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닉슨 시절의 미-중 화해와 판다 외교가 유명하지만 판다가 정치적 선물이 된 것은 오래 전부터다. 다만 외교라고 하기는 좀 그렇고, 청나라 때 쓰촨이나 티벳 동부 주민들이 중국 정부에 판다를 공물로 보냈다고 한다.
현대 판다 외교의 첫 번째 사례는 1941년 장제스 부인 쑹메이링이 국민당을 지원해주는 미국에 판다를 보낸 것이다.
미국에 판다가 간 것이 처음은 아니었고 1937년 미국인이 시카고 동물원에 처음 판다를 들여갔는데 외교적 차원에서 처음 간 것이 1941년 여름이었다는 얘기.
장제스 부인의 '판다 외교'
쑹메이링 여사가 살아 있는 판다를 포획해오게 해서 충칭으로 잡아온 뒤 미국 브롱크스 동물원으로 보내게 했다. 충칭에 있던 미국 라디오 리포터가 사회를 맡아서 미국 황금시간대에 중계되도록 기념식을 했다. 엔지니어가 필리핀 마닐라에서 수신을 해서 미국으로 보냈는데 기상 조건이 나빠서 결국 미국에선 방송이 안 됐다.
판다들은 홍콩으로 날아가서 필리핀을 거쳐 배를 타고 샌프란시스코까지 6주에 걸려서 갔다고. 그런데 가는 도중에 일본이 진주만을 폭격했다. 그래서 판다 도착했을 때 미국 언론은 진주만 기습으로 도배가 됐다는 후일담이.
아무튼 이듬해 미국에서 전국 공모를 거쳐 판다 한 쌍 이름을 정했는데 이름이 ‘판디’와 ‘판다’ Pan-dee and Pan-dah였다. (창의성 디게 읎다.)
1950년대부터 80년대 초반까지 중국이 우정의 표시로 외국에 선물한 판다는 24마리. 9개국으로 갔는데 주로 소련, 북한, 그리고 미국, 영국에 갔다.
1972년 닉슨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 마오쩌둥 중국 주석이 판다 두 마리를 미국 동물원에 보내주겠다고 약속했다. (그 대가로 닉슨은 사향소 두 마리를 중국 측에 선물로 줬다.) 이 때 판다가 미국 도착해 처음 공개됐을 때 첫날 2만 명이 몰려갔고 첫 해 한 해에만 110만명이 봤다고 한다. 그래서 2년 뒤 1974년 영국이 중국과 국교 수립하면서 에드워드 히스 총리가 영국에도 판다 보내달라고 요청했을 정도였다. 영국에 간 판다 치아치아, 칭칭도 런던 동물원에서 하도 인기를 끌어서 나중에 세계 야생생물 기금 로고에 판다가 들어가게 됐다고 함.
판다 '선물'에서 '임대'로
1980년대 중국 지도자 덩샤오핑. 경제성장을 이끈 지도자이자 실용주의자답게 1984년 판다 임대로 정책을 바꿈. 그해 미국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때 월 5만달러 받기로 하고 판다를 보냈다. 하지만 판다가 월세 상품도 아니고… 그 후로는 10년 임대로만 제공했다. 표준 임대 조건에는 연간 최대 100만 달러의 임대료와 임대 기간 동안 태어난 새끼는 중화인민공화국의 소유라는 조항이 포함됐다.
최근 몇년 사이에는 미-중 관계 싸늘해지면서 중국이 미국 동물원의 판다 임대 계약을 갱신 안 해줬다. 샌디에이고 동물원 판다가 2019년 중국으로 돌아갔고 작년에는 멤피스 동물원의 판다가 갑자가 죽었다. 중국에서 반미 여론이 거세게 일어났다. 대우가 나빴던 거 아니냐고.
미-중 과학자들이 공동 연구팀을 만들어서 “피부병 때문에 고통받고 있었다”고 설명했는데도 여론이 아주 안 좋았다.
