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잠보! 아프리카

내 손의 금반지에 피가 묻어 있다면

딸기21 2008. 8. 18.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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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년 동안 금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전세계에 금 캐기 바람이 불었습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에는 신판 골드러시가 줄을 잇고,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도 금광 산업이 저렴한 노동력을 바탕으로 다시 뜨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안정적인 투자수단으로 각광받는 금의 유통 이면에 처절한 아동노동이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있지 않습니다.
AP통신은 6개월여에 걸쳐 서아프리카 최빈국 기니에서 스위스 제네바의 초대형 은행으로 이어지는 ‘금의 이동경로’를 추적해 최근 보도했습니다(아래 사진들은 모두 AP 사진들입니다). 아프리카의 어린 소년이 돌가루와 수은을 마셔가며 건진 금부스러기가 스위스 은행의 ‘표준형 금괴’로 변해가는 과정은 글로벌 경제의 흔하디 흔한 단면 중 하나일 뿐입니다.


# 기니


살리우(12)는 서아프리카 기니의 시골마을에 사는 소년이랍니다. 마을에 단 한 명 뿐이던 교사가 3년 전 떠나버리면서 살리우는 학교 다니기를 그만뒀습니다.
살리우는 이른 새벽 옷가지를 싸서 머리 위에 동여매고 금광에서 일할 아이들을 모으러 온 모집꾼을 따라 나섭니다. 살리우네 마을에선 염소를 치고 물을 긷는 것은 너댓살 꼬맹이들의 몫입니다. 살리우 만한 아이들은 더 많은 돈을 벌어와야 한다는군요.
한 마을 소년 2명과 함께, 살리우는 일주일 동안 160㎞를 걸어서 국경을 넘어갑니다. 모집꾼은 하루에 2달러를 준다고 했습니다. 플라스틱 샌들이 너덜너덜해질 때쯤 멀리서 망치질 소리가 들려옵니다. 키큰 풀, 덤불들이 잘려나간 곳이 보입니다. 눈 앞에 먼지바람이 자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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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텐코토

살리우와 친구들이 도착한 곳은 말리의 금광마을 텐코토입니다.
원뿔 모양의 천막집들 안엔 매트리스가 널려있습니다. 10㎞정도 떨어진 곳에서 남자들과 날렵한 소년들이 30~50m 깊이의 구덩이를 파고 들어가 금 원광(原鑛)이 섞여있는 돌덩이를 캐내옵니다.
살리우를 데려온 ‘보스’는 남자들이 원광을 가져가고 남은 돌덩이들을 헐값에 사들입니다. 보스에 고용된 사람들은 무쇠바퀴로 몇시간씩 돌을 빻아 밀가루처럼 고운 가루로 만듭니다. 먼지가 온몸에 달라붙고 목구멍, 콧구멍에 들이차겠지요.
살리우는 돌가루를 체로 거른 뒤 플라스틱 통에 붓습니다. 그 안에 수은을 부어가며 맨손으로 문지르고 휘젓습니다. 살리우는 수은이 자석처럼 금가루를 끌어모은다는 것만 알 뿐, 뇌와 장기를 파괴하고 종양과 장애와 실명을 불러오는 것은 알지 못합니다.
살리우의 통에서 M&M 초콜릿 한 알 크기의 금이 모입니다. 보스는 이것을 받아들고 숯불에 넣어 수은을 증발시킵니다. 은빛의 알갱이가 화려한 금색으로 바뀌는 동안, 수은이 타는 지독한 냄새가 코를 찌르지요. 식사시간이 되자 살리우는 수은이 가라앉아있는 흙탕물에 손을 한번 헹구고 주먹밥을 받아 입안에 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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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마코

어린 ‘광부’들은 보스 손에 꽉 잡혀 있고, 보스들은 중간상들 손 안에 있습니다.
중간상들은 일자리 없는 남자들에게 돈을 빌려줘 도구와 장비를 사도록 한 뒤 살리우 같은 아이들을 고용해 금가루를 모으게 합니다. 살리우의 보스는 야쿠바 둠비아라는 중간상에게 매여 있습니다.
중간상들은 크기가 작고 모양도 형편 없는 ‘부시 골드(bush gold·관목지대 무허가 금광에서 캐낸 금)’를 1g에 19달러 주고 사들입니다. 중간상이 보스들에게서 금 1㎏(약 32온스)을 받아드는 데엔 약 한달이 걸린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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둠비아는 짚락(Ziploc) 비닐봉지에 금을 넣은 뒤 나흘 동안 오토바이를 타고 달려 말리의 수도 바마코로 갑니다. 강도들이 많으니 ‘금 배달’을 하는 동안 총은 필수라고 합니다.
바마코 시내 중앙광장에 있는 허름한 건물 2층 사무실에 둠비아 같은 중간상들을 70명 가량 거느린 금 상인 판타마디 트라오레의 사무실이 있습니다. 말리의 중간상들은 트라오레를 비롯한 5명의 바마코 상인들에게 대부분 묶여 있습니다. 


