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중후반 토니 블레어-리오넬 조스팽-게르하르트 슈뢰더로 이어지는 영국, 프랑스, 독일 `신좌파 3각 편대'가 출범했을 때 세계는 유럽이 젊은 지도자들로의 세대 교체를 맞았으며 새로운 좌파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부산을 떨었다. 10년이 지난 지금 유럽은 다시한번 지도자들의 교체기를 맞고 있다.
이번엔 친미-우파가 대세다. 프랑스에서 우파 니콜라 사르코지가 대권을 거머쥔데 이어 영국에서도 다음달 말 총리가 교체될 예정이다. 차기 총리로 지목되고 있는 고든 브라운(아래 사진) 재무장관은 `얼굴은 노동당, 정책은 신보수'였던 블레어 총리의 정책을 이어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2인자 10년' 끝에 볕들날 오나
파이낸셜타임스는 블레어 총리가 사임 계획을 발표한 10일을 "브라운 해방의 날"이라 표현했다. 널리 알려진대로 브라운은 10년 동안 런던 시내 다우닝가 10번지 총리공관 옆 11번지에 살면서 재무장관으로서 2인자 역할을 수행해왔다.
노동당은 이번주 내 전국집행위원회를 열고 차기 당수 선출 절차를 확정할 계획이다. 좌파 색채가 강한 마이클 미처, 존 맥도넬 등 당내 젊은 주자들의 도전이 예상되지만 이변이 없는 한 차기 당수 자리는 브라운에게 돌아갈 것으로 예상된다. 노동당은 다음달 당원투표로 당수를 선출하는데, 브라운 외에 출마자가 없을 경우 형식적인 선거를 생략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노동당은 6월 24일 새 당수를 발표한다. 이어 27일 블레어 총리가 약속한대로 여왕에게 사임서를 내고 브라운이 의회에서 새 총리로 추대되면 총리 교체 절차가 완료된다.
고든 브라운의 주요 정책
경제: 블레어 총리의 시장친화정책 유지
이라크전: 공식적으로는 지지하나 국민 반대여론 의식
대미관계: 기본적으로 친미, 블레어 총리보다는 거리 둘 듯
유럽 정책: 유럽통합에 회의적, 유로화 도입 반대
환경: 온실가스 감축 인센티브제 지지, 핵 발전 찬성
교육: 교육예산 증액, 공교육 강화 주장
치안-안보: 자생적 테러집단에 강력 대처
`진지하고 지루한 좌파 이론가'
올해 56세의 브라운은 스코틀랜드 출신으로 어릴적부터 수재로 유명했다. 16세에 에딘버러대학에 들어가 역사학을 전공했고 최고 성적으로 졸업했다. 스코틀랜드 노동당사(史)로 박사학위를 딴 뒤 에딘버러대학과 글래스고 공과대학에서 강의를 했었다. 대학에서는 1960∼70년대 스코틀랜드 좌파 학생운동의 아이디어뱅크로 이름을 날렸다고 한다. TV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다 1979년 정계에 입문했고 1983년 의회에 진출했다. 신좌파 이론가로 명성 얻으며 블레어 총리와 함께 노동당의 쌍두마차로 부상했다.
브라운은 지금까지 정치인생 내내 블레어 총리와 비교돼 왔고, 앞으로 총리가 된 이후에도 그런 비교를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블레어 총리가 화려한 언변의 카리스마 넘치는 지도자인 반면 브라운은 외골수 일벌레로 정평 나 있다. 그를 좋아하는 이들은 "진지하고 꾸밈없다"고 하고, 싫어하는 이들은 `스탈린같은 고집불통'`지루하기 짝이없어 대중정치인으로서는 실격'이라 깎아내린다. AFP통신은 "근래 독선적인 스타일을 벗어나려 애쓰고는 있다지만, 뚱한 브라운이 블레어의 카리스마를 따라갈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고 지적했다.
