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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일기/ 장석과 사당 나무

딸기21 2008. 12. 7.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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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과 사당 나무

28. 석(石)이라는 목수가 제(齊)나라로 가다가 곡원(曲轅)이라는 곳에 이르러 토지신을 모신 사당의 상수리나무를 보았습니다. 나무의 크기는 소 수천 마리를 가릴 만했고 둥치는 백 아름, 높이는 산을 굽어볼 정도였습니다. 맨 아랫가지가 바닥에서 열 길쯤 올라가 벋었는데, 거기에는 통배를 만들 수 있는 가지만 해도 여남은 개가 되었습니다. 구경꾼들이 모여 장터를 이루었는데 목수 석(石)은 그것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가 버렸습니다.

29. 제자가 한동안 보고 나서 석에게 달려가서 물었습니다. “제가 그 동안 도끼를 들고 선생님을 따라다녔지만 재목감으로 이처럼 훌륭한 나무를 아직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눈여겨 보시지도 않고 지나치시니 어인 일이십니까?"
“됐네. 거기에 대해서는 더 말을 말게. 쓸모가 없는 나무야. 그 것으로 배를 만들면 가라앉고, 관을 짜면 곧 썩고, 그릇을 만들면 쉬 부서지고, 문을 짜면 수액이 흐르고, 기둥을 만들어 세우면 좀이 슬 것이니, 재목이 못 돼. 아무짝에도 못 써. 그러니까 저렇게 오래 살 수 있었던거야.”

30. 목수 석이 집으로 돌아오자, 사당 상수리나무가 꿈에 나타나서 말했습니다. “그대는 나를 무엇에다 비교하려는고. 저 좋다는 나무들에다 비기는가? 아가위나무, 참배나무, 귤냐무, 유자나무 따위? 열매가 익으면 뜯기고 욕을 당하지. 큰 가지는 꺾이고, 작은 가지는 찢기고. 그런 니무들은 자기들의 [열매 맺는] 재능 때문에 삶이 비참하지. 하늘이 준 나이를 다 못 살고 도중에서 죽는 법이니, 스스로 세상살이에서 희생을 자초한 셈이라. 모든 것이 다 이와 같은 것이지.

31. 나는 오래전부터 내가 쓸모 없기를 바랐네.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멈기고 이제야 완전히 그리 되었으니, 그것이 나의 큰 쓸모일세. 내가 쓸모가 있었더라면, 이처럼 클 수 있었겠는가? 또, 그대나 나나 한낱 하찮은 사물에 지나지 않는데 어찌 그대는 상대방만을 하찮다고 한단 말인가? 그대처럼 죽을 날이 가까운 쓸모 없는 인간이 어찌 쓸모 없는 나무 운운한단 말인가?"

32. 석이 깨어나 그 꿈 이야기를 하자 제자가 물었습니다. “그 것이 그렇게 쓸모 없기를 바랐다면, 왜 사당 나무 노릇은 하는 걸까요?"
“쉬! 조용하게. 저 나무는 그냥 [한 가지 방편으로] 사당에 의지할 뿐이야. 사람들은 그 진의도 알지 못하고 욕을 하고 있지 [저렇게 생각이 깊은 나무는] 설령 사당 나무가 되지 않았더라도 [다른 방법으로] 잘라지 않을 수 있었을 것이다. 저 나무가 자기를 보전하는 방법은 우리 사람들과 다르지. 보통의 판단 기준으로 그것을 떠받든다거나 한다면, 뭔가 빗나간 것 아니겠는가?"

거목(巨木)과 신인(神人)

33. 남백자기가 상구에 놀라 갔다가 엄청나게 큰 나무를 보았는데, 네 마리 말이 끄는 수레 천 대를 매어 두어도 나무 그늘에 가려 보이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자기가 말했습니다. “이 어찌된 나무인가? 반드시 특별한 재목이겠군."
그러나 위로 가지를 올려다보니 모두 꾸불꾸불하여 마룻대나 들보 감도 아니었고, 아래로 큰 둥치를 보니 속이 뚫리고 갈라져 널 감도 아니었습니다. 잎을 핥으면 입이 부르터 상처가 나고, 그 냄새를 맡으면 사흘 동안 취해서 깨어나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과연 재목이 못 될 나무로구나. 그러니 이렇게 크게 자랐지. 아, 신인도 이처럼 재목감이 못 되는 것을."

나무들의 재난과 점박이 소의 행복

34. 송(宋) 나라 형씨라는 곳은 개오동나무, 잣나무, 뽕나무가 잘 자라는 곳이었습니다. 굵기가 한 움큼이 넘는 것은 원숭이 매어 두는 말뚝 만드는 사람들이 베어 가고, 서너 아름 되는 것은 집 짓는 이가 마룻대 감으로 베어 가고, 일여덟 아름 되는 것은 귀족이나 부상들이 널 감으로 베어 가 주어진 수명을 다 누리지 못하고 도끼에 찍혀 죽었습니다. 이것은 스스로 재목감이 됨으로 당한 재난입니다.
이마에 흰 점이 박힌 소나 코가 젖혀진 돼지, 치질 앓는 사람은 황하 신의 제물로 바칠 수가 없습니다. 무당들은 이것들을 상서(祚瑞)롭지 못한 것으로 여기지만 신인들은 오히려 이를 크게 상서로운 것으로 여깁니다.


그래서 아침 일찍 일어나는 벌레는 일찍 먹히고, 모난 돌은 정 맞고, 내일의 할 일을 오늘로 땡기면 안 되는 법이다. 이럴 때 보면 장자는 똑똑하다. 그리고 나무는 더 똑똑하다. 문제는 '처세'를 하려고 세상을 사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잡아 먹히고 정 맞으면 안 되지만 때로는 아프고 다치면서도 해야할 일들이 있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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