한국에서도 푸바오가 푸대접 받으면 어떡하나 이런 얘기들 많이 하는데, 근거 없는 얘기. 판다는 중국이 가장 잘 알고 가장 아낀다. 암튼 최근 샌디에이고 동물원에 다시 판다가 간다고 미국 언론들이 크게 보도하는 데에는 이런 배경이 있다. 일종의 미-중 유화 제스처로 풀이되는 거다.
하지만 판다 외교에서 잡음도 없지 않았다. 멸종위기에 처한 종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CITES)‘에 저촉되는 것 아니냐. 이게 불거진 것이, 1998년 중국이 타이완에 자이언트 판다 두 마리를 보냈을 때였다. 문제가 제기되자 중국은 “중국 본토에서 대만으로의 판다 이송은 국내 이송”이라고 주장했다.
당연히 대만은 발끈했다. 특히 당시 대만 총통은 첫 민진당 출신 총통 천수이볜이었다. 판다는 우정의 상징이 아니라 양안 갈등의 소재가 돼버렸다. 대만은 정작 그 협약에 가입하지도 못한 상태였다. 결국 대만 정권이 바뀌고 2008년에야 판다 두 마리가 타이베이 동물원에 갔다.
감히 판다의 모피를...
판다를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 거다. 중국어로는 슝먀오. 곰+고양이. 정식 이름은 ‘자이언트 판다’다. 곰이냐 너구리냐, 하다가 과학자들이 곰도 아니고 너구리도 아닌 ‘판다’라고 정했다. 식육목 곰과의 판다아과, 판다속. 푸바오와 가까이 지냈던 레서판다는 식육목 개아목 레서판다과, 족제비 종류에 가깝다.
자이언트 판다는 다 자라면 몸무게가 100kg이 넘고 키는 1.2~1.9미터까지 자란다. 서식지가 극히 한정돼 있다. 최고 3000미터에 이르는 중국의 고산지대에 산다. 그 외의 서식지라면 베트남과 미얀마 북부 고지대 정도다.
원래는 육식 동물인데 대나무가 많은 곳에서 먹이 경쟁자가 없는 대나무를 먹는 쪽으로 진화했다. 대나무 싹에는 단백질이 30% 이상이고 또 전분이 많은데, 판다는 전분을 효과적으로 소화하는 능력을 진화시켰다. 생태적 적소(틈새), 나름 살 길을 찾은 것이다.
판다는 짝짓기를 할 때만 모이는 고독한 동물이다. 암컷은 평균 18개월에서 24개월 동안 새끼를 양육한다. 성체가 되지 않은 판다의 천적은 누구일까. 표범처럼 고산지대에 사는 맹수들이다.
자이언트 판다는 후각에 크게 의존해 서로 의사소통한다고 한다. 바위나 나무에 냄새를 풍기는 화학성분을 남기는 것이다. 수명이 길고, 38세까지 산 판다가 최고령이었다.
느리고 순한 판다. 공격력도 생활력도 떨어지는 판다가 멸종하지 않은 것은 “귀엽기 때문”이라지. 보호 대상 동물의 대명사다. 출산율도 낮고. 그래서 판다를 보호하기 위해서 중국은 외국에 보낼 때 상대국과 판다 협정을 맺는다. 정확히는 판다보호협정. 예를 들면 미국 샌디에이고 동물원에도 최근 판다 한 쌍을 제공하기로 했고 스페인 마드리드, 오스트리아 빈 동물원들과도 협상 중이다. 판다를 데려가는 동물원들은 어떻게 보호하고 어떻게 번식하게 할 것인지 등등을 중국 야생동물 보호협회와 협의해서 협정을 맺어야 한다.
