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한국 사회, 안과 밖

우즈벡의 한류바람

딸기21 2007. 8. 16.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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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전 연해주 고려인들이 스탈린의 강제정책으로 눈물의 이주를 해야 했던 우즈베키스탄은 지금 `한국 열풍'에 휩싸여 있다. 이 나라에서 `소수민족'으로 힘겨운 세월을 헤쳐왔던 고려인 노인들의 눈에는 요지경으로까지 비칠 정도로 우즈베크의 한국 바람은 거세다. 지금은 현지 법인이 되었지만 대우 상표를 그대로 달고 있는 자동차들이 거리를 메우고 있고, 국영방송에서 방영해주는 드라마의 거의 대부분이 한국산일 정도로 한류 열풍도 대단하다.

"딸 낳으면 `땅겜'이라 이름 지어요"

지난 7일 수도 타슈켄트에서 자동차로 4∼5시간 거리에 있는 유서깊은 도시 사마르칸드를 찾았다. 한때 중앙아시아의 문화 수도로 불렸던 사마르칸드는 올해 도시 설립 2750년을 맞은 고도(古都)다. 이슬람 사원과 현대적인 건물들이 어우러진 사마르칸드의 식당가에는 한국에서 유행이 지난 노래가 우즈베키스탄어로 번안돼 낯선 목소리를 타고 흘러나오고 있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우즈베키스탄 서북단 아랄해에 면한 소도시 무이낙에서 주민들이 지난 7일 위성방송으로 한국 드라마를 보며 저녁을 먹고 있다. 우즈베크에서도 오지 에 가까운 이곳 주민들에게 한국드라마는 빼놓을 수 없는 여가 수단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무이낙에서 주민들이 지난 7일 위성방송 안테나 앞에 나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주민들은 이 안테나를 통해 한류를 접한다.



사마르칸드에서 다시 서쪽으로 메마른 땅을 2∼3시간 더 달려야 하는 부하라. 2500여년전 캬라반들의 오아시스에서 출발한 이 오래된 도시도 한류 열풍에서는 비껴가지 못했다. 부하라의 한 주민 집에 들렀더니 카펫으로 덮인 방 벽 가운데에 한류 스타 배용준의 사진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일본에서 시작된 `겨울연가'의 위력은 사막 도시에서도 사그러지지 않은 듯했다. 타슈켄트에서 만난 딜랴(23)는 대학을 졸업하고 한국인이 운영하는 작은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한국어가 수준급인 딜랴는 전남대학교에 유학 원서를 내놓고 통지를 기다리고 있다. 딜랴는 우즈베크에서 재작년 MBC 드라마 `대장금'이 방영된 뒤부터 딸 이름을 `땅겜'(`장금'의 우즈베크어 이름)으로 짓는 사람들이 많아졌다고 귀띔했다. 

우즈베크 국영방송은 한국 드라마가 인기를 끌자 아예 매주 한시간씩 한국어 방송시간까지 편성했다. 이 방송에서는 고려인 아나운서가 한국말로 뉴스를 진행한다.

외딴 자치공화국에서도 `한국어 과외'

우즈베크 최고 명문대인 타슈켄트 세계경제외교대학교 4학년 아이벡(20)은 제2외국어로 한국어를 택했다. 한국의 놀라운 경제발전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기 때문에 그 비결을 배우고 싶어 한국어를 선택했다는 것. 

터키어 계통인 우즈베크어는 한국어와 같은 알타이 어족에 속해 있기 때문에 우즈베크인들의 한국어 학습은 상대적으로 쉬운 편. 우즈베크 서북단 카리칼팍스탄 자치공화국 태생인 아이벡은 방학이면 고향에 돌아가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하는 학생들에게 초보 수준의 한국어를 가르치는 아르바이트를 한다. 

카리칼팍스탄은 지금은 말라버린 내륙호수 아랄해(海)와 인접한 곳으로 오지에 가깝지만 이곳 주민들은 위성방송을 통해 한국 드라마들을 2∼3년 정도의 시차를 두고 시청하고 있다. 아랄해에 면한 항구도시였던 작은 마을 무이낙에서도 위성 안테나를 마당에 내놓고 집안에서 한국 드라마에 몰두하는 가족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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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벡과 같은 대학에서 공부하고 있는 벡조드(21)는 최근 타슈켄트에서 촬영된 한국의 한 방송프로그램에도 출연했을만큼 뛰어난 한국어 실력을 갖고 있다. 벡조드는 "생김새는 다른데 언어 구조가 매우 비슷한 것이 신기할 정도"라면서 언어 구조에서 나오는 문화적 동질성이 한국 문화 바람에 한 몫을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타슈켄트의 대학들에는 한국어 강의가 많이 생겼고, 공공 교육시설이 아닌 교민이나 고려인들의 사설 한국어강좌도 크게 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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