외교정책은 아직도 `물음표'
10년간 재무장관을 지냈으니 영국인들에겐 `새 얼굴'이 아니지만 국제무대에서 브라운은 아직까지도 그늘에 가려진 인물이다.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은 11일 "브라운은 물음표 투성이"라면서 "미국이 프랑스 우파 승리에 지나치게 기뻐하고 있으나 정작 영국쪽 파트너에 대해선 아는 바가 없다"고 지적했다.
국내문제에서 브라운의 정책은 전임자 때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경제정책은 지금까지도 모두 자신이 이끌어왔고, 환경돚교육돚안보정책에서도 갑작스런 변화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외교. 브라운은 겉으로는 이라크전에 찬성하고 대미관계를 중시하는 듯 행동해왔으나 자신이 집권자가 되면 다른 목소리를 낼 수도 있다. 특유의 카리스마로 여론과의 싸움도 불사했던 블레어 총리와 달리 브라운은 바닥에 떨어진 노동당 지지도를 의식하고 있으며 `푸들 외교'와 거리를 두려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럽 통합에도 소극적인 태도를 보일 것으로 관측된다. 브라운 집권 뒤 내각 요직에 앉을 것으로 거론되는 인물은 같은 스코틀랜드 출신으로 통상산업장관을 맡고 있는 알리스테어 달링, 첫 여성 외무장관인 마거릿 베켓, `테러와의 전쟁'을 비판해온 힐러리 벤 의원, 이라크전에 공개적으로 반대한 뒤 외무장관직에서 물러났던 잭 스트로 의원 등이다.
laugh with a supporter during a ceremony commemorating victims of slavery
in Paris, Thursday, May, 10, 2007. / AP
지중해 섬나라 몰타에서 휴가를 보내고 돌아온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 당선자가 10일부터 공식 일정에 들어갔다.
사르코지 당선자는 이날 파리 뤽상부르 공원에서 열린 노예제 폐지 기념일 연례 행사에 자크 시라크 대통령과 나란히 참석, 당선 이후 처음으로 공식 행사에 모습을 나타냈다. 사르코지 당선자는 노예지 폐지 기념 조각상 제막식이 끝나자 시라크 대통령과 함께 대통령 관저인 엘리제궁으로 가 레바논 정당 지도자 사드 하리리를 만났다. 당선 뒤 외국 정치지도자와의 만남은 처음이다. 하리리는 반(反) 시리아 행보를 펼치다 암살당한 라피크 하리리 전 레바논 총리의 아들로, 2005년 치러진 총선에서 반시리아 세력을 결집해 두각을 나타냈었다. 시라크 대통령은 이 만남에서 사르코지 당선자에게 옛 식민지였던 레바논에 관심을 가질 것을 당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르코지 당선자는 11일 파리를 방문하는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와 만날 예정이다. 시라크 대통령이 영국 문화와 블레어 총리에게 노골적으로 거부감을 보여온 것과 달리 사르코지 당선자와 블레어 총리는 여러차례 서로 호감을 표시했었다. 사르코지 당선자는 취임을 전후해 16일이나 17일 베를린으로 가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도 만날 것으로 알려졌다. 두 사람은 교착상태에 빠진 유럽연합(EU) 헌법을 통과시키기 위해서는 통합 수준을 다소 낮추고 그대신 속도를 올려야 한다는데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EU 의장국인 독일은 프랑스와의 협력이 통합 헌법 통과에 절대적일 것으로 보고 사르코지 당선자의 추진력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앞서 9일 몰타에서 파리로 돌아온 사르코지 당선자는 재벌 친구의 요트와 전용기를 빌려 호화휴가를 보냈다는 비판에 대해 "사생활이므로 문제될 것 없다"고 일축했다. 파리 시내에서 6일 대선 결선 이후부터 계속돼왔던 방화와 시위는 진정되고 있으며 좌파 학생단체들의 수업거부도 곧 끝날 것이라고 내무부는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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