판다는 워낙 특징적인 생김새 때문에 밀렵 대상이 돼왔다. 1950년대부터는 인구 증가로 서식지가 줄어들었다. 개발 바람에 숲이 사라지고 농지가 밀고 올라가면서 판다는 점점 저지대에서 고지대로 올라가는 처지가 됐다. 1963년 중국 정부는 국립 자연보호구역을 만들어 판다를 보호해왔지만 1980년대 중국 경제가 개방되면서 한때 홍콩과 일본에서 판다 모피가 불법 거래되기도 했다. 하지만 중국 당국이 적극적인 판다 살리기에 나서면서2007년 239마리—> 지금은 2000마리가 넘는다. 내셔널 지오그래픽 등에 따르면 야생 상태로 살아가는게 1800마리가 넘는다. 시설에서 보호받는 것이 300여 마리라고.
“왜 판다만 보호해?”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에서 운영하는 멸종위기종 리스트, 일명 ’레드 리스트‘에서 판다는 멸종위기종으로 분류됐다가 2016년 중국 당국의 노력 끝에 ’취약종‘으로 재분류됐다. 배설물 DNA를 분석해봤을 때 야생의 판다가 3000마리에 이를 수 있다는 연구도 있다. 쓰촨성 남서부의 7개의 자연 보호구역 등 자이언트 판다 보호구역은 2006년 유네스코 세계 유산 목록에도 등재됐다.
판다 보호에 들어가는 막대한 돈을 차라리 생태계 전반을 위해 쓰는 게 낫지 않느냐, 과학자들 중에 이렇게 주장한 사람들도 있었다. 또 판다를 구하느라고, 비슷한 지역에 사는 멸종위기종인 눈표범을 비롯해 다른 동물들이 희생됐다는 얘기도 나왔다.
[구정은의 '현실지구'] ‘눈표범의 집’ 히말라야가 위험하다…맹수들의 잘못된 만남
하지만 판다 보호구역이 늘면서 생태계 전반이 보호되는, 일종의 ‘우산’ 효과가 생겼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이들이 더 많다. 여기저기 떨어져 있는 판다들이 짝짓고 생활하기 좋도록 2020년에는 당국이 약 70개의 자연 보호구역을 합쳐 자이언트 판다 국립공원을 조성했는데 약 2만7000 제곱킬로미터, 한국의 4분의1 면적에 이른다. 이렇게 보호구역이 커진 덕에 눈표범, 황금코원숭이, 레서판다 등 다른 종들도 보호를 받을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미-중 '판다 해빙'?
중국 외교부의 마오닝 대변인은 지난 2월 브리핑에서 “중국의 관련기관이 스페인 마드리드, 미국 샌디에이고 동물원과 판다 협력에 관한 협정을 체결했다”고 발표했다. 워싱턴의 스미소니언 국립동물원도 협상 중이다. 워싱턴 동물원은 중국과 판다 협약을 맺고 2000년부터 공동 연구를 해왔다. 계약액이 무려 1000만달러라고 하는데 2010년부터 세 차례 계약이 갱신됐고 마지막으로 연장된 것이 2020년이었다 그런데 작년에는 연장되지 못했고 지난해 11월 판다 3마리를 중국으로 돌려보냈음.
그래서 미국에서 판다가 남아 있는 동물원은 조지아주 애틀랜타 동물원밖에 없게 된 상태였다. 애틀랜타 동물원에 판다 4마리가 있는데 임대 계약이 올해 만료된다. 그렇게 되면 1972년 닉슨 시절 판다가 온 이래 처음으로 미국에 판다가 한 마리도 없게 된다. 그래서 협상이 진행돼 왔던 것이다. 마오 외교부 대변인은 "우리는 판다 보호 협력을 통해 판다를 비롯해 멸종위기종을 보호하기 위한 과학적 연구 성과를 더욱 확대하고 국민들 간의 유대감과 우정을 증진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미국과 중국 관계는 매우 악화됐다. 판다가 꼬인 관계를 풀어주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두 나라 국민들 사이에서 다리 역할은 해줄 수 있지 않을까.
미국은 미국이고.
푸바오는 떠나버렸다. 엉엉엉
한국에서 나고 자란 애라 중국어 배우려면 힘들텐데…
잘 지내 푸바오.
* 작년에 에버랜드 오픈런 해서 영접한 푸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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