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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의회가 17일 이라크 내 쿠르드 분리운동세력 근거지를 공격하기 위한 정부 계획을 찬성 507대 반대 19의 압도적인 표차로 승인했다. 미국, 유럽,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등이 모두 나서 만류하는데도 터키 정부가 지정학적 불안정을 유발할 것이 뻔한 군사행동을 강행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분리주의자들의 테러공격을 차단하지 못하는 유약한 정권이라는 터키 국민들의 비난여론과 군부의 강력한 주장 때문이라는 설명과 함께, 최근 미묘한 갈등관계를 빚고 있는 미국에 모종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한 제스처라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이란 접경 산지 `정밀 공습' 시나리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총리는 이날 의회 승인 전 "공격계획이 통과된다 하더라도 즉시 행동에 나서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터키 내에서는 "일단 칼을 빼들었으면 반드시 실행에 옮겨야 한다"는 분위기가 강해 보인다.
이미 현지 언론들은 터키 군이 작전계획을 짜놓고 있다며 공격 시나리오들까지 내놓고 있다. 군 측은 이라크 내 민간인 피해를 막고 작전이 예상 외로 커지는 것을 피하기 위해 미국이 애용해온 이른바 `외과적 공격(목표물만 정밀 타격하는 방식)'을 시도할 것으로 알려졌다. 군은 이라크 북부 쿠르드 자치지역 내에 터키에서 넘어간 쿠르드 분리운동조직인 `쿠르드노동당(PKK)' 게릴라 3500여명이 은신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터키 군사전문가들의 말을 인용, "군사행동의 타깃은 이라크와 이란 접경 칸딜 산악지대에 있는 PKK 기지가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칸딜은 미군이 이라크전 보급 창고로 삼고 있는 터키 내 인주를리크 공군기지와, 이라크 내 한국군 주둔지 아르빌과 인접한 곳이다.
터키 측은 게릴라들이 카스피해 석유ㆍ천연가스 수송로를 공격할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경계에 들어갔다. 터키 정부는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그루지야를 거쳐와 지중해로 나가는 `BTC 파이프라인' 주변 경비를 강화했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터키 왜 나서나
투르크민족주의, 이슬람주의, 우파 성향의 에르도안 정부는 지난 7월 총선에서 압승을 거둬 재집권에 성공했으나 잇단 PKK 테러에 곤혹스런 처지가 됐다. 터키는 수십년 동안 소수민족인 쿠르드족의 언어와 문화를 말살하는 가혹한 정책을 펴왔다. 1984년 PKK 무장독립투쟁을 선언한 뒤로 대대적인 `토벌작전'을 벌여 쿠르드족 3만명 이상을 살해했다. 쿠르드족 거주지역의 전기와 물을 끊어 생존을 위협하는 일도 다반사였다. 이런 탄압으로 인해 2000년대 들어 쿠르드 분리운동은 잠시 잠잠해지는 듯하다가 이라크전 이후 다시 들썩이기 시작했다. 몇년새 테러가 잇달아 일어나고, 최근엔 국경지대 쿠르드 무장세력의 공격이 늘었다.
특히 몇주 동안 PKK의 공격으로 터키군 13명을 포함해 30명이 살해되면서 여론이 극도로 악화됐다. 희생된 터키군 유가족을 돕기 위한 대대적인 모금운동이 벌어지고, 정부의 무능력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라크 `월경(越境) 공격'에 대해 반대한 세력은 친쿠르드계 군소 야당인 민주사회당(DTP) 밖에 없었다.
일각에선 군인들의 잇단 희생에 격앙된 군부가 에르도안 총리 측에 군사행동을 허용하도록 강한 압력을 가했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이슬람주의에 발판을 둔 에르도안 정부는 `세속주의의 보루'를 자처해온 군부로부터는 절대적인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 터키의 독특한 정치구조 속에서 현 정부가 군부의 강력한 요구를 거부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터키 군은 이라크의 강경 쿠르드지도자 마수드 바르자니가 터키 내 쿠르드족을 들쑤시고 있다고 주장한다. 군사공격은 이 일대 쿠르드족의 중심인 바르자니 세력에 대한 경고 목적도 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 겨냥한 제스처?
에르도안 정부는 미국에 이라크전 보급로를 열어주고 기지 사용을 허용하고 있지만 자국 내 반미, 반서방 정서를 의식해 `마지못해 협력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터키는 근대공화국 수립 이래 민주주의를 지켜왔으나 이슬람정부 집권 뒤 지식인과 언론에 대한 탄압이 많아졌다. 그만큼 터키 정부에 민주화와 인권 보장을 촉구하는 서방의 압력도 심해졌다. 미국 의회가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아르메니아인 대량학살을 규탄하는 결의안을 채택할 움직임을 보인 것은 터키 내 반미, 반서구 감정에 기름을 부었다. 터키 정부가 미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군사행동을 강행하려 하는 데에는 워싱턴의 `불만'을 표시한다는 의도도 있을 수 있다. 미국은 터키를 통해 이라크 주둔군 군수물자의 70%를 보급하고 있는 처지다.
미국 의회에서는 터키의 강경한 태도로 인해 기름값이 대폭 오른 뒤 `아르메니아 결의안' 지지가 줄어들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미국 하원에서 `반터키 결의안'으로 불리는 이 결의안 공동발의 의원 수가 전체 사흘새 10명이 줄어, 전체 435 의명 중 과반에 못 미치는 215명이 됐다고 전했다. 당초 미국 언론들은 결의안이 과반 이상 의원들의 발의로 무난이 채택될 것이라 예상했었다.
시리아, "터키 지지"
Turkey's President Abdullah Gul (L) and Syrian President Bashar al-Assad
review a honour guard during a welcoming ceremony in Ankara, October 17, 2007.
터키 의회가 이라크 북부 쿠르드자치지역 공격계획을 승인한 것에 대해 시리아가 지지를 표명하고 나서 미묘한 파장이 일고 있다.
AFP통신은 17일 바샤르 알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이 터키의 군사행동 계획을 지지한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터키를 방문 중인 아사드 대통령은 이날 앙카라에서 압둘라 귈 신임 터키대통령과 회담한 뒤 "테러에 맞서려는 터키 정부의 결정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아이러니하게도 터키는 1998년 시리아가 쿠르드 분리운동조직인 쿠르드노동자당(PKK) 지도자를 숨겨주고 있다며 시리아를 상대로 공격 위협을 했었다.
미국이 `테러지원국'으로 비난하고 있는 시리아가 이같은 입장을 취한 것은, 자국내 쿠르드족 움직임을 경계하기 위한 것이라는 시각이 많다. 아사드 대통령은 "이라크의 영토적 통일성이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는데 의견을 모았다"고 덧붙였다. 미국 조지 W 부시 행정부 일각에서 나오고 있는 이라크 `3분할 방안'은 용인할 수 없다는 의미다. 쿠르드 문제를 안고 있는 터키, 시리아, 이란은 이라크 쿠르드자치지역을 준독립국가 수준의 쿠르디스탄 국가로 만들려는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터키가 이라크 국경을 넘어설 경우 이란과 시리아가 경쟁적으로 이라크 문제에 개입하려 할 것이라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터키군의 공격 예상지역이 하필 이란과 국경을 맞댄 칸딜 산지라는 점에서 이란의 대응도 주목된다. 이라크의 현 시아파 정부는 쿠르드 지역에서는 힘을 못 쓰지만, 이란으로부터는 지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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