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즈베키스탄 북서쪽에 위치한 무이낙. 한때는 활기찬 어촌이었으나 아랄해가 말라 줄어들면서 사막 가운데 남겨진 마을이 된 무이낙 근처에는 작은 댐과 호수들이 있다. 아랄해로 흐르던 아무다리야 강의 물줄기를 막아 만든 저수지들이다. 말라들어가는 아랄해를 사실상 포기해버린 우즈베크 정부가 무이낙 어촌에 사는 주민들을 위해 남겨둔 `마지막 배려'가 바로 이 저수지들이다.
호수를 건너는 소떼들
지난달말 무이낙을 방문, 덤불만 듬성듬성한 소금땅을 지나 댐으로 올라갔다. 원래 이 곳은 아랄해 물이 넘실거렸던 지역이지만 지금은 아랄해가 멀리 북쪽 카자흐스탄 국경 쪽으로 후퇴해간 탓에 바닥이 드러나버렸다.
그곳에 주민들이 사르바스 호수라고 부르는 저수지가 있었다. 오전 8시를 넘겨 해가 하늘로 솟아오르자 어디선가 소떼가 나타났다. 소들은 줄지어 호수의 얕은 부분을 건너 멀리 펼쳐진 풀밭으로 향해갔다.
무이낙이 어촌으로서의 생명을 잃은 뒤 이곳 어민들은 일자리를 사라진 꼴이 됐다. 무이낙은 아랄해에 기대어 형성된 마을이었기 때문에, 아랄해 고갈은 경제 기반이 사라져버린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한때 무이낙에 밀려들어왔던 외부 노동자들은 모두 러시아나 카자흐스탄으로 가버렸고, 무이낙 사람들도 상당수 인근 대도시 누쿠스나 외국으로 향했다. 남아있는 주민들은 자식들이 외지로 나가 보내주는 돈과 소규모 농업에 의존해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농사조차 쉬운 것은 아니다. 물이 모자라는데다 땅속 소금이 올라오는 염화(鹽化) 현상 때문에 농업에 적절한 환경이 아니기 때문이다.
유목민이 된 어부들
그래서 이곳 주민들 대부분은 농작물보다는 소를 키운다. 저수지에 펼쳐진 소들의 행렬은 주민들이 소떼를 끌고 건너편 목초지로 데려가는 장면이었다. 아침마다 한 집에서 여러 이웃들의 소들을 모아 저수지를 건너고, 저녁이 되면 몰고 돌아오는 것이 일과다. 그러나 왕년의 어부들은 아직도 바다를 잊지 못하고 있다. 이런 이들에게는 아무다리야의 유산인 저수지에서 낚시질을 하는 것이 큰 소일거리다.
호숫가에서 만난 주민 아나톨리(59)씨의 손에는 낚싯대와 작은 생선 몇마리가 들려 있었다. 우즈베크 정부가 얼마 안 남은 아랄해 주변 출입을 봉쇄하기까지, 그리고 아랄해가 북쪽으로 200㎞ 이상 후퇴해버리기 전까지 그는 20년 가까이 아랄해에서 어선을 탔던 선원이었다. 지금은 연금수입으로만 살고 있지만 그는 여전히 새벽이 되면 사르바스 호수로 나와 낚시질을 한다. 그렇게 잡은 물고기는 집에서 먹거나 고양이 밥으로 주곤 한다.
"나는 20년간 아랄해에서 배를 탔다. 나는 지금도 어부다." 그의 터전이 눈 앞에서 사라진지 십수년이 지났지만 그의 삶은 여전히 아랄해에 묶여 있었다.
인간이 만들어낸 기후변화
사막이 된 바다, 흐르지 못하는 강, 호수를 건너는 소떼들, 어부 아닌 어부들. 거대한 아랄해가 사라진 뒤 달라진 것은 이런 풍경들 만이 아니다. 이곳의 지형과 함께 날씨도 달라졌다. 무이낙은 인간의 행위로 인한 자연환경의 갑작스런 변화가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환경파괴가 어떤 식으로 기후 변화를 만들어내 사람들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가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아랄해가 말라붙으면서 생겨난 거대한 소금땅에서는 황사같은 먼지바람이 일어난다. 마른 땅은 국지적인 기후변화를 만들어내 겨울과 여름을 양극화시켰다. 그나마 남아있는 아랄해 물도 사라지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다. 염분 농도가 짙어져 대류작용이 정체되면서 호수의 윗부분만 덥혀지고, 그 결과 과학자들의 예상보다도 훨씬 증발량이 많아진 것. 이 속도라면 세 갈래로 갈라진 아랄해 중 남서쪽 부분은 15∼20년 뒤에는 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지구온난화와 그로 인한 사막화가 겹쳐 아랄해 생태계와 아무다리야 하류 식생도 파괴됐다. 유엔개발계획(UNDP) 등 국제기구들은 유독성분이 섞인 모래바람이 강해지면서 아랄해 인근 지역에 암과 호흡기 질병이 많아졌다는 조사결과들을 내놓고 있다. 물에 염분이 많아지면서 위염과 담석증도 많이 생겼다. 아랄해 수량이 줄면서 염도가 높아지는 과정이 수십년간 지속됐던데다가 주변 지역에서 비료를 비롯한 화학물질들이 아랄해로 흘러들어갔기 때문이다.
