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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1년의 9.11 테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 그리고 올해 이라크전쟁을 거치는 동안 잠자는 호랑이처럼 숨죽이고 있던 이란이 기지개를 켜고 있다. 이라크전쟁 이후 미국을 '자본주의 질서'에 맞춰 재편하려는 미국의 의도가 중동국가들의 반발에 부딪치고 있는 시점에 무하마드 하타미 이란 대통령이 '역사적인 중동순방'에 나서, 이란의 의도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하타미 대통령이 12일 레바논 베이루트에 도착, 수만명의 인파로부터 대대적인 환영을 받았다고 현지 언론들이 보도했다. 이날 베이루트 공항에서 하타미 대통령이 묵을 피니시아 호텔까지 이어지는 도로는 이란 이슬람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의 초상화와 이란, 레바논 깃발로 뒤덮였으며 시아파 무슬림 3만여명이 몰려들었다. 서구화된 레바논에서는 보기 드물게 검은 차도르를 입은 여성들과 검은 정장의 헤즈볼라 요원들, 레바논의 시아파 정당인 아말당 당원들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이란 대통령의 레바논 방문은 지난 79년 이란 이슬람혁명 이후 처음이다. 현지 언론들은 이 방문에 역사적인 의미를 부여하며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특히 이라크전으로 중동 민심이 뒤숭숭하고, 미국이 이란의 핵 문제와 테러지원 의혹을 연달아 제기하고 있는 시점에서 보란듯이 '중동 순방'에 나섰다는 점에서 이란의 의도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하타미 대통령의 레바논 방문은 이라크전쟁 직전이던 지난 3월 초에 결정된 것이지만 방문 시점이 미묘한데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테러집단'으로 지목한 무장단체 헤즈볼라와의 연대를 과시하는 순방 일정으로 짜여져 있다. 하타미 대통령은 이날 헤즈볼라의 공식 환영행사에 참석했다. 그는 사흘간의 방문 기간 동안 레바논 남부 이스라엘 접경지대를 순방하고 헤즈볼라 지도자인 셰이크 하산 나스랄라와 회담을 가진 뒤 시리아로 이동할 예정이다.
하타미 대통령에 대한 환영은 지난주말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이 중동순방에서 냉대를 받았던 것과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이란 대통령에게 환호를 보내는 베이루트 시민들의 모습은 이라크전 이후 이슬람권의 전반적인 감정을 반영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이스라엘과 분쟁을 계속하고 있는 레바논·시리아인들은 시아파의 본산인 이란의 지원을 고대하고 있으며,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정권이 축출된 지금 이란이 '진정한 이슬람의 지도자'로 떠오르고 있다고 뉴욕타임스는 보도했다.
미국은 이라크전 이후 이란의 나탄즈 핵발전소 건설과 헤즈볼라 지원 의혹을 잇달아 제기하면서 압박을 가하고 있다. 또 이라크 내 친(親)이란계 시아파들의 이슬람 신정(神政)국가 수립 움직임을 극도로 경계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하타미 대통령이 레바논과 시리아같이 '민감한' 지역을 방문한 것은 미국의 압력에 대한 일종의 '시위'로도 분석될 수 있다. 그러나 서로 경계의 눈초리를 보내고는 있지만 양쪽 모두 관계가 더이상 악화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에 현재의 상황이 급작스럽게 변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일례로 양국은 아프가니스탄 전쟁 이후 수차례 비밀 접촉을 가졌다고 양국 관리들이 12일 시인했다. 두 나라는 올들어서도 3차례 접촉, 이라크 전후 재건문제를 논의했지만 관계정상화 문제를 논의 대상에 올리지는 않았다고 양국 관계자들이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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