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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트로 이후의 쿠바는

딸기21 2008. 2. 20.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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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세기 가까이 사회주의 쿠바를 지배해왔던 피델 카스트로(81) 국가평의회 의장이 19일 공식 직책에서 물러났습니다. 쿠바의 권력은 후계자인 동생 라울 카스트로(76) 국방장관에게 이양될 예정입니다.

카스트로는 이날 공산당 기관지인 `그란마(Granma)'를 통해 발표한 성명서에서 "국가평의회 의장직과 군 최고사령관직을 다시 받아들일 의사는 없다"면서 "내 유일한 바람은 한명의 병사가 돼 내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투쟁하는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고령의 카스트로는 오래전부터 건강 악화에 시달렸으며, 2006년7월에는 장출혈로 수술을 받은 뒤 동생 라울에게 권력을 임시 이양하고 요양해왔습니다. 이미 지난 연말부터 카스트로의 공식 사임이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보도가 잇따랐었지요.
1959년 풀헨시오 바티스타 독재정권을 몰아내고 집권한 이래 49년간 쿠바를 통치해왔던 카스트로가 권좌에서 물러남에 따라, 쿠바는 `라울 체제'로의 변화에 들어서게 됐습니다. 쿠바 의회는 이변이 없는 한 오는 24일 라울을 사실상의 대통령인 새 국가평의회 의장으로 선출할 예정인데요. 쿠바 의회 614개 의석은 모두 공산당이 독점하고 있습니다.

수십년간 `권력서열 2위'로서 그림자처럼 형의 뒤를 보좌해왔던 라울은 형과 같은 카리스마는 없지만 좀더 실용주의적이고 신중하다는 평을 듣고 있습니다. 라울 집권 뒤의 쿠바는 중국식 사회주의 개혁모델에 따라 점진적으로 체제 변화를 시도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미국의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카스트로 사퇴를 환영하면서 쿠바의 민주적 변화를 촉구했으나 오랜 앙숙이었던 미국과 쿠바 관계에 당장 급진적인 변화가 오지는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카스트로가 사퇴함으로써, 지구상 5개 밖에 안 남은 사회주의 국가의 하나인 쿠바의 변화 방향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포스트 카스트로' 체제 쿠바의 미래를 손에 쥘 유력후보는 동생 라울입니다. 그가 집권할 경우 사회주의 경제체제에 점진적으로 시장중심 개혁안을 접목해가는 `중국식 변화 모델'을 도입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지만 급진적 변화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점쳐집니다. 일각에선 카스트로가 종종 `더 젊은 세대로의 교체'를 언급했었다는 점에서 라울을 대표로 하는 `집단 지도체제'가 형성될수 있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습니다.

`예정된 교체' 평온한 아바나

카스트로 사퇴에 대해 외신들은 "미국을 코밑에서 괴롭히던 사회주의자의 퇴진""사회주의 아이콘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고 일제히 보도했으나 현지 반응은 조용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아바나 시민들은 19일 바닷가 카페와 술집 등에 삼삼오오 모여 카스트로의 사퇴 발표가 실린 공산당 기관지 `그란마'를 함께 읽고 국영방송을 지켜봤습니다. 그러나 오랜 카스트로 체제가 끝나게 됐지만 동생 라울로의 정권 이양이 확실시되는 탓에 `변화의 바람'은 아직 불지 않고 있으며 쿠바인들은 별다른 동요를 보이지 않고 있다고 뉴욕타임스는 보도했습니다.
이미 지난 2006년7월 라울에게 권력이 임시 이양되면서 한 차례 변화의 기대에 부풀었다가 실망감을 맛봤던 쿠바인들은 "지도자가 바뀌어도 일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면서 섣부른 기대를 피하려 하고 있다는 건데요. 버스값과 식료품값 등 비싼 물가에 시달리는 시민들의 관심사는 `밥상'일 뿐, 카스트로의 퇴진은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하고 있다고 신문은 전했습니다.
또한 상당수 시민들은 카스트로가 사퇴 발표 이후에도 어떤 형태로든 정치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데이론 클라베욘이라는 20세 여성은 AFP통신 인터뷰에서 "피델이 권력을 내놓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라울을 통해 계속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쿠바 문제 전문가인 스페인의 루이 마누엘 가르시아도 시사주간 타임 인터뷰에서 "피델이 라울에게 정권을 넘기겠다고 밝히긴 했지만 동생을 항시 감시하고 조종하려 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라울 체제' 엇갈리는 관측

