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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서평]<여기, 사람의 말이 있다>- 배제와 억압에 맞서는 목소리들

딸기21 2021. 7. 5.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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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문규 기자

2020.12.03

 

여기, 사람의 말이 있다

구정은, 이지선 지음 | 후마니타스 | 392쪽 | 1만8000원

“한 사람이 그렇게 큰 증오를 일으킬 수 있다면, 우리가 함께함으로써 얼마나 많은 사랑을 만들어 낼 수 있을지 상상해 보세요.”(노르웨이 노동당 청년동맹의 어느 소녀가 한 말)

 

<여기, 사람의 말이 있다>는 잘 보이지 않는 세계를 만나고, 온전히 들리지 않는 목소리를 듣고 싶다는 바람에서 시작된 책이다. 책에는 알려진 혹은 조금은 낯선 24명의 화자가 등장한다. 이들을 하나의 범주로 묶기는 어렵다. 도처에서 배제와 억압, 전쟁과 빈곤, 그리고 혐오와 차별에 맞서 싸우는 이들이 책의 등장인물이다. 세계 곳곳에서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알려준다.

 

아프리카 라이베리아에서 전쟁으로 찢긴 사회를 재건하기 위해 나선 여성, 양차 세계대전이라는 질곡과 몸의 장애를 끌어안으며 전쟁에 반대하는 파업을 하자고 호소한 사회주의자, 명분 없는 전쟁을 막기 위해 무기를 파괴하는 활동을 조직한 가톨릭 사제가 있다. 시리아를 오랫동안 좀먹은 독재 정권과 억압적인 질서를 자신이 쓴 시들로 폭로한 망명 시인이 있고, 여섯 자녀 중 다섯을 ‘애버리지니 보호위원회’에 도둑맞은 아버지이자 원주민 권익 옹호 활동가가 된 오스트레일리아의 애버리지니가 있다. 광산 기업 야나코차에 맞서 싸우며 터전을 지킨 페루의 원주민, 거대 석유 기업 셸의 환경 파괴에 저항하다 끝내 처형된 나이지리아의 소수집단 오고니 활동가, 자신을 부정하는 일본 정부에 맞선 아이누, ‘소수집단’이라는 이유로 박해받으며 전시 성폭력을 겪고도 피해자에 머무르는 대신 고발자로 나선 이라크 북부의 야지디 여성이 있다. 기후변화의 최전선에서 위기 신호를 보내는 섬나라 몰디브, 불법적으로 구금되지 않을 권리가 있는 비인간 인격체로 인정받은 오랑우탄 산드라 등 그 자체로 이미 ‘목소리’인 존재들도 있다.

 

책에선 이들의 날것 그대로의 목소리에 집중한다. 지문이나 나이테처럼 누군가가 살아온 흔적과 역사가 담길 수 있도록 연설이나 법정 진술, 성명, 인터뷰 등 그들이 던진 말을 따라간다. 그에 얽힌 역사적인 사실과 현재를 엮는 방식으로 과거와 현재를 넘나든다.

 

책의 1부에선 평화를 외치는 목소리를, 2부에선 소수자의 이야기를 담았다. 3부에선 민주주의를, 4부는 공동체로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이들의 목소리를 전한다. 마지막 5부는 지구의 미래를 고민하는 목소리들이다.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중국 작가 위화가 쓴 에세이의 한국어판 제목이다. 위화에게 마오쩌둥만을 연상케했던 ‘인민’이란 단어가, 텐안먼 광장을 가득 채운 사람들을 보고 다른 의미로 변화했듯 가장 빠른 빛마저도 사람의 목소리를 당해 내진 못한다고 저자들은 말한다. “글을 쓸수록 우리는 알게 됐다. 이 책에 담지 못한 수많은 목소리들이 아직도 많다는 것을. 속상하기도 했다. 화면과 지면, 인터넷을 채우고 넘치는 여러 소식 사이에 소외된 이들의 이야기는 끼어들지 못할 것 같아서. 그렇다고 절망하진 않는다. 듣는 이가 없어도 계속 말해 온 이들의 용기에서, 타협하지 않는 강인함에서, 물러서지 않는 끈질김에서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희망을 보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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