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하마스 전쟁으로 마음 아픈 요즘.
이스라엘은 하마스 없는 가자지구를 만들겠다고 하지만 그게 가능할까.
가자지구에서조차 하마스의 지지율이 낮은 것은 사실인 듯하다. 일전에 만난 모 교수님 말씀으로는 20%도 안 될 거라고. 하지만 하마스를 없앨 수 있을까. 지도부가 지금 카타르에 망명 중인데, 이스라엘이 미국과 함께 카타르를 압박해서 하마스를 내쫓게 하고, 아랍국들이 더 이상 지원해주지 못하게 하면 고사시킬 수 있을지도 모르지. 아랍권을 상대로 한 압박이 통할지 아직은 미지수이지만.
[로이터] Qatar open to reconsidering Hamas presence in Qatar, US official says
근본 원인은 세계 최대의 난민캠프, 하늘만 뚫린 감옥이라는 가자지구의 현실 그 자체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땅을 빼앗고 또 빼앗고 쫓아내고 또 쫓아내고 하는 것이 문제다. 하마스를 없애면 또 다른 저항조직이 나오지 않을까.
미국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하마스 역할을 대신하길 바라고 있으나 이것 역시 현실에서는 어려움이 많다. 2006년 총선 때 서안과 가자 양쪽에서 하마스가 승리하자 미국과 이스라엘이 몰아붙여서 하마스를 무력화했다. 결과적으로 하마스의 가자지구 장악력이 높아졌고, 자치정부와 하마스 간 분열이 심해져 유혈 충돌로까지 갔으며 자치정부는 무기력에 빠졌다. 그렇게 해놓고 이스라엘은 2009년, 2014년 계속 가자지구를 침공했다. 수시로 봉쇄해서 사람들을 굶주리게 하고 압박해서 가자를 지옥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어떻게 됐느냐. 하마스가 외부의 지원을 더 많이 받고, 이스라엘을 상대로 한 이번 같은 전례 없는 대규모 공격에 나섰다.
자치정부에 힘을 실어줘서 하마스를 무력화한다는 것은 미국이 미는 구상이다. 미국은 '두 국가 해법'을 지키고 싶어하니까. 그러려면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기능장애 상태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런 쪽으로 나름 로드맵을 만들고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그러려면 자치정부의 보안군이 이번 전쟁이 끝난 뒤 가자지구에서 하마스의 무장을 해제시키고 치안을 유지해야 한다. 가자지구를 물리력으로 장악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이름뿐이던 팔레스타인 병력이 강화돼야 한다는 뜻이다. 팔레스타인 보안군은 서안지구의 40% 정도에서 치안유지를 맡고 있으며, 팔레스타인 땅이지만 이스라엘군이 나머지 60% 지역을 통제해왔다. 가자지구에서는 2007년 보안군이 아예 쫓겨났고 하마스가 치안권을 맡아왔다.
그런데 첫째로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보안군 강화에 반대한다. 이스라엘이 두 국가 해법, 그나마도 지금은 내팽개친 것이나 다름없는 오슬로 해법에서 염두에 둔 것은 팔레스타인을 국방력 없는 국가 아닌 국가로 묶어둔다는 것이었다. 네타냐후는 가자지구의 비무장화를 팔레스타인 보안군이 아니라 이스라엘군이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둘째, 자치정부는 가자지구 주민들의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다. 마무드 압바스 자치정부 수반은 1935년생이니 곧 90살이다. 최근 여론조사에서는 가자지구뿐 아니라 서안 주민들의 압도적 다수가 압바스의 사퇴를 바라며 자치정부가 부패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압바스는 이스라엘 하청업자로 인식되는 상황이다. 자치정부 스스로도, 팔레스타인인들이 학살을 당하고 있는데 그 틈을 타 가자지구를 세력권에 넣었다는 비판을 피하고 싶을 것이다. 최근 인터뷰에서 자치정부 총리인 모하메드 슈타예는 가자지구 통치에 ‘주니어 파트너’로 협력할 용의가 있다고 했다. 보조적인 위치에서 지원하겠다는 것이지 '장악'하려는 게 아님을 강조한 것이다.