라울이 안정적으로 권력을 이어받을 것인가, 그리고 어느 정도나 변화와 개혁을 추진할 것인가 하는 점에서는 관측이 크게 엇갈리고 있는 모양입니다.

라울은 1953∼55년 바티스타 독재정권 밑에서 형과 함께 2년간 복역한 뒤 멕시코로 탈출했다가 1956년 역시 형과 함께 보트 `그란마'를 타고 쿠바로 돌아왔고, 1959년 쿠바혁명도 같이 주도했습니다. 이후 수십년간 국가평의회 부의장, 공산당 중앙위원회 부의장, 공산당 정치위원회 부의장으로서 형을 보좌해왔지요. 그는 스스로 말하듯 "꼭 필요한 자리가 아니면 남들 앞에 나서는 걸 좋아하지 않는" 성격이고, 외신들의 표현을 빌면 camera-shy 하다지요.
라울은 형보다 머리 하나 정도 키가 작고 우렁찬 목소리나 언변도 없답니다. 카리스마가 없는 대신 그는 신중한 지도자라는 평을 듣고 있습니다. 다소 복잡한 가족관계를 가졌던 형과 달리 지난해 사망한 부인 빌마 에스핀과 48년간 동고동락해왔으며, 네 자녀를 몹시 사랑하는 가정적인 성격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사회주의 혁명 과정에서는 오히려 형보다 완고한 원칙주의자였다는 평가가 많은 것 같습니다. 산티아고와 아바나에서 대학을 다니면서 민족주의 성향이었던 형보다 더 먼저 사회주의에 매료됐으며, `세기의 혁명가' 에르네스토 체 게바라를 형에게 소개한 것도 그였다는군요.
라울은 1970∼80년대 쿠바가 제3세계 사회주의 진영을 대변하며 아프리카 앙골라 등의 좌파 무장세력을 밀어줄 때 군사적 지원활동을 담당하기도 했었습니다. 1997년 피델은 한 연설에서 "지금 내 뒤에는 나보다 더 강경한 사람이 있다"고 동생을 소개한 바 있습니다.




라울이 지난해 6월 아내 빌마 에스핀의 장례식에서 장미꽃을 바치고 있는 모습. /AP


`중국모델'로 변화 추구할듯

하지만 오히려 라울이야말로 실용주의자로서 쿠바의 점진적 개혁을 추진할 인물이라는 관측도 많습니다. 경제의 버팀목이던 옛소련이 무너진 뒤 1991년부터 쿠바는 관광산업 위주로의 재편을 나름대로 추진해왔는데요, 국영 관광회사 가비오타(Gaviota) 등을 통해 관광산업을 주도해온 것은 역설적이지만 라울에 장악됐던 쿠바 군이었다고 BBC는 전했습니다.
특히 라울은 2006년7월 임시로나마 권력을 이양받은 뒤부터 조금씩 개혁을 바라보는 입장을 피력해왔으며 "구조적 변화가 필요하다""정부가 주는 돈만으로 모든 국민이 살아갈수는 없다"는 등의 발언을 했던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중국의 변화를 이끌어낸 덩샤오핑이 검은고양이와 흰고양이에 빗댄 `흑묘백묘론'을 펼쳤듯 라울은 "포탄보다는 콩"이라며 사상보다 민생이 중요하다는 뜻을 밝혀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로이터통신은 "라울은 혁명을 퍼뜨리는 것보다는 국민들 식탁에 더 관심 많은 실용주의자"라며 "쿠바에 경제적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유일한 희망으로서 라울을 바라보는 이들이 조금씩 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AP통신은 라울이 사실상 총리 역할을 수행해왔던 카를로스 라헤 각료협의회 의장에게 개혁 프로그램을 맡겨 진두지휘하게 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라울이 권력의 전면에 나서는 대신 더 젊은 지도자를 내세우고 형을 대신해 공산당 지도부를 관리할 가능성도 없지 않습니다. 라울은 재작년 권력을 임시 이양받은 뒤 "(카스트로 사후에는) 집단 지도체제를 도입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포스트 카스트로] 미국은 '개입' 시사, 남미는 '경계'

