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유럽이라는 곳

그리스 소요사태 왜 일어났나

딸기21 2008. 12. 10.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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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아테네에서 시작된 반정부 시위가 전국으로 확산되면서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아테네 경찰이 15세 소년을 사살한데 대한 항의로 시작된 시위는 관광지인 크레타섬을 비롯한 주요 도시들로 번졌고, 유럽 주요도시에서도 항의시위가 잇따랐다. 인권탄압과 빈부격차 등 구조적인 문제들로 인해 그리스에서는 반정부 시위와 유혈진압의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시위 사흘째인 8일 아테네 중심 상점가에서는 약탈과 방화가 계속됐다. 학생들과 아나키스트(무정부주의자)들, 좌파 시위대는 상점·차량·은행·관공서를 공격했다. 의사당 주변 신타그마 광장은 밤새도록 최루탄과 화염병이 오가는 등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고 로이터통신 등이 전했다.
대학생들은 경찰의 진압·검거를 피해 아테네 폴리테크닉대학(APU)에 피난처를 만들었다. 이번 시위로 50명 이상이 다쳤고, 150여명이 검거됐다. 코스타스 카라만리스 총리는 경제위기를 들며 시위대에 자제를 호소했으나 반정부 감정이 오히려 격화되고 있다.
시위는 제2의 도시인 테살로니키와 관광중심지 크레타섬, 코르푸섬 등 10여개 주요 도시로 퍼졌다. 영국 런던과 독일 베를린에서도 현지 체류 그리스인들이 대사관 앞에 몰려가 시위 유혈진압에 항의했다.

이번 사태는 지난 6일 밤 경찰이 아테네 외곽 엑사르키아에서 아나키스트들의 반정부 시위에 참가했던 것으로 보이는 15세 소년 알렉산드로스 그리고로풀로스를 사살하면서 촉발됐다.
엑사르키아는 저소득층 아파트 밀집지역으로, 아나키스트들의 근거지다. 그리스의 아나키즘·좌파 운동은 1960~70년대 군사독재정권에 맞선 투쟁을 통해 기반을 닦았고 지금까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1973년 11월 17일 군정은 APU의 학생 시위대를 학살했다. 이후 해마다 그 날이 되면 당시의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집회가 열린다. 올해도 어김없이 11·17 학살 추모 집회가 열렸는데, 특히 이번에는 경제난과 맞물려 광범위한 반정부 시위로 확대됐다. 카라만리스 총리가 이끄는 우파 정권의 경제정책 실패로 금융위기가 일어난데다 최근 각료들의 부동산 관련 비리까지 드러나 반정부 정서가 고조된 시점이었다.

당국은 소년을 사살한 경찰 2명을 기소하고 사태를 무마하려 했으나 격앙된 여론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아테네에서는 1985년에도 15세 소년이 경찰에 사살돼 대규모 소요로 번진 바 있다. 이번 사건은 당시와 매우 비슷하다. 시민들은 “정부와 경찰이 국민의 생명을 우습게 알기 때문에 번번이 이런 일이 일어난다”고 비판했다. 게오르그 파판드레우 사회당수는 “이번 사건은 전형적인 국가폭력 사례”라며 국민들의 궐기를 촉구했다.
공산당과 좌파 조직들도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는 “도심 약탈을 비판하는 시민들도 심정적으로는 젊은 층과 아나키스트들의 시위에 동조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번 소요의 배경에는 공권력의 폭력에 대한 반발과 함께, 극심한 빈부격차에 대한 항의도 들어있다.
엑사르키아 주민들은 “가난한 사람, 약한 사람이 언제나 희생양이 된다”며 분노했다. 시위대는 유럽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도심 호화상점가를 약탈하고, 신타그마 광장에 위치한 아테네플라자와 그란데 브레타뉴 등 고급호텔에 돌을 던지고 유리창을 부쉈다. 또 외국계 은행 시설을 공격하는 등 반자본주의 시위 양상을 보이고 있다고 현지 언론들은 전했다.

노조, 야당도 총리 사임 요구

그리스 소요사태가 더욱 번져가고 있다. 양대 노조연맹이 총파업을 선언하고 야당들이 나서 총리 사퇴와 조기 총선을 요구하면서 우파 정권은 궁지에 몰렸다. 15세 소년의 죽음으로 촉발된 학생·좌파 시위는 총체적인 정부 퇴진운동으로 확대되고 있다. 전국의 항공망·철도교통도 차질을 빚고 있다.

양대 노조단체인 일반노동자연맹(GSEE)과 공공노조최고협의회(ADEDY)는 코스타스 카라만리스 총리의 사임을 요구하며 10일 총파업에 들어간다. 양대 노조는 그리스 전체 노동력의 절반인 250만명을 회원으로 보유하고 있다. 두 노조는 글로벌 금융위기로 서민들의 고통이 가중되고 있다면서 공공 지출 확대와 임금인상을 요구했다. 두 노조는 지난 3월에도 우파 정부가 내놓은 연금개혁안이 반노동자 성격을 띠고 있다며 총파업과 대규모 반대시위를 벌였었다.

파업을 앞두고 올림픽항공과 에게항공 등 항공사들은 국내선 주요 노선 운항을 잇달아 취소했다. 철도·페리선 운항도 차질을 빚기 시작했다. 아테네 시내 교통도 마비되고 있다.
정부는 최대 수입원인 관광산업에 해를 미쳐서는 안된다며 파업 철회를 촉구했으나, 공공부문 노동자들까지 대거 시위에 참가하면서 관공서 업무까지 중단되고 있다고 BBC는 전했다. 아테네 도심은 계속 불길에 휩싸여 있다. 현지언론들은 “시내 곳곳에서 시위대가 쳐놓은 바리케이드가 불타고 있고 공공시설·상가의 방화와 약탈이 계속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사회당 등 야당들은 총리 사임과 조기총선을 요구하고 나섰다. 게오르그 파판드레우 사회당수는 “국민의 신뢰를 잃은 현 정부는 위기를 타개할 능력이 없다”며 총리의 결단을 촉구했다. 9일 발표된 여론조사에서는 사회당 지지율이 집권 신민주당(ND) 지지율을 4.8%포인트 차이로 앞섰다.
ND 정부는 지난해 여름 국토 절반을 태운 산불로 한 차례 위기에 몰렸고, 지난 1월에는 문화유산 관리 총책임자의 섹스·부패 스캔들이 터져 곤욕을 치렀다. 지난달에는 카라만리스 총리 최측근의 비리가 폭로된데다 정부-정교회 간 부동산 불법거래 사실이 드러나 비난이 빗발쳤다. 설상가상으로 ND 내에서 총리 파와 반(反) 총리 파 간 내분까지 일어났다.
카라만리스 총리는 “사임이나 조기총선은 없다”며 야당과 시위대의 요구를 일축했으나, 정국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어 앞날이 불투명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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