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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과 정치, 올림픽과 중국

딸기21 2008. 4. 29.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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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 올림픽 성화가 지나가는 곳마다 분란이 가시지 않는다. 베이징 올림픽은 티벳 문제에서 시작해 중국 인권 논란을 넘어 `친중국과 반중국'을 가르는 정치적 이슈가 돼버렸다.
중국은 서방국가들의 비판을 일축하며 "올림픽을 정치화(化)하지 말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근대 올림픽은 태생부터 정치적이었다. 올림픽은 전쟁·테러·독재·억압의 문제와 떼려야 뗄수 없는 이벤트였으며, 이를 최대한 `정치화'해서 보이콧을 남발해온 것은 역설적이지만 중국이었다.


중국 `보이콧 단골'


서울을 지나 평양에 도착한 성화는 북한 당국의 통제 속에 용케 조용히 통과했지만 오는 2일 홍콩과 3일 마카오를 지나면서 반중국-친중국 시위대의 충돌이 다시 재연될 것으로 예상된다. 


뉴욕타임스는 28일 홍콩 당국이 네덜란드인 인권운동가 3명의 입국을 거부했다면서 성화 도착을 앞두고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당국은 시위를 막기 위해 안간힘 쓰고 있지만 홍콩 내 민주화운동단체들은 이날도 소규모로 곳곳에서 시위를 벌이며 정치적 자유를 요구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중국 정부 당국은 올림픽을 정치화해서는 안 된다며 자국 내 시위를 억압하고 세계 각국의 티벳 인권탄압 중단과 민주화 요구를 묵살하고 있으나, 과거 중국은 다른 나라에서 치러졌던 올림픽을 수차례 보이콧한 전례가 있다. 

그 시발은 1956년 호주 멜버른 올림픽.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대만을 회원국으로 인정하자 중국은 올림픽을 보이콧했고 2년 뒤에는 결국 IOC에서 탈퇴해버렸다. 중국은 그 뒤 1960년 이탈리아 로마 올림픽에서 1976년 캐나다 몬트리올 올림픽까지 5차례 올림픽에 대만 문제를 들어 참가하지 않았다. 심지어 사상 첫 `비(非) 서방 국가'에서 열린 대회였던 1964년 일본 도쿄(東京) 올림픽 때는 대회 중간에 핵실험을 강행하기도 했다.

중국은 대미관계가 개선되고 대만의 올림픽 참가가 무산되자 1976년 IOC에 다시 들어와 몬트리올 올림픽에 참가했다.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 때에는 미국 등 67개 `자유진영' 국가들이 경기 참가를 거부했는데, 중국은 자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이례적으로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반대하는 대열에 서서 보이콧에 가담했다.

전쟁, 테러, 인권탄압 논란

중국이 아니더라도 세계 각국은 올림픽을 `정치적 과시' 혹은 홍보를 위한 수단으로 늘 이용해왔다. 
대표적인 것은 1936년 독일 베를린 올림픽. 이 올림픽 개최가 결정될 당시 독일은 나치 체제가 아니었지만 대회 3년 전 나치가 집권하면서 올림픽은 히틀러의 홍보수단으로 전락한다.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때에는 인종 차별 국가인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지지를 표시한 뉴질랜드를 참가시켰다는 이유로 아프리카 국가들이 대거 불참했다. 1980, 84년 모스크바·로스앤젤레스 올림픽은 냉전 와중에 동-서 양 진영이 번갈아 보이콧을 해 반쪽짜리 대회들로 치러졌다.

1972년 뮌헨 올림픽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과 서방의 친 이스라엘 정책에 항의하는 테러집단 `검은 9월단'이 올림픽 선수촌을 점거, 인질극을 벌이면서 악몽의 대회가 돼버렸다. 근대 올림픽 100주년을 맞은 1996년 미국 애틀랜타 올림픽 때에도 `100주년 기념공원'에서 폭탄테러가 발생, 2명이 숨졌다.

영국에서는 지난 2005년 런던이 2012년 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되고 이틀 뒤 7·7 동시다발 테러가 일어나 축제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2000년 호주 시드니 올림픽 때에는 호주 당국이 애보리지니(원주민)들을 시드니 등지의 대도시에서 쫓아내는 대규모 `도시 미화'를 강행해 거센 비판을 받았는데, 중국도 베이징 인근 빈민가들을 대량 철거하고 주민들을 쫓아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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