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얘기 저런 얘기

개천절 특집- 세계신화 겉핥기;;

딸기21 2006. 10. 3.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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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득한 옛날 천상세계를 다스리던 상제(환인)에게는 환웅이라는 아들이 있었다. 환웅은 언제나 지상을 내려다보며 인간세상을 꿈꿔오다가, 아버지로부터 천부인(天符印)을 받아 삼위태백으로 내려간다. 환웅은 곰에서 사람이된 웅녀와 만나 단군이라는 아들을 낳는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단군신화의 내용이다.

역사가 오랜 대부분의 민족과 나라들은 자기네들만의 창조설화, 건국설화를 갖고 있다. 공동의 뿌리를 담은 이런 신화와 설화들은 민족·부족집단의 통일성과 자긍심의 원천이 되기도 했고, 전근대사회에서 통치자들의 정통성을 나타내주는 정치적 이데올로기로 쓰이기도 했다. 그런가하면 건국 영웅들의 이야기는 후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삶의 본보기가 되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단군으로부터 한민족의 역사가 시작됐다는 개천절을 맞아 세계 곳곳의 민족기원신화를 알아본다. (무슨 말투인지 아시겠지요... 내가 왜 이런 걸 쓰고 있어야 하는건지) 특히 아시아 각국의 신화에는 단군신화의 모티브들과 겹치는 것들이 많다.

#곰의 자손, 뱀의 자손

캄보디아가 자랑하는 앙코르 유적지의 돌다리들에는 코브라 모양이 새겨진 난간이 붙어 있다. 머리 일곱 달린 이 코브라를 `나가'라 부른다. 나가의 머리는 7개의 큰 바다를 뜻하고, 몸통은 신과 인간세상을 잇는 다리 역할을 한다. 옛날 뱀의 신 나가 왕의 딸인 소마공주는 서쪽 먼 나라에서 온 캄부라는 왕자와 결혼해서 아들 캄부쟈를 낳았다. 캄보디아인들은 자기네가 그 캄부쟈의 후손이라고 말한다. 웅녀와 왕자의 성별이 바뀌었을 뿐, 단군신화와 틀거리가 비슷하다. 한국인들이 곰의 자손이라면 캄보디아 사람들은 뱀의 자손인 셈이다.



#바람, 비, 구름


환웅이 상제에게서 받아갖고 왔다는 천부인은 바람, 비, 구름을 말한다. 자연현상에 대한 경외심은 어느 지역에서건 신화의 바탕에 깔려 있다. 잘 알려진 그리스 신화 속 주신(主神) 제우스의 벼락이 대표적인 예다. 서아프리카에는 천둥신 `샹고'가 있다. 샹고는 서아프리카 요루바족이 세운 오요 왕국의 전설 속 왕이었다. 그런데 자기 백성들로부터 배신을 겪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샹고는 훗날 여러가지 변형과정을 거쳐, 미국 등지로 끌려간 흑인 노예의 후손들에게 유독 숭배를 받는 아프리카의 신이 됐으며 쿠바로도 건너가 생명을 얻었다. 오늘날에도 미국 흑인문화에 종종 등장하는 아이콘으로, 머리에 도끼를 이고 다니는 신의 형상으로 그려진다. 켈트 신화의 `티라니스', 아시리아의 `아다드', 고대 수메르 문명의 `엔릴'은 모두 천둥번개를 지칭하는 신들의 이름이다.

인도 신화에서는 최고의 신 인드라가 천둥 번개를 무기로 쓴다. 이 무기를 `바즈라'라 부른다. 고대종교의 경전인 `리그베다'에 따르면 인드라는 수천개 갈퀴가 달린 막강한 바즈라를 휘둘러 악을 물리친다. 불교에서 제석천이 휘두르는 금강저(金剛杵)가 바즈라에서 나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환웅과 웅녀의 만남


신과 인간의 만남, 하늘(남성성)과 땅(여성성)의 결합은 기원신화의 공통된 주제 중 하나다. 그리스인들이 믿었던 대지의 여신 가이아와 하늘의 신 우라누스처럼 하늘과 땅은 최초의 부부 혹은 최초의 남매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그 반대인 곳도 있다. 고대이집트인들은 남신이 땅을 지배하고 그 위에 누트라는 하늘의 여신이 몸을 활 모양으로 굽어 땅을 보호한다고 여겼다.

아프리카 남동부에도 여왕의 전설이 있다. 어느날 땅이 불모지로 변해 남자들이 먹잇감을 찾아 나섰다. 남자들은 신의 땅에서 곡물을 베어가려다가 벌을 받았다. 그때 사불라나라는 여성은 자기네가 숲의 정령이 지배하는 영역을 침범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신들에게 감사 인사를 드려 벌을 피했다. 사불라나는 신들에게서 먹을 것을 얻어내고 왕의 권위를 인정받았다.


