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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혁명’ 30년, 기로의 이란

딸기21 2009. 1. 15.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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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가자 공격에 대해 중동의 어느 나라보다 격앙된 목소리로 비난을 퍼붓는 곳은 이란이다. 마무드 아흐마디네자드 대통령과 아야툴라 알리 하메네이 최고종교지도자 등 이란 지도부는 이스라엘을 연일 비판하고 있다. ‘팔레스타인의 벗’을 자처해온 이란은 이집트가 휴전협상 중재에 미온적으로 나선다고 질타하고 이슬람권에 이스라엘 제품 보이콧 등을 촉구하면서 역내에서 발언권을 높이려 애쓰고 있다고 AFP통신 등이 14일 보도했다.
같은 날 이란 언론들은 사법부 발표를 인용, 동북부 마슈하드 지역에서 간통과 살인을 저지른 남성 2명이 죽을 때까지 돌팔매질을 당하는 극형에 처해졌다고 보도했다. 미국과 이스라엘에 맞서는 이슬람권의 투사, 그러나 내부적으로는 민주주의 탄압과 인권침해·사회통제가 계속되고 있는 것이 ‘이슬람혁명 30주년’을 맞은 이란의 두 모습이다.

ㆍ‘反미·反이 투사’ ‘억압적인 통치’ 두 얼굴
ㆍ오바마, 강공 일변도 탈피 양면전략 예상
ㆍ6월 대선 개혁파 승리땐 대미관계 ‘숨통’


호메이니 혁명 30년

1979년 아야툴라 루흘라 호메이니가 이끈 이슬람혁명으로 파흘라비(팔레비) 왕조의 마지막 왕 레자 샤가 망명한 지 오는 16일로 30년이 된다. 이란 국영 IRNA통신은 혁명을 다룬 영화와 혁명 성과를 되돌아보는 대규모 심포지엄 같은 기념행사들을 연일 소개하고 있다. 사파르 하란디 문화·이슬람장관 등 각료들은 “이슬람 혁명은 이란 만이 아닌 세계를 위한 혁명이었다”며 혁명 예찬 발언들을 쏟아내고 있다.

중동에서 미국의 이해관계를 대변해왔던 파흘라비 독재왕정을 몰아낸 호메이니의 혁명은 실제로 미국의 세계패권에 일격을 가한 사건이었다. 냉전이 한창이던 당시에 이란 혁명세력은 미·소 모두를 거부하고 이슬람이라는 정체성을 내세우며 그들만의 ‘제3의 길’을 택했다. 이란 혁명은 중동 아랍권 친미국가들에도 큰 충격을 안겼다. 이집트와 사우디아라비아 등 친미 독재정권들은 혁명 열기를 차단하기 위해 부심했으며, 이라크가 이란을 공격하자 미국을 거들어 이라크를 지원하기도 했다.
이슬람 혁명 이후 이란은 ‘악마’로 묘사됐고 이슬람권에서도 외톨이가 됐다. 석유 매장량 세계3위, 천연가스 매장량 세계 2위, 면적 165만㎢의 대국 이란은 세계 무대에서 고립된 채 중동의 맹주에서 잠자는 거인으로 전락했다.



개혁바람과 반동

내부적으로도 혁명은 굴절과 왜곡을 겪었다. 민중 혁명은 곧바로 민중을 배신했으며 시아파 성직자들이 3권을 독차지했다. 이들은 이슬람 샤리아(성법)를 극보수주의적으로 해석해 여성을 차별하고 사회적 자유를 억압했으며 반정부 세력을 탄압하는 빌미로 삼았다.
혁명정신을 내세운 민병대와 비밀 정보기관들은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반체제 인사들에 대한 고문·살해를 일삼았다. 경제는 미국의 봉쇄 속에 무너졌다. 영국의 이란 전문가 잘랄 알라비는 미들이스트 온라인에 기고한 글에서 “79년 혁명은 친미 독재왕정을 제거해 미국의 영향력을 지우고 민주주의를 이루기 위한 것이었으나 두 가지 목적을 달성하는데 모두 실패했다”면서 “여전히 미국과 서방은 이란 정치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있고 민주주의의 완성은 요원하다”고 지적했다.

역설적이지만 거기에서 희망이 솟아나기도 했다. 90년대 이후 테헤란에는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경제난이 심해지자 일하는 여성은 오히려 늘었고, 여성의 대학진학률이 남성들보다 높아졌다. 이슬람 세력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사회구조가 생겨난 것이다.
이같은 변화는 개혁파 모하마드 하타미의 8년 집권으로 이어졌다. 하타미는 15세이상 젊은 유권자들의 투표권을 인정한 선거법 덕에 97년 여성·젊은층 유권자들의 몰표를 얻어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러나 하타미가 보수적인 사법부에 발목 잡혀 가시적인 개혁 성과를 내지 못하고, 에너지 산업 개방의 혜택을 소수 엘리트들이 독점하자 국민들이 실망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개혁 피로감에 빠진 유권자들은 2005년 대선에서 보수 강경파 아흐마디네자드를 선택했다.

기로에 선 이란

역설적이지만 신정(神政) 체제인 이란은 중동에서 가장 ‘민주적’인 나라다. 최고종교지도자가 군 통수권을 갖고 수시로 비판세력을 탄압하는 등 보수파들의 준동이 반복되고는 있지만 최소한의 절차적 민주주의는 보장된다. 최소한 선거로 정권을 바꿀 수 있는 나라라는 것이다.
개혁파와 보수파는 국가의 방향이 걸린 대선을 통해 치열한 투쟁을 벌이고 있다. 오는 6월12일 대선에서는 또 한 차례 보-혁 대결이 펼쳐질 전망이다. 8년 개혁정권의 성과를 무위로 돌리고 미국과의 대결을 고수하려는 보수파들과, 대미관계를 개선하고 개방으로 나아가자는 개혁파 간 힘겨루기가 예상된다. 로이터통신은 앞서 12일 하타미가 개혁파들을 결집시키기 위해 3선에 나설 가능성을 시사했다고 보도했다.

미국의 버락 오바마 차기 행정부는 전임 정부와는 다른 대이란 접근법을 시사하고 있다. 오바마는 “이란 지도부와의 대화도 가능하다”고 밝힌 바 있다. 미국은 이란에 대해 강·온 양면 전략을 구사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사이에 위치한 이란이 두 전쟁의 성패에 핵심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란에 개혁파 정부가 다시 들어선다면 불필요한 핵갈등을 지양하고 극적인 대미관계 개선을 이룰 수도 있다. 반면 아마디네자드가 재선돼 보수파 정권이 연장된다면 핵을 둘러싼 지루한 줄다리기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