셋째, 하마스가 해체되고 나면 가자지구가 더욱 혼란스러워질 수 있다. 이라크 전쟁의 교훈을 언급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2003년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정권을 몰아낸 뒤 미국은 이라크 군대를 해체하고 내무부 산하에 보안군만 두게 했다. 한때 중동에서 강군에 속했던 이라크군이었는데 말이다. 3년의 미군정 통치가 끝나자 사담 잔당과 수니파 극단세력이 기승을 부렸고 이라크는 몇 년 동안 유혈사태에 시달렸다. 나중에 IS까지 준동을 했고 말이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하마스를 테러조직으로 규정하지만, 부패하고 이슬람주의 성향이 강할지언정 하마스는 알카에다가 아니다. '무장정치조직'으로 표현하는 게 맞다. 하마스는 가자지구에서 그나마 공공 서비스를 제공하고 질서를 유지해온 정치세력이다. 그런데 이스라엘군이 와서 하마스를 쫓아내고 일시적으로라도 가자를 장악하거나, 가자 주민들이 불신하는 자치정부 보안군을 보낸다? 가자지구 주민들 사이에서 다시 저항의 움직임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다국적군 주둔은 어떨까. 에후드 올메르트 전 이스라엘 총리가 그런 제안을 한 모양이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국가들 혹은 아랍국들이 국제 평화유지군을 보내는 것을 비롯한 다양한 국제 관리방안이 거론된다. 다만 아직은 그림을 그리기가 힘들어 보인다.
팔레스타인 문제에는 이스라엘의 무법행위를 방조해온 미국 책임이 크다. 그런데 지금 미국도, 어느 나라도 이스라엘에 쓸 수 있는 지렛대가 마땅찮다. 내년 대선을 앞둔 바이든은 어떻게든 무마하고 쉽겠지만 네타냐후 정부와 원래 사이가 좋지 않았고, 네타냐후 또한 자국 내에서 궁지에 몰린 입장이다. 모든 것이 혼란 속에 있다.
팔레스타인 쪽도 그림이 안 그려진다. 자치정부는 무능하고 무기력하다. 하마스 역시 부패한데다 대규모 민간인 살상을 저지름으로써 명분을 잃고 규탄받는 처지가 됐다. 아랍국들 분위기도 예전과 달라졌다. 이데올로기 측면보다 현실적 이익을 중시하고, 정치 갈등보다는 이스라엘과의 대립을 끝내고 경제발전에 집중하려는 지도자들로 세대교체가 이뤄졌다. 전쟁이 터지니 이스라엘을 비난하고 있지만, 하마스에 강력한 지지를 보내지도 않을 것이다.
두 국가 해법은 더이상 불가능하니 장기적으로 한 국가 해법으로 가야 한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팔레스타인을 모두 포괄하는 이스라엘이 되어, 한 국가 안에서 유대인과 아랍인이 공존하자는 것이다. 이스라엘이야 뭐, 팔레스타인을 국가 아닌 집단으로 무력화시켜놓고 서안과 가자를 분할해 괴롭히면서 '늘 불안에 떠는 깡패'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두 국가 해법이 사라지고 그런 상태가 되면 팔레스타인이야말로 괴롭다. 오히려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한 국가 해법이 더 '현실적인' 얘기일 수도 있다. 그러나 또한 이것은 현재로선 몹시 비현실적인 시나리오이기도 하다. 팔레스타인의 어떤 정치세력이 독립국가의 대의를 포기할 수 있을까? 이스라엘 내부의 우파들도 아랍계 인구가 늘어나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려 할 것이다. 이스라엘 의회는 2018년 '유대국가법'이라는 인종주의 법안까지 통과시켰다.
막대한 인명피해, 쪼그라들고 더더욱 참혹해진 팔레스타인인들의 삶, 그리고 늘 스스로 초래한 공포에 떠는 유대국가의 주민들. 중동 안의 사라지지 않는 불안요인으로 남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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