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한국 사회, 안과 밖

아프간 인질 피랍사태가 남긴 논란들

딸기21 2007. 8. 29.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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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 한국인 피랍사건이 무장단체 탈레반과 한국정부의 `석방 합의'로 해결되어가는 분위기다. 그러나 인질 석방을 위해 한국 정부가 납치범들과의 `대면 협상'을 한 것을 비롯해, 인질들 피랍에서 석방 합의까지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은 숱한 논란거리를 남긴 것이 사실이다. 납치를 저지른 탈레반과 거기 대응해야 했던 한국 정부, 아프간과 미국 정부 등이 이번 사건을 통해 얻은 것과 잃은 것은 무엇일까.

최대 승자는 탈레반?

AP통신은 28일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의 `석방 합의' 공식 발표 내용을 전하면서 "탈레반은 한국인 인질 2명을 살해하고서 아프간의 정치세력으로 떠올랐다"고 보도했다. 이번 사건에서 탈레반은 막대한 정치적 이익을 얻은 반면, 잃은 것은 별로 없다. 탈레반은 지난해부터 미군과 다국적군을 상대로 무장 공세를 벌여 아프간 남부 헬만드와 칸다하르 일대에서 세력을 불렸으며 조직을 상당부분 재건했다. 다국적군이 탈레반을 죄어야 하는 절박한 입장에 빠진 것과 달리, 탈레반은 인질 협상을 통해 아프간 정국을 좌우하는 주요 세력으로 재부상했다.

탈레반의 가장 큰 소득은 한국정부와 `직접 협상'을 벌임으로써 아프간 영토에서 외국 정부를 상대하는 주체가 됐다는 것이다.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두바이에 있는 걸프연구센터의 테러전문가 무스타파 알라니는 AP 인터뷰에서 "한국이 아프간 영토 안에서 탈레반과 직접 협상을 했다는 사실 자체가 탈레반에는 큰 소득"이라고 평가했다. 

여성 인질들을 일부 풀어주고 여성 피해를 최소화하는 전술을 구사함으로써 탈레반은 이슬람권에서의 이미지 악화를 피해나갔다. 또 `대면협상' 자리를 효과적인 선전장으로 활용했고, `협상에 응하지 않으면 인질들을 살려준다'라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오히려 `정치적 신뢰'까지 얻는데 성공했다. AP는 이번 협상으로 탈레반이 아프간에서 정치적 정통성이 있는 집단이라는 인식을 퍼뜨릴 수 있었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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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협상엔 성공', 후폭풍 우려

이라크와 아프간에서 인질사건이 숱하게 일어났지만 `종교단체 23명 피랍'은 규모나 성격 면에서 유례없는 것이었다. 최악의 위기를 맞은 한국 정부는 다양한 물밑 접촉을 거쳐 탈레반과의 직접 협상이라는 모험을 감행했다. 아직 인질 석방 절차와 구체적인 조건이 베일에 가려져 있지만, 이번 사건이 더이상의 인명 피해 없이 끝난다면 `최선의 해결'은 아니더라도 `차선의 해결'이라는 평가를 받을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이번 사건이 대테러전 협력 등 미국과의 관계나 국제무대에서의 신뢰성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하는 점이다. 미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일본 등 여러 나라가 이라크, 아프간에서 자국민 납치를 겪었으나 분쟁국 영토 안에서 납치범들과 직접협상을 벌인 것은 한국이 유일하다. 간접 접촉에 의존하기엔 인질 수가 워낙 많았다는 점이 감안될수도 있겠지만 `범죄집단과 타협했다'는 시선을 완전히 씻어내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이라크, 아프간, 레바논 등 이슬람권 여러 지역에 군대를 파병해놓고 있는 한국 정부가 자국민의 아프간 선교 방문을 자제시키지 못했다는 점도 지적됐다. 일각에서 우려의 시선이 있는 것처럼, 이번 `협상'으로 인해 분쟁지역 무장조직들의 한국인 납치가 더 빈발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당혹스런 아프간과 미국 정부

한국 정부와 탈레반의 협상 내용은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일단 탈레반이 `인질-수감자 맞교환' 요구는 철회한 것으로 전해졌다. 탈레반이 가장 민감한 요구를 취소했다고는 하지만 `탈레반 수감자 라마단(이슬람 금식월) 특별사면설'이 불거져나오는 등 막후 협상을 둘러싼 소문들은 끊이지 않고 있다.

아프간 정부는 지난 3월 이탈리아 인질석방 때 탈레반 수감자 5명을 풀어줘 미국의 항의를 받은 뒤 "더이상 맞교환은 없다"고 공언했고, 어쨌든 형식적으로 한국인 피랍사건에서도 자신들의 명분은 지켰다. 하지만 한국 정부가 직접 협상에 나서 탈레반에 역설적으로 `권위'를 부여함으로써 아프간 정부는 난감한 처지가 됐다. 

아민 파랑 아프간 무역산업장관은 독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 정부의 협상을 `조건부 항복'이라 표현하며 불쾌감을 감추지 않았다. 그는 "모든 나라가 이런 식으로 일종의 조건부 항복을 한다면 탈레반의 요구를 사실상 들어주는 셈이 된다"며 "다른 나라들이 한국의 전례를 따르지 않기를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이번 사건에서 눈에 띄는 역할을 자제해왔지만 `직접 협상'에 역시 당혹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톰 케이시 미국 국무부 대변인은 28일 "미국도 인질들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면서도 "테러범들에게 양보하지 않는다는 미국의 정책은 변함이 없다"고 재차 강조했다. AP는 인질 석방 합의소식이 하필 아프간 다국적군과 탈레반의 유혈 교전이 최악에 달했던 시점에 발표됐다는 점을 들면서 "한국 정부와 무장조직의 대면 접촉은 미국을 당황하게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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