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이 끝나자마자 프랑스는 총선정국으로 돌입했다. 한달여 남은 총선에서 우파 여당이 승리를 거두면 명실상부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 당선자의 천하가 되고, 반대로 사회당이 세를 결집해 우위를 얻는다면 좌우동거 정부가 들어서게 된다. 총선은 `사르코지 개혁'의 강도와 속도를 좌우할 전망이다. 좌우 세력은 또한차례 힘겨루기를 준비하고 있다.
여유만만 우파
6일 치러진 대선 결선이 집권 국민행동연합(UMP) 후보 사르코지의 승리로 끝난 가운데, UMP와 사회당 등 각 정당들은 다음달 6일과 10일 치러지는 총선을 앞두고 다시 전열을 가다듬기 시작했다고 파이낸셜타임스 등 외신들이 보도했다. 대선이 끝나자마자 총선정국이 시작된 셈이다.
프랑스에서 입법권은 `세나'라 불리는 상원과 하원 격인 국회(아상블리 나쇼날레)가 나눠갖고 있다. 세나는 직접선거 없이 지역대표들로 구성되기 때문에 정당간 경쟁은 국회의원을 뽑는 총선을 놓고 벌어진다. 총선에서도 1차 투표에 과반 득표자가 나오지 않을 경우 결선을 치르게 돼 있다. 지난 2002년 총선의 경우 전체 의석 577석 중 10분의1인 58석만 1차 투표에서 결정됐었다. 이번에도 10일 2라운드가 끝나야 의석 분포가 정해질 것으로 보이는데, 현재 압도적 다수인 355석을 점하고 있는 UMP가 매우 유리한 입장이다.
이번에 선출되는 의원들은 사르코지 당선자와 함께 5년의 임기를 보내게 된다. 사르코지 당선자가 약속한 강도 높은 개혁을 추진하려면 안정적인 의석을 확보하는 것이 관건. UMP는 과반을 넘긴 확실한 다수당 자리를 지킨다는 목표 아래 총력전을 다짐하고 있다.
중도파를 잡아라
UMP는 공천에서 여성에게 30%를 할당하고 소수민족들에게도 15곳 이상의 지역구를 내줄 것으로 알려졌다. 박빙 승부가 될 것이라는 일각의 관측을 뒤엎고 대선 결선에서 사회당 세골렌 루아얄 후보와의 득표율 차이가 6%포인트 가량 벌어진 것으로 나타나면서 여유를 되찾은 UMP는 중도파를 끌어들이는데에도 열심이다. UMP 지도부는 9일 곧바로 공천을 마무리짓기 위한 회의를 열 계획인데, 중도파 정당 프랑스민주동맹(UDF) 의원 중 사르코지 당선자를 지지했던 이들의 지역구에는 자체 후보를 내지 않는다는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선 1차전에서 중도파 돌풍을 일으켰던 UDF의 프랑수아 바이루 당수는 사르코지 당선자를 싫어하지만 같은 당 안에는 결선에서 사르코지 당선자를 지지한 중도우파 의원들이 여럿 있다. 바이루는 우파 색채가 강한 UDF 의원들과 결별하고 `민주당'이라는 이름의 새 정당을 만들어 이번 총선에서 다시 승부를 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바이루 세력이 독자적으로 생존의 길을 찾을지, 그리고 그들이 `사르코지 개혁'에 어떤 반응을 보일지도 이번 선거의 관심사 중 하나다.