미국은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 국가평의회 의장이 사임하자 즉시 환영하고 나섰지만 경제제재를 당장 풀어줄 계획은 없다고 밝혔습니다. 남미 국가들은 쿠바 문제에 미국이 개입할 것을 우려,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습니다.

19일 아프리카 르완다를 방문하고 있던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카스트로 사퇴 소식을 들은 뒤 "쿠바가 민주국가로 바뀌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며 쿠바의 개혁과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 등을 촉구했습니다. 부시대통령은 특히 정치범 석방 등 쿠바의 민주화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면서 "미국은 쿠바의 자유가 실현될 수 있도록 도울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민주당의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과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 공화당의 존 매케인 상원의원 등 양당 대선 유력주자들도 쿠바의 민주적 변화를 위해 미국이 제 몫을 해야한다며 일제히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카스트로 사퇴로 미국과 쿠바의 오랜 적대관계는 해빙의 계기를 맞게 됐으나 극적인 변화가 일어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전망이 많습니다. 미국 국무부는 쿠바의 정권이 `독재자에게서 독재자에게로' 이양되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면서 "쿠바에 대한 금수조치를 즉시 해제할 계획은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미국은 눈엣가시처럼 여기던 쿠바 카스트로 체제의 붕괴를 오래전부터 바래왔고 물밑으로 치밀한 공작을 벌여왔지요. 미국은 쿠바의 전면적 변화를 요구하면서 적극 개입할 뜻을 감추지 않고 있습니다. 미국 대선을 앞두고 쿠바계 이민자들과 망명자 단체의 쿠바 개입 요구가 거세질 것이라는 점도 큰 변수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반면 남미 각국은 일제히 "쿠바 민주화에 외국이 개입해서는 안된다"며 미국의 움직임을 경계했습니다.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실바 브라질 대통령은 19일 "카스트로 의장의 사임은 쿠바에 긍정적인 영향을 가져올 것"이라면서 "향후 쿠바의 변화 과정에 미국이나 브라질 등 외부의 개입은 필요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칠레와 볼리비아도 쿠바와의 우호 관계를 강조하면서 `외세 개입'을 경계하는 목소리를 냈습니다.

유럽은 미국과 별개로 쿠바와의 관계개선을 추진할 것으로 보입니다. 유럽연합(EU)은 "우리는 쿠바와 건설적인 대화에 나설 준비가 돼있다"면서 다음달 6∼7일 인도주의 개발원조 담당 루이 미셸 집행위원이 아바나를 방문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EU는 2003년 쿠바가 반정부 인사들을 대거 체포한 뒤 경제제재를 취했었으나 지난해부터는 라울 카스트로 체제 하의 쿠바와 협력해야 한다며 관계개선을 추진해왔습니다. (물론 유럽 내에서도 의견이 다 통일된 것은 아니고 영국 같은 나라는 "쿠바 민주화를 촉구한다"며 미국 흉내를 내기도 했습니다만...)

교황청도 "베네딕토16세 교황이 가톨릭 국가인 쿠바를 방문할 기회를 가질수 있을 것"이라며 우호적인 입장을 밝혔다고 블룸버그 통신 등이 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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