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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정은의 '수상한 GPS']미국 경찰은 정말로 흑인들을 많이 사살할까

딸기21 2020. 6. 16. 15:33

15일(현지시간)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전미유색인지위향상협회(NAACP) 주최로 열린 ‘조지아 행진’에 참석한 이들이 인종차별에 항의하고 형사·사법개혁을 촉구하는 행진을 하고 있다.  애틀랜타 EPA연합뉴스

 

미국에서 조지 플로이드에 이어 또다시 백인 경찰관에 의해 흑인이 숨지는 일이 일어났다.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지난 12일(현지시간) 경찰의 총격에 사망한 레이샤드 브룩스(27) 사건은 진정되는 듯했던 항의시위에 기름을 부었다. 많은 이들은 ‘백인 경찰의 흑인 살해’가 미국의 구조적 인종차별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경찰·사법제도 개혁을 요구한다. 반면 한쪽에선 ‘흑인들의 범죄가 실제로 더 많다’며 경찰시스템에 인종주의는 없다고 주장한다.

 

통계회사 스태티스타 자료를 보면 지난해 경찰에 사살된 백인은 370명, 흑인은 235명, 히스패닉은 158명이었다. 2017년 이후 경찰에 의한 전체 사망자 수는 줄어드는 추세이지만, 미국 인구 중 백인이 76%이고 흑인이 13%인 것과 비교하면 불균형이 확실하다. 이에 대해 우파 단체 맨해튼연구소의 맥 도널드는 최근 월스트리트저널 기고에서 “2018년 기준으로 살인 53%, 강도 행위 60%가 흑인에 의해 일어났다”며 단지 흑인 범죄율이 높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런데도 경찰 내에 인종주의 관행이 굳어져 있다는 ‘신화’가 버락 오바마 정부 시절 널리 퍼졌다는 것이다.

 

문제는 흑인들이 경찰의 물리력에 희생되는 과정에 인종적 편향이 작동하는가다. 메릴랜드주립대의 데이비드 존슨, 미시간주립대 트레버 트레스 등 범죄심리학자들은 지난해 7월 연방수사국(FBI) 등의 자료를 가지고 경찰의 총격 사례들을 분석한 결과를 미 국립과학원회보(PNAS)에 실었다. 2015년 이후 자료를 보니 경찰에 숨진 백인 수는 다소 줄었다. 그러나 뉴욕의 흑인 남성 질식사(에릭 가너 사건), 미주리주 10대 소년 사살(퍼거슨 사건) 등으로 격렬한 항의가 일어난 2014년 이후에도 흑인들을 사살한 케이스는 줄지 않았다.

 

2017년 이후 미국에서 경찰의 총에 맞아 숨진 사람 수를 인종별로 비교한 그래프.  www.statista.com

 

연구팀은 총을 쏜 경찰과 총에 맞은 민간인의 인종을 들여다봤다. 미국 경찰은 백인이 73%, 흑인 12%, 히스패닉이 12%다. 88%가 남성이다. 총격을 한 경찰은 79%가 백인, 12%가 히스패닉인 반면 흑인은 6%였다. 총을 쏜 경찰은 남성이 96%였고 대부분 10년 이상 경찰 경력이 있었다.

 

흑인 경찰의 총에 맞은 사람은 백인보다 흑인이 많았다. 히스패닉 경찰은 백인보다 히스패닉과 흑인에게 총을 쏜 경우가 잦았다. 흑인·히스패닉 경찰이 늘면서 총격을 받는 흑인·히스패닉 숫자가 줄어들기보다는 함께 증가했다. 백인 경찰이 흑인을 사살하는 장면은 충격적이지만, 실제로는 흑인·히스패닉 경찰이 흑인·히스패닉을 더 많이 쏜다는 얘기다. 그러나 이는 거주지 분포 때문에 일어난 당연한 현상이라고 연구팀은 지적했다. 흑인 동네에 흑인 경찰과 흑인 피의자가 몰려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히스패닉이 많은 지역에도 히스패닉·흑인 경찰 비율이 높았다.

 

이렇게 보면 경찰의 총격에 인종적 편향이 있다고 할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어떤 상황에서 경찰이 총을 쐈는가 하는 점이다. 연구팀이 ‘폭력사망보고시스템’ 자료를 분석해보니, 백인과 관련된 사건에서 무장을 하지 않거나 경찰을 위협하지 않고도 흑인이 사살될 확률이 높았다.

