세는 2005년 즉위 직후에도 아프리카 주교들을 맞아 대화하면서 콘돔 반대론을 설파했었지요.
아프리카 내 가톨릭 신자는 약 1850만명으로, 전체 대륙 인구의 20%를 차지합니다. 최근 이슬람과 토속종교들을 누르고 가톨릭 인구가 늘어나는 추세라고 합니다. 교황청은 엿새에 걸쳐 이뤄질 교황의 이번 순방이 아프리카에서 교세를 확장할 계기가 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구호단체들은 특히 교황이 기아에 시달리는 아프리카에 대한 세계인의 관심을 환기시키는데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해왔습니다. 그런 차에 교황이 또다시 ‘콘돔 반대론’부터 꺼내자, 아프리카 에이즈의 심각성을 무시한 것이라는 반발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영국 가디언지는 “교황의 콘돔 반대론은 에이즈 구호기구들을 분노하게 만들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에이즈예방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트리트먼트 액션캠페인’의 레베카 호즈는 “교황이 HIV 확산을 막을 방법을 진지하게 고민한다면 오히려 콘돔 사용을 권장해야 한다”며 “그에겐 아프리카인들의 생명보다 종교적 도그마가 더 중요하다는 걸 드러내보였다”고 비판했습니다. 국제가족계획협회의 케빈 오즈번도 “성생활을 자제하라고 설교하는 것은 에이즈 예방에 도움이 안 된다”고 지적했고요. AP통신은 “아프리카의 가톨릭 사제들과 수녀들조차도 교황청의 콘돔 반대론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현실”이라고 전했습니다.
유엔 에이즈 구호기구(유엔에이즈·UNAIDS) 보고서에 따르면 2007년 현재 세계에는 약 3300만명의 HIV감염자가 있습니다. 그 중 3분의2인 2200만명이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 삽니다.
연간 2100만명에 이르는 세계 에이즈 사망자 중 76%가 이 지역에서 나왔습니다. 사망자 가운데 33만명은 15세 이하 어린이들이며, 이들 역시 대부분 사하라 이남에 살고 있습니다. 이 지역에는 부모를 에이즈로 잃은 이른바 ‘에이즈 고아’가 1140만명에 달합니다. 스와질랜드, 남아공, 레소토, 보츠와나 등은 전체 성인인구의 18~26%가 HIV 감염자여서 국가경제가 초토화될 지경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콘돔을 쓰지 말라고요? 기도나 하고 있으라고요?
특히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는 다른 지역에서와 달리 여성 감염자가 61%로 남성보다 많습니다.
보건전문가들은 일부다처제와 성폭행, 남성들이 콘돔을 기피하는 풍토 등으로 인해 여성 감염자가 많은 것으로 추정합니다. 여성 감염자가 많아지면 태아에게 수직감염되는 비율이 높아져 어린이 환자들이 늘게 되고, 엄마를 에이즈에 빼앗기는 에이즈 고아도 늘어납니다. 이 때문에 국제기구들은 HIV 감염을 막을 가장 저렴하면서도 효과적인 방법으로 콘돔 사용 캠페인을 벌여왔습니다.
교황님, 가는 곳에서마다, 하는 말마다 설화를 빚는 것은 그렇다 쳐도, 이건 수천만명의 생명이 걸린 문제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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