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파엘전파 풍의 고양이라니. 66)
알라딘의 나무님 서재에서 이런 글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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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 전 방영됐던 노희경의 드라마 [꽃보다 아름다워]에서
헌아내에게 새아내를 위해 신장 하나만 떼어 달라고 부탁하던,
어이없는 사내 주현이 아들 흥수에게 이렇게 말한다.
(토씨 하나 틀리지 않게 기억은 못한다. 내용으로 주워 담으면 대충 이런 말이다.)
어처구니없이 몰염치한 인물에게 작가는 이렇게 심장 떨리는 대사를 던져 준다.
"장담하지 마라. 장담하면 나중에 쪽팔린다."
(이 대사가 떠오르는 순간은 대체로 불행했다.)
나는 퀼트나 홈패션을 배워서 집안을 온통 자신의 '작품'으로 도배하는 여자들이 한심했다.
레이스 투성이의 덮개를 만들어 문고리와 전화기에 씌우고,
프릴이 하품이 날만큼 반복되는 커튼을 만들어 하늘이 보이는 창문을 굳이 가리고,
기어이 사람들을 초대해 "예쁘군요"라는 칭찬을 듣고야 마는 그 필사적인 어리광.
인생이 헛헛한 여자들의 그 노골적인 노력이 거북했다.
글의 흐름으로 짐작했을 것이다.
다음에 무슨 말이 나올지.
나는 요즘 바느질이 하고 싶다.
기왕이면 재봉틀도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시간을, 마음을, 빈틈없이 온박음질하고 싶다.
정말이지. 쪽팔린다.
그러니까 장담하지 말자. 무엇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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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글을 읽으니 여러가지 생각이 난다.
내가 주현처럼 뻔뻔한 사람이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세상에 불가능할 것은 없다)
만일 내가 직장 대신 집에서 '전업주부'로 살았다면
아마 퀼트니 뭐니 오만가지 다 해본다고, 아주 난리도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면서 남편 들들 볶으며... 십자수에서 퀼트로, 허브 키우기에서 앵무새 금붕어 키싱구라미
아마 우리집에서 시도되고 버려지는 것들, 죽어나가는 것을 숱하게 많았을 것이다.
(붕어야 구관조야 니들 내가 일하는 거 고맙게 생각하도록 하여라)
애 데리고 다니면서 재밌어뵈는 거 있으면 뭐든 하겠다고
문화센터 수영강좌 재테크 붓글씨 ... 혹시 아나, 부동산 투자에 성공하여 대박 났을지.
적어도 취향에 있어서,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장담할 자유'가 없다는 걸
스스로 알고 있다.
난 한마디로 촌스런 취향을 가진 사람이다. 종종 유난스러운 면도 있고...
물건 사고 나서 자주 듣는 말이라면
"그런 물건 누가 사나 했더니..."
나는 핑크색 좋아하고, 보라색 좋아하고,
몸매도 패션감각도 안되는데... 가끔씩 지탄받는 차림을 하곤 한다.
헐벗어서 지탄받는 그런 쪽이 아니라, 넘 촌스럽다고...
꽃무늬, 프릴, 핑크, 조물조물한 장식품들, 손톱만한 찻잔과 미니어쳐 티세트,
이런 거에 아주 환장을 하는 사람이다.
뿐만 아니라 고상하다는 사람들이 백안시하는
중국드라마 로맨틱코미디 이런 종류에는 발광을 하고...
황제의 딸 때문에 미쳐날뛰었던 그날 이후로, 나는 결심했다.
"10명 이상이 좋아하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
그러니까 타인의 취향에 나으 잣대를 들이대서는 안된다.
더불어, 나의 취향에 너으 잣대를 대서도 안된다!
냄비로 사는 인생이 얼마나 즐거운지는, 끓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버닝하지 않는 삶은 마른 우물 같은 것이다.
가끔은 내가 한심하지 않냐면... 한심하다.
실은 어제도 한심했다. 얼라 윽박질러가며 프랑스오픈 본다고 새벽1시까지..
이 참에 퀼트도 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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