다급한 좌파
대선 3연패(連敗)의 충격에 휩싸인 사회당은 적전 분열 중이다. 루아얄의 사실상 남편인 프랑수아 올랑드 당수는 좌파 총결집을 호소했으나 지난해 11월 당내 대선후보 경선 때 루아얄과 경쟁해 밀려났던 주류파들의 공격이 만만찮다. 당시 후보로 나섰던 로랑 파비우스 전총리는 집단지도체제를 도입할 것을 주장하고 있고, 재무장관 출신의 도미니크 스트로스 칸은 올랑드-루아얄 체제가 사회당 정통 노선에서 벗어난 것이 문제라며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사회당 안에서 희생양 찾기가 벌어지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현재로서 사회당에 최선의 상황은 총선에서 다수당 자리를 얻어내 사르코지 정부에 총리를 들여보내는 것.프랑스는 대통령제를 근간으로 하지만 내각책임제를 가미, 총리는 다수당에서 뽑도록 하고 있다.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 시절인 1986년과 1993년, 그리고 자크 시라크 현대통령 집권 뒤인 1997년에 `코아비타시옹'이라 불리는 좌우 동거정부가 구성된 적 있다. 현재로선 가능성이 높지 않지만 만일 사회당이 코아비타시옹을 형성하는데 성공할 경우 사르코지 당선자의 `미국식 개혁'에는 제동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선 사르코지 당선자가 다음달 총선이 끝나기를 기다릴 것이라는 관측도 있으나, 그의 성향으로 보아 오는 17일 취임식을 하는대로 개혁조치들을 초고속, 고강도로 실행하려 할 가능성이 높다. 사르코지 당선자는 취임 뒤 개혁조치를 즉각 행동에 옮길 것이라면서 "그냥 `빨리'가 아니라 `아주 빨리' 하겠다"고 말했었다.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은 사르코지 당선자가 "지난 반세기 동안의 프랑스 대통령들과는 전혀 다른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사르코지 당선자는 엘리제궁 분위기에도 일대 쇄신을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역대 프랑스 대통령들이 외교에 치중하며 국제무대에서 미국에 맞서는데 주력해온 반면 사르코지 당선자는 내치에 치중하겠다고 미리부터 말해왔다. 외교와 관련해서는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같은 자문기구를 만들어 전문적이면서도 폭넓은 조언을 구한다는 계획. 또 지금까지 대통령들이 프랑스혁명기념일인 7월14일 `바스티유 데이'와 신년 전야 두 차례 대국민 연설을 했던 것과 달리 사르코지 당선자는 투명성과 공개성을 강조, 엘리제궁 기자회견을 정례화할 방침이다. 미셸 바르니에 전 외무장관은 "과거의 대통령들은 `공화국의 군주'들이었지만 사르코지는 `대통령 기업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 당선자는 오는 17일 취임식에 이어 신임 총리와 내각을 발표한다. 이 내각은 다음달 총선을 치르기 위한 임시 관리내각의 형식을 띄지만 사르코지 당선자의 첫 인사라는 점에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차기 총리로 유력시되는 사람은 전직 각료인 프랑수아 피용(53.사진) 상원의원. 사르코지 당선자는 7일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로부터 축하전화를 받았는데, 블레어 총리가 "차기 총리는 누구냐"고 묻자 옆에 있던 피용 의원에게 전화를 넘겨줬다고 AFP통신 등이 보도했다.
자동차경주로 유명한 사르테 지방 출신인 피용은 2002년 사르코지 당선자와 함께 각료로 임용됐다. 피용은 당시 노동부 장관직을 맡아 사회당 주장으로 도입된 주35시간 노동제에 따른 법적 정비 등의 임무를 수행했는데, 노동시간 단축과 고용연금 문제 등의 현안을 맡아 곤욕을 치렀던 것으로 알려졌다. 피용은 2004년 고등교육돚연구부 장관으로 자리를 옮겼다가 이듬해 내각을 떠나 고향인 사르테 대표로 상원의원이 됐다.
현지 언론들은 사르코지 당선자가 피용 전장관을 총리로 택할 것이라는 사실 자체를 참신한 일로 보고 있다. 막강한 권한을 가진 프랑스의 역대 대통령들은 총리직에 주로 `방패막이'들을 앉혀왔다. 반면 피용 전장관은 사르코지 당선자의 가장 친한 조언자다. 따라서 그를 택한다는 것은, 사르코지 당선자가 총리를 동반자로 `개혁 정부'를 확실하게 밀고나가려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라는 얘기다.
피용은 사르코지 당선자의 핵심 측근이면서도 정치적 신념에서는 중도에 좀더 가까워 사회당을 비롯한 야당들로부터도 신뢰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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