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네 집 이사를 앞두고, 오래된 물건들을 우리집으로 가져왔다.
놋쇠 상자는 외할아버지가 20대 때 만드신 거라고 한다. 외할아버지가 1900년대 초반생이시니까 100년 가까이 된 물건이다. (비포 사진이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못 찍었음.)
우리 집 재미난 여대생과 함께 어제 오후 내내 과탄산소다와 식초를 가지고 수세미로 문질렀다. 거의 암갈색이던 것을, 비록 얼룩이 남아 있긴 하지만 반짝거릴 정도로 환하게 만들었다. 안에는 금은보화를 넣어놨…..;;
외할아버지는 내가 서른 무렵에 돌아가셨지만 할아버지와 얽힌 추억은 별로 없다. 늦게 결혼하셔서 늦게 엄마를 낳으셨기 때문에 다른 집 할아버지들보다 훨씬 연세가 많았다.
그래서 내게 할아버지는 언제나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나이 드신 분이었다.
선원이었고 군인이셨던 외할아버지는 그런 쪽보다는 사실 기술자, 장인 쪽에 더 소질이 있으셨던 것 같다. 할아버지가 만드셨다는 놋쇠 인두 다리미와 책꽂이 같은 것들이 집에 있었다.
대학교 때 몇 달 동안 할아버지 방에서 지냈는데 벽장 안에 작은 사다리가 있고 그걸 타고 올라가면 작은 다락방이 있었다. 온갖 물건들로 가득 찬 다락방, 특히 박제된 새를 보고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난다.
놋쇠함을 받쳐 놓은 재봉틀은 그 유명한 싱거 미싱이다. 무려 엄마의 외할머니가 쓰시던 거라고 하니 이것도 족히 100년 가까이 된다.
엄마의 엄마, 즉 내 외할머니는 손재주가 많아서 어릴 적에 뜨개질이나 바느질로 옷을 많이 해주셨다. 이제는 골동품이 된 재봉틀을 집으로 가져와 바니쉬로 닦아줬다.
(참고로 우리 집 재봉틀 계보는 외할머니에게서 엄마를 거쳐 여동생에게로 내려왔다. 나는? 나야 뭐, 재봉틀을 닦는 정도… ㅋㅋ 하지만 어쨌든 이제 저 재봉틀은 내 거다!)
할 일은 많지만 하기 싫을 때, 놋쇠를 닦아야겠다. 진짜 시간순삭.
엄마한테 이 사진들을 보내드렸더니, 시골에 있는 더 작은 놋쇠 상자와 외할아버지가 만드신 책꽂이도 나에게 주겠다고 하신다. 잘 갖고 있다가 나중에 딸에게 물려 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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