단군신화의 빼놓을 수 없는 주인공 중 하나는 영웅을 낳은 웅녀로 변신한 곰이다. 자연과 더불어 살았던 고대인들의 이야기 속에서 동물들의 등장은 필연적이라 해도 될 정도다. 태평양 폴리네시아 제도의 몇몇 섬에 살던 부족들은 하늘에서 큰 새가 최초의 인간을 태우고 땅으로 내려왔다고 하는데, 신의 새를 형상화한 조형물들이 아직도 많이 전해 내려온다. 인류 문명의 수수께끼 중 하나인 거석상들로 유명한 이스터 섬에도 그런 새들을 가리키는 것 같은 암석 부조(浮彫)가 있다. 호주 원주민들은 거대한 뱀이 자기 몸속에서 우주를 만들어냈다고 믿는다.(이건 좀 신비스럽다. 어쩐지 뱀 같은 것이 나오면 멋지게 들리는걸) 고대 이집트인들이 숭배하던 태양신 아몬 라는 하늘의 숫양으로 묘사되곤 했다. 멕시코의 아즈텍족은 신들이 세계를 만들 때 들개의 일종인 코요테가 도왔다고 해서 코요테를 귀하게 여겼다.


#알에서 나온 박혁거세


삼국유사에는 단군신화 뿐 아니라 고구려 백제 신라 3국 건국자들의 신화들도 실려 있다. 그중 박혁거세와 김알지 등의 신화는 난생(卵生)설화로 분류된다. 비슷한 이야기가 베트남 건국신화에 나온다. 중국 전설에 나오는 신농씨(神農氏)의 후손 구희는 바다속에 사는 용군(龍君)과 결혼했다. 구희의 뱃속에서 태반이 빠져나왔는데 거기서 100개의 알이 나왔고 알 하나하나마다 사내아이들이 태어났다. 용군은 물 속으로 아들 50명을 데려가고 구희가 땅에서 나머지를 키웠다. 그 아들들이 훗날 나라를 만들었다. 우리의 삼국유사처럼 신화와 전설들을 모아놓은 14세기 후반 베트남 문헌 `영남척괴열전(嶺南척怪列傳)'에 나오는 이야기다.

아시아의 신화는 크게 단군 신화와 같은 천손(天孫)신화와 알·상자 속에서 영웅이 나오는 난생신화로 나뉜다. 북방 기마민족인 스키타이, 알타이, 몽골족은 하늘에서 건국자가 내려오는 천손신화를 갖고 있는 반면 대만이나 타이, 자와섬, 인도 원주민 등 남방계 농경민족에게서는 난생신화가 발견된다. 학자들은 삼국유사에 양쪽 신화가 다 들어있는 것으로 보아 한반도에 북방계-남방계가 혼재했던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 신화의 약속


같은 신화, 같은 꿈, 같은 이야기를 갖고 있다는 것은 공동체에서 엄청나게 큰 의미를 갖는다. 기원신화, 건국신화의 중요한 기능 중 하나는 공동체를 통합해주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특히 공동체가 시련에 처했을 때 건국신화는 미래에 대한 약속이 된다.


티벳의 민족서사시는 게 사르라는 영웅의 전설을 담고 있다. 게 사르는 천신의 아들인데, 내분에 휩싸인 티벳 종족들이 적의 공격으로 위험하게 됐을 때 게 사르는 큰 새로 변신해 한 족장 부인에게 다가간다. 그 순간 하늘에서 빛줄기가 내려오고 신의 아들은 여인의 품으로 들어가 인간으로 태어난다. 그는 장성한 뒤 여러 부족을 불러 모아 나라를 세우고 적들을 무찌른다. 티벳 사람들은 게 사르가 역사적 실존인물이라고 주장한다. 중국에 점령된 티벳인들은 그가 곧 나타나 티벳에 평화와 자유를 가져다줄 것이라고 믿고 있다.


멕시코의 아즈텍족은 무력을 숭상하는 민족이었다. 뒤에 더 폭력적이고 잔인한 스페인 제국 식민주의자들에 정복됐지만, 유럽인들은 아즈텍족이 야만적이고 호전적인 문화를 갖고 있었던 것으로 파악했다. 서양 학자들이 아즈텍에서 뒤늦게 발견한 `평화로운 문화'는 아즈텍 이전에 있었던 톨텍족의 것이었다.

톨텍 왕국은 깃털 달린 뱀 형상의 신 케찰코아틀을 숭상했다. 그런데 암흑의 신 테스카틀리포카는 평화의 지배자인 케찰코아틀을 질투해 마법의 약을 먹여 무력하게 만든 뒤 왕국을 멸망시켰다. 무력해진 케찰코아틀은 자신을 따르는 이들에게 "언젠가는 다시 돌아와 평화의 대업을 이루겠다"고 약속했다.

아즈텍족의 지배를 받던 톨텍족은 스페인인들이 왔을 때 케찰코아틀이 도래한 걸로 알고 환영했으나 곧 더 큰 배신을 맛봐야했다. 케찰코아틀은 신의 재림이 아닌 공룡의 이름으로 되돌아왔다. 학자들은 북미에서 화석이 발견된 백악기 익룡에게 케찰코아틀루스라는 이름을 붙여 고대인들의 신을 기념했다.


중앙아시아 키르기스스탄 사람들에게는 마나스의 전설이 있다. 이 나라에 가면 마나스 공항, 마나스 대로, 마나스 동상 등 곳곳에서 같은 이름이 붙은 건축물이나 기념물 따위를 볼 수 있다고 한다. 마나스는 전설 속의 왕자로, 키르기스 민족을 압제자들에게서 해방시킨 영웅이다. 마나스는 옛 소련에 묶여있던 이곳 사람들에게 민족정신의 상징이었다.

1991년 독립 뒤 아스카르 아카예프 전대통령은 15년간 집권하면서 스스로를 마나스와 동일시하는 선전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거짓 마나스의 화신은 지난해 3월 `레몬혁명'으로 결국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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