트라오레는 둠비아에게서 받아든 비닐봉지에 둠비아의 이름과 금 무게가 적힌 포스트잇을 붙인 뒤, g당 22.4달러를 지불합니다. 1㎏을 넘겼으니 둠비아의 손에 떨어진 돈은 2만2400달러. 둠비아는 다시 금을 모으러 어린 광부들이 있는 텐코토로 돌아갑니다.

# 제네바

트라오레는 사무실 아래 제련소에서 금 부스러기를 녹여 울퉁불퉁한 금괴로 만든 다음 바(Bah)라는 이름으로만 불리는 무역상에게 보냅니다. 바는 유럽으로의 수출을 독점하고 있습니다. 트라오레는 한달에 약 80㎏의 금을 바에게 넘긴다고 합니다.
바는 ㎏당 11달러 정도를 정부에 세금으로 내고, 별도로 6%의 공항세를 낸 뒤 금괴를 스위스 제네바로 실어나릅니다. 아동노동에 대한 바의 입장은 간단합니다. “나는 상인일 뿐, 금광엔 가본 적도 없고, 아이들과는 아무 상관없다.”
바는 바마코에서 제네바로 비행기를 타고 오가면서 한번에 3~5㎏ 씩 금을 실어나릅니다. 2003년1월부터 올 3월까지 5년여 동안 바는 총 800㎏의 금괴를 ‘수출’했습니다. 현 시세로 환산하면 2200만달러 어치가 된다는군요. 바는 제네바의 공항에서 스위스 수입업체에 금을 넘긴 뒤 곧바로 바마코로 돌아갑니다. 


바에게서 금을 사들인 것은 데카핀SA와 통화연구소(MI)라는 2개의 수입회사입니다. 이제 살리우의 고사리손에서 나온 금은 현란한 국제 금시장의 일부로 편입됐습니다.
데카핀의 경영자 유다 레온 모랄리는 “아동노동에 대해서는 모른다”고 주장했습니다. 데카핀은 세계최대 금 제련소 중의 하나인 발캄비SA 제련소에서 금을 ‘표준형 금괴’로 만든 뒤, 거대은행 UBS의 중개를 거쳐 판매합니다. UBS의 레베카 가르시아 대변인은 AP통신에 “고객들의 금 거래내역은 비밀유지 규정상 밝힐 수가 없다”고 밝혔습니다.

# 다른 세상의 아이들

살리우는 텐코토에서 6개월간 일했습니다. 금 부스러기조차 찾기 힘들어지자, 보스는 살리우를 데리고 다시 일주일을 걸어 함달라예라는 다른 금광촌으로 가서 다른 보스에게 팔았습니다.
살리우가 텐코토에서 일한 대가로 받은 돈은 40달러. 약속대로라면 360달러여야 하지만 보스는 음식값과 차(茶)값, 숙박비 명목으로 다 떼어가고 이 돈만을 쥐어줬습니다. 살리우가 함달라예에서 수은으로 건져낸 금은 이번엔 중간상의 오토바이를 타고 바마코의 5대 금 상인 중 또다른 한 명인 사두 디알로에게 팔려갑니다. 살리우의 소원은 “언젠가는 금으로 된 뭔가를 갖는 것”이라고 합니다.

유엔은 서아프리카 기니, 말리, 세네갈 등지에서 일하는 어린이 금광노동자가 10만~25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유엔아동기금(유니세프)에 따르면 전세계에는 2억5000만명에 이르는 2~17세 ‘아동노동자’가 있습니다. ‘집안 일’을 하는 아이들은 빼고, 돈 받고 일하는 아이들만 센 것입니다.
이 어린 노동자들 중에는 유혈분쟁에 총알받이나 살인도구로 동원되는 소년병들도 있고, 아동 성매매 종사자들도 있습니다. 동남아시아의 카펫공장, 폭죽공장 등 열악하기로 유명한 이른바 ‘스웻샵(sweat shop)’에서 일하는 아이들도 부지기수겠지요.
그렇다고 후진국들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미국 아이오와주에서는 이달초 한 육가공회사가 이민자 자녀 57명을 불법고용했다가 당국에 적발됐습니다.

영국 사회학자 겸 저널리스트 제레미 시브룩은 <다른 세상의 아이들>이라는 책을 통해 18~19세기 산업화 시기 영국의 아동노동과, 21세기 초반 방글라데시의 아동노동이 얼마나 닮았는지 파헤쳤습니다. 시기와 장소를 뛰어넘는 유사성은 명백하지요.
수출’이 있기에 ‘착취’가 있고, ‘착취’가 있기에 ‘수출’도 있습니다. 가장 손쉬운 착취의 대상은 여성, 그리고 아이들입니다. 작은 몸, 작은 손으로 목숨 걸고 일을 해 가족들까지 먹여살려야 하는 아이들. 그런데 그 아이들은 ‘소비자’의 눈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바마코의 수출상과 제네바의 수입상이 “그런 아이들은 모른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그 아이들이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아이들을 ‘다른 세상의 아이들’로 내팽개친 책임은 누가 져야할까요. 우린 그저 '남의 일'이라고만 말해도 좋은 걸까요.

항상 저를 힘들게 하는 주제랍니다. 아프리카의 어린이들을 한 번이라도 눈으로 보았던 것이, 저의 '죄'라면 '죄'인 것 같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너무 속이 상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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