모래바람이 중국까지
뿐만 아니라 아랄해였던 지역 말라붙은 땅의 먼지와 소금은 강풍이 불면 15㎞ 높이까지 올라가며, 멀리 중국의 톈산(天山)과 타지키스탄의 파미르고원까지 흙바람이 날아가는 것으로 조사됐다. 아랄델타관리청의 자나베이 일랴소프 국장은 "정부는 사막화를 늦추기 위해 관목숲을 조성하는 등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사막지대를 흐르는 아무다리야 곳곳에 댐과 저수지를 만들고, 수자원의 리사이클링(재이용)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랄해 일대의 사막화와 염화현상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 무이낙 가는길에 지나쳐간 쿵그라트 마을에서는 곳곳에 소금이 지표면으로 올라와 하얗게 변색된 땅들을 볼 수 있었다. 이 지역에서 자랐다는 택시기사 막수트(40)는 "내가 어릴 적엔 강물이 흐르던 곳인데 다 말라붙었다"면서 "농사를 지을수가 없어 주민들이 떠나거나낙타를 키우며 살고 있다"고 말했다.
■ 최악의 재앙 불러올 파미르 빙하의 움직임
아랄해가 말라 줄어든 것은 옛소련 시절의 잘못된 정책으로 인한 것이지만, 그 결과로 아랄해 지역 주민들은 국지적 기후변화와 환경 피해를 겪고 있다. 그러나 더 큰 우려는 중앙아시아 전역이 지구온난화로 인한 사막화 때문에 강물 고갈과 재난을 맞을 수 있다는 것이다.
원래 아랄해로 흘러들어가던 아무다리야 강은 관개수로로 물이 빠져나가는 탓에 아랄해까지 도달하지 못할 지경이 됐지만, 근래에는 기후변화 때문에 강물의 양 자체가 해마다 큰 변동을 보이고 있다고 주민들은 말한다. 아랄해가 있는 카리칼팍 자치공화국 지역의 한 공무원은 "어떤 해에는 물이 많이 내려오고 어떤 해에는 물이 오지 않아 주민들이 고통을 겪고 있다"고 "원래 5월에 물이 와야 하는데 올해에는 7월에 오는 바람에 벼농사를 짓던 이들이 피해를 입기도 했다"고 말했다.
아무다리야는 타지키스탄 남동부 파미르고원의 빙하에서 형성돼 1415㎞를 흐르는 긴 강으로, 중앙아시아 국가들에게는 생명줄이나 다름없다. 최근 과학자들의 큰 관심거리로 부상한 것은 파미르 빙하의 움직임. 지난 7월 타지키스탄에서는 이례적으로 대규모 홍수가 발생했다. 파미르고원의 빙하가 녹아 강둑이 터지면서 강물이 범람, 마을들을 덮친 것.
올여름 타지키스탄은 낮 최고기온이 40℃로 오르는 이상 고온을 겪었다. 현지 관리들은 지구온난화 때문에 파미르의 빙하가 녹으면서 흐름이 빨라지고 있다는 관측결과를 전했다. 거대한 얼음덩이들이 녹으면 엄청난 홍수가 일어날 것이 분명하다.
빙하가 녹아 한차례 대홍수가 나고 그 뒤 아무다리야가 수원(水源)을 잃어 말라버리는 상황, 그것이 과학자들이 우려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다. 유엔환경계획(UNEP)은 히말라야와 파미르, 중국 톈산(天山) 등 아시아 고지대의 빙하들이 녹을 경우 세계 인구의 40%가 재앙을 맞을 것이라 경고한 바 있다.
'딸기가 보는 세상 > 아시아의 어제와 오늘'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미얀마 제재 성공할까 /숨진 일본인 기자 (0) | 2007.09.28 |
---|---|
아이를 버리다니 (0) | 2007.09.20 |
인도-파키스탄, 이번엔 '빙하 싸움' (0) | 2007.09.18 |
아랄해- 사막에 떠있는 배 (2) | 2007.09.13 |
위기의 무샤라프 vs 돌아온 부토 (0) | 2007.08.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