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아시아의 어제와 오늘

미얀마 제재 성공할까 /숨진 일본인 기자

딸기21 2007. 9. 28. 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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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유럽이 평화 시위를 유혈진압한 미얀마 군사정권을 상대로 고강도 압박을 시작했다. 국제사회의 발빠른 제재 움직임 속에 미얀마 정부도 한발 물러서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제재를 통해 독재국가의 민주화를 유도하는 이른바 `남아공 모델'이 효력을 발휘, 미얀마의 민주주의를 이끌어낼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군정 압박, 발빠른 움직임

미국은 27일 군정 지도자인 탄슈웨를 비롯한 미얀마 관리 14명의 자산을 동결했다. 미국 재무부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억압과 위협으로 자국민들을 침묵시키려 하는 정권 곁에는 서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며 "버마 고위 인사들에 대해 제재를 취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미국은 현 미얀마 군정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공식적으로 버마라는 옛 국가명을 고수하고 있다. 데이너 페리노 백악관 대변인은 "전세계가 자유를 요구하며 거리로 뛰쳐나온 버마 국민들을 주시하고 있다"며 미국이 버마 국민들과 연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고 AP통신 등이 전했다.
부시대통령은 이날 양제츠(楊潔) 중국 외교부장을 백악관에서 접견하며 미얀마 사태에 재차 우려를 표명하고, 중국이 미얀마 민주화와 평화적인 권력교체를 도와야 한다고 촉구했다. 유럽연합(EU) 27개 회원국도 미얀마 군정에 대한 경제 제재를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합의했다. EU는 이미 지난 1996년부터 미얀마 군정 자산동결과 무기 금수, 군정 관리 비자발급 중지 등의 제재조치를 취해왔다.

제재 효과 있을까

미국과 유럽은 `불량국가' 혹은 독재국가로 지목된 나라의 정부를 상대로 경제 제재와 무력 공격 등을 펼쳐 정권을 바꾸거나 민주화를 유도하는 전략을 여러 차례 써왔다. 특히 미국의 부시 행정부는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을 군사공격으로 점령해 강제로 정권을 축출하는 이른바 `레짐 체인지(체제 교체)' 노선을 선호해왔다. 그러나 미얀마의 경우 무력을 통한 압박보다는 경제 제재를 통해 군정에 압력을 가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이란, 시리아, 북한 등 미국에 밉보인 나라들에 대한 경제제재와도 비슷한 방식이다. 뉴욕타임스는 미국이 미얀마 군정에 대해 `북한과 비슷한 방식의 경제적 압력'을 가하려 하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미국과 영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은 1980∼90년대 초반 인종차별로 지탄을 받던 남아프리카공화국 백인 정권에 강도 높은 경제 제재를 가해 흑백 분리조치 철폐를 이끌어낸 바 있다. 남아공 사례는 제재를 통해 민주화를 유도한 가장 성공적인 사례로 꼽힌다. 그러나 미얀마에 이같은 전략이 잘 통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미얀마 경제의 버팀목인 중국이 협조하지 않는다면 제재의 위력은 지금까지와 크게 달라지기 힘들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인 중국과 러시아의 거부 때문에 국제사회가 유엔을 통해 일관되게 제재를 가하기도 힘든 형편이다. 미얀마 군정은 집권 이래 줄곧 폐쇄경제를 유지해왔기 때문에 제재의 영향력이 남아공만큼 크지도 않을 것으로 보인다.

미얀마 군정 유화조치 나올까

일단 고무적인 것은, 미얀마 군정이 미약하게나마 유화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미얀마 정부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임명한 이브라힘 감바리 특사가 입국할 수 있도록 비자를 발급해주기로 27일 합의했다. 반 총장은 미얀마 측의 협력을 긍정적으로 평가했으며, 유엔 총회 참석차 미국 뉴욕에 모인 아세안(ASEAN) 외무장관들도 유엔 본부에서 미얀마 정부가 특사의 입국을 받아들인 것을 환영했다.
앞서 미얀마 국영TV는 일본인 기자 1명을 포함해 9명이 시위 진압 과정에서 숨졌다고 보도했다. 군정에 의해 움직이는 국영 언론사가 시위대의 사망 사실을 보도한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이같은 제스처로 봤을 때, 군정이 감바리 특사와 아웅산 수치 여사 등 야당 지도자들의 면담을 허용하고 일부 형식적인 유화 조치를 취할 가능성도 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카메라를 놓지 않았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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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수도 양곤에서 민주화 시위 현장을 취재하다가 진압경찰의 총에 맞아 한 일본인 저널리스트가 숨졌다. 민간 뉴스통신사 APF의 계약직 기자로 일하고 있던 나가이 겐지(長井健司ㆍ50). 시위 현장에서 총에 맞아 숨지면서도 카메라를 놓지 않았던 그의 기자 정신이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요미우리 신문 등 일본 언론들이 28일 보도했다.
나가이가 양곤에 들어간 것은 지난 25일. 태국 방콕에서 취재를 하고 있던 나가이는 미얀마 시위가 확산되고 있다는 소식을 듣자 도쿄 미나토(港區)구의 회사로 연락해 양곤 취재를 자원했고, 곧바로 국경을 넘어 미얀마로 들어갔다.
APF는 일본 최초의 분쟁지역 전문 뉴스통신사로 1992년 설립됐다. 아이치(愛知)현 출신으로 독신인 나가이는 글도 쓰고 직접 촬영도 하는 1인 저널리스트로서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등을 수차례 다녀온 분쟁지역 취재 전문가다. 일본 미디어에서는 제법 알려진 프리랜서 저널리스트로 APF와 계약해 일하고 있었다.
양곤 시내 곳곳을 다니며 시위 현장과 시민들의 목소리를 담던 나가이는 26일 낮 도쿄 APF의 야마지 토오루(山路徹) 사장에게 전화를 걸어 "거리 취재를 계속할 것"이라고 연말했다. 그것이 마지막이었고, 연락은 끊겼다.
양곤 주재 일본대사관에는 27일 새벽 4시15분 미얀마 외무부로부터의 전화가 걸려왔다. 양곤 시내 중심가 술레 파고다(탑) 부근에서 유탄에 맞아 숨진 사람 중에 일본인 남성이 있다는 것이었다. 일본 대사관 직원이 병원에 안치된 시신에서 여권을 확인했고, 숨진 남성의 사진과 영상을 찍어 APF 본사에 전송해 나가이임을 재차 확인했다. 나가이는 총탄이 심장을 관통하는 바람에 시위 현장에서 숨진 것으로 추정된다.
야마지 사장은 "나가이는 입버릇처럼 `아무도 가지 않은 곳에는 누군가가 가지 않으면 안된다'는 말을 했었다"고 말했다. 동료들은 "상냥한 성격이지만 분노를 안고 현장을 다녔던 기자"라며 비보에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아이치현에 살고 있는 나가이의 노모 미치코(道子ㆍ75)는 "외무성에서 연락이 오기 전까지는 아들이 미얀마에 있다는 것도 몰랐다"면서 "3년전 마지막으로 집에 다녀갔을 때 위험한 곳에는 가지 말라고 말렸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고 일본 언론들은 전했다. 마치무라 노부다카(町村信孝) 일본 신임 관방장관은 나가이의 사망을 확인하고 미얀마 정부에 공식 항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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