 

반면 경찰에 사살되는 백인들은 정신적 문제가 있거나 경찰을 공격하려 하거나 자살하겠다고 위협한 사람일 가능성이 높았다. 경찰이 흑인들에게 적대적이라고 볼 증거는 없었으나 백인 민간인들은 경찰 앞에서도 좀 더 공격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버지니아주 리치몬드에서 14일(현지시간) 경찰의 폭력에 의한 흑인 사망에 항의하는 시위대가 자전거 행진을 하고 있다.  리치몬드 AFP연합뉴스

 

백인 범죄가 늘어난 지역에선 경찰의 총격을 받는 백인이 늘었고, 흑인·히스패닉 범죄가 증가하면 경찰의 총에 맞는 흑인·히스패닉 비율도 당연히 높아졌다. 그러나 경찰에 사살되는 사람의 연령이 높을 때에는 인종적 불균형이 눈에 띄지 않았던 반면, ‘용의자’가 젊은 사람일 경우에 인종 변수의 영향이 커졌다.

 

비슷한 연구는 많다. 러트거스대 프랭크 에드워즈 교수 등의 연구팀은 지난해 8월 ‘경찰의 물리력에 의해 살해될 위험’을 인종·민족별, 성별로 분석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흑인 남성이 경찰에 목숨을 잃을 위험은 백인 남성의 2.5배, 흑인 여성은 백인 여성의 1.4배였다.

 

흑인 범죄가 많다는 것 자체가 불평등의 산물일 가능성이 크다. 지난해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는 오클라호마주 털사 지역의 경찰 수사관행과 빈곤, 인종 불평등을 분석한 보고서를 냈다. 털사는 1921년 백인들이 흑인 부유층을 공격하고 학살을 저지른 지역으로, 미국 ‘흑인 억압사’를 상징하는 곳들 중 하나다.

 

저자들은 인구센서스와 경찰 통계, 국립보건통계 등을 분석하고, 털사 지역 경찰에 의한 주민 인권침해나 ‘공격적인’ 수사 관행 등을 조사했다. 흑인 주민이 다수인 털사 북부는 도시의 다른 지역에 비해 소득수준이 낮고 실업률은 높았다. 털사 전체에서 빈곤층 비율은 17%인데 북부는 35%였다. 평균기대수명은 백인과 흑인이 6년이나 차이가 났다.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는 지난해 미국 오클라호마주 털사의 경찰 수사관행과 흑인 주민들의 경제·사회적 조건을 분석해, 흑인이 많고 가난한 지역에서 경찰의 폭력과 빈곤의 악순환이 일어난다는 내용을 담은 보고서를 냈다. 보고서의 그래픽은 경찰의 물리력을 단계별로 구분하고 있으며, 저변에는 경제적 기회가 적고 보건·교육여건이 열악한 흑인 빈곤문제가 깔려 있음을 보여준다.  ⓒ 2019 Human Rights Watch

 

북부에선 경찰의 불심검문이 다른 지역보다 잦았고, 검문 시간도 길었다. 검문 때 차량을 수색하는 빈도도 높았다. 체포되는 사람도 많았다. 일단 체포한 뒤 사후에 구속영장을 신청하는 일도 북부에 집중됐다. 체포된 사람은 풀려나려면 법원에 벌금이나 보석금을 내야 하는데 가난한 흑인에겐 그 자체가 큰 부담이었다. 체포됐다는 이유로 실직을 당하는 일도 많았다. 휴먼라이츠워치는 “체포 자체가 빈곤의 사이클을 부른다”고 썼다. 경찰에 사살되는 사람 수나 비율, 인종별 범죄율만 가지고 ‘흑인 차별은 없다’라 주장하는 것이 잘못됐음을 보여준다.

 

경찰 수사관행이 흑인 범죄율을 높이는 결과를 만든다는 지적도 많다. 2015년 마약 사용 전국조사에서 백인과 흑인의 마약 투약 비율은 비슷했다. 불법으로 마약을 투약한 사람 중 흑인은 12.5%로 인구 비례와 비슷했다. 그런데 전미유색인지위향상협회(NAACP) 웹사이트에 따르면 마약 때문에 체포된 사람 중 29%가 흑인이었고 수감된 사람 중에선 33%에 이르렀다. 전과 기록이 있으면 취업 기회가 절반으로 줄었고, 빈곤의 악순환이 다시 되풀이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