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잠보! 아프리카

수단 대통령 <전범 기소>

딸기21 2009. 3. 5.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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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은 모두 죽이라는 명령을 받았다. 집들을 불태우고 우물에는 독을 풀었다.”

대량학살, 인종청소(제노사이드) 등의 반인도 범죄를 재판하기 위해 세워진 유엔 국제형사재판소(ICC)가 수단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하면서 다르푸르에서 벌어지고 있는 학살 사태에 다시 세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수단 정부군에 속해 다르푸르 작전에 참가했던 한 탈영병은 4일 영국 BBC방송에 출연해 자신을 비롯한 군인들이 저지른 잔혹행위들을 털어놨다.

“상관들이 총을 들고 우리를 감시하면서 아이들까지 사살하라고 명령했다.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숨어있던 아이들을 찾아내 죽였다. 우물에는 독을 타 주민들이 돌아오지 못하게 했다.”

할리드(가명)라는 이 남성은 2002년말부터 1년여 동안 다르푸르 분쟁의 중심지였던 코르마 마을에서 민간인들을 살해하고 몰아내는 ‘작전’을 벌였다고 고백했다. 그는 “여자들을 성폭행하지 않으면 상관들이 우리를 때리고 고문했다”면서 “내가 얼마나 끔찍한 일을 저지르고 다녔는지는 내 가족들도 모른다”고 말했다. 그는 비인간적인 범죄를 더이상 참아낼 수 없어 2003년 탈영해 영국으로 도망쳤다.

아프리카 북부의 산유국인 수단은 아랍계가 주로 거주하는 북부·동부 건조지대와 아프리카계(흑인) 농부들이 주로 거주하는 서부·남부로 나뉜다.
서부 차드 접경지대에 위치한 다르푸르 분쟁의 뿌리는 198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사막이 커지면서 물이 모자라게 된 아랍계 유목부족들은 남쪽으로 밀려내려와 아프리카계 농민들과 충돌하기 시작했다. 농민들을 내몰고 광산을 개발하려던 정부와 대지주들은 아랍계의 횡포를 묵인했다. 

이웃한 리비아와 차드 등지에서 무기가 밀반입되면서, 두 집단의 충돌은 유혈전투로 비화됐다. 정부의 비호를 받아온 아랍계 민병대 ‘잔자위드’는 학살·고문·성폭행·방화·약탈 등 온갖 범죄를 저질렀다. 2003년2월 잔자위드에 맞서 아프리카계 반군이 전투를 시작하면서 내전이 일어났다.

정부는 내전이 벌어지자 다르푸르에 군대를 배치했다. 탈영병의 고백에서 보이듯 반군 소탕을 명분 삼아 투입된 정부군은 잔자위드와 함께 조직적으로 아프리카계 주민들을 공격했다.

지난 6년 동안 다르푸르에서는 30만명이 숨졌고 250만명 이상이 집을 잃고 난민이 됐다. 희생자는 대부분 아프리카계 주민들이었기 때문에, ICC는 이 사태를 ‘인종청소’로 규정하고 있다.
2004년 이후 유엔 인권감시단과 평화유지군이 배치됐지만 혼돈은 가시지 않고 있다. 평화유지군과 유엔 구호차량이 피격당하는 일도 다반사다.  

지난 3일에도 정부군은 반군을 잡는다며 난민촌들을 공격했다. 정부군과 잔자위드의 공격 때마다 난민 수만명이 우르르 도망쳤다 되돌아오는 일이 곳곳에서 반복되고 있다. 2007년부터 다르푸르 사태를 조사해온 ICC는 알 바시르 대통령이 모든 범죄의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알 바시르 체포' 가능할까

국제형사재판소(ICC)가 다르푸르 반인도범죄의 책임을 묻기 위해 오마르 알 바시르 수단 대통령 체포영장을 발부하자 국제사회의 반응은 양분됐다. 아랍국들은 반발한 반면 미국을 비롯한 서방은 환영했다. 미국 버락 오바마 정부는 다르푸르 사태를 풀기 위해 적극 개입할 것임을 시사해왔다. 그러나 유럽, 중국, 러시아 등이 제각각 다른 다르푸르 셈법을 갖고 있어, 오바마 정부에는 또 하나의 외교적 난제가 될 것이라는 관측도 많다.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4일 영장 발부 소식이 전해지자 “알 바시르 대통령이 ICC에 맞서 싸우려 한다면 법정에 나와야 할 것”이라며 ICC 조치에 대한 지지를 분명히했다. 로버트 기브스 백악관 대변인은 알 바시르 대통령을 명시하지는 않은 채 “다르푸르에서 만행을 저지른 사람에게는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만 말했다.
앞서 오바마 정부는 지난달 다르푸르 사태에 대한 세부조사가 끝나는대로 담당 특사를 파견할 것이라 밝혔었다. 미국은 조지 W 부시 행정부 시절 다르푸르 문제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지만 오바마 정부는 현재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반인도범죄의 대표적인 사례로 보고 적극적인 해결 의지를 피력해왔다. 




Sudanese President Omar Al-Beshir (centre) attends a mass demonstration in Khartoum.
Beshir joined a mass rally in Khartoum in protest at the international arrest warrant issued against him
for alleged war crimes in Darfur. (AFP/Ashraf Shazly)


하지만 아랍권은 ICC 영장발부에 강력 반발하고 있다. 아랍연맹은 이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긴급 외무장관회담을 소집했으며, 유엔에 항의단을 파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아랍연맹을 이끄는 이집트는 유엔에 ICC의 영장집행을 보류하도록 요청할 계획이라고 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
수단 정부는 ICC의 결정을 “신식민주의”라고 맹비난하면서 다르푸르에서 활동하는 서방 구호기구들에 추방명령을 내렸다. 아랍뉴스 등 아랍권 언론들은 “무리한 영장 발부 때문에 다르푸르 인권 상황만 더 나빠지게 됐다”고 보도했다.
현재로서는 알 바시르가 전격 체포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 그는 이달 중 카타르에서 열리는 아랍정상회담에 예정대로 참석키로 했다. 유엔 결의안에 따라 ICC 협약 가입국들은 ICC 결정을 존중해야 하지만 아랍국들이 알 바시르 체포에 협조할 것 같지는 않다.

알 바시르가 미국 등 서방의 압력 속에서도 버틸수 있는 데에는 중국과 러시아가 뒤에 있기 때문이다. 수단은 석유수출국기구(OPEC) 가입을 앞두고 옵서버로 활동하고 있는 산유국이다. 수단과 긴밀한 에너지 협력관계를 맺고 있는 중국은 ICC 조치에 반대 입장을 명확히 밝혔고, 러시아도 불편함을 감추지 않았다.
알 바시르를 비난하는 미국은 정작 ICC 협약에 가입하지도 않은 상태다. ICC는 당분간 알 바시르의 신병을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이미 기소된 수단 전범 피의자들의 재판을 진행하며 조사를 계속할 것으로 보인다. 옛유고연방전범재판소가 세르비아 전범 라도반 카라지치를 궐석재판 형식으로 기소했듯, ICC가 신병 확보 이전에 알 바시르를 기소할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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