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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정은의 '수상한 GPS']식량가격 떨어졌는데 유엔은 왜 '코로나19 식량위기' 걱정할까

딸기21 2020. 6. 14. 16:12

남수단의 분쟁지역인 니얄에서 주민들이 유엔이 공수해준 식료품을 가져가고 있다.  세계식량계획(WFP)

 

공중보건 비상사태 다음은 ‘식량 비상사태’가 오는 것일까. 안토니오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이 지난 8일 ‘50년 만의 최악 식량위기’가 올 수 있다고 경고하는 등 식량 부족 사태에 대한 경고가 계속 나오고 있다. 세계 식량가격은 코로나19 때문에 급락했지만 수급 차질 때문에 올해 안에 위기가 올 수 있다는 것이다. 유엔은 코로나19로 세계에서 극빈곤층이 5000만명 늘어날 것으로 본다. 5세 이하 아이들 다섯 명 중 한 명은 성장에 지장이 있을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 막시모 토레로 수석경제학자는 최근 영국 가디언에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에 따른 봉쇄로 사람들이 추수하고 식량을 사고팔 수 없게 됐다면서 “세계 식량 시스템이 위협받고 있다”고 말했다. 내년에 열릴 식량정상회의를 준비 중인 아그네스 칼리바타 유엔 사무총장 특사는 감염증이 빠르게 번지고 있는 중남미에서 경제와 식량공급망이 취약해졌고, 상당수 주민들이 이미 식량 불안정 상태에 놓여 있다고 지적했다. 칼리바타 특사는 또 “세계에서 식량생산에 종사하는 사람이 10억명인데 이들은 코로나19 때문에 직접적으로 생계를 위협받고 있다”고 분석했다.

 

지난 4월 유엔 세계식량계획(WFP)은 저소득·중위소득 국가에 살고 있는 2억6500만명이 코로나19 때문에 식량위기를 겪을 수 있다는 예측을 내놨다. WFP는 ‘2020 식량위기 글로벌 보고서’에서 만성적으로 식량이 모자라는 인구가 약 1억3500만명인데 팬데믹 때문에 2배로 늘어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4월에 발표됐지만 작성된 시점은 세계보건기구(WHO)가 코로나19를 ‘팬데믹’으로 선언하기 전이었다. 그럼에도 지구적 식량위기 경고하면서 국제사회의 시급한 행동을 촉구했던 것이다.

 

정작 4월과 5월 세계 식량가격은 내려갔다. 곡물, 기름 생산용 종자, 육류와 설탕 등을 종합한 5월의 FAO ‘식량가격지수’는 162.5로 1월의 183.0에서 급락했다. 육류는 올들어 183.8에서 168.0으로, 유제품은 200.6에서 181.8로 떨어졌다. 바이오디젤과 바이오에탄올의 연료인 대두와 옥수수, 사탕수수는 수요가 급감하며 가격이 내려앉았다. 하지만 주곡 값은 변동이 적었고, 쌀값과 밀값은 4월에 다소 올랐다. 베트남과 러시아가 코로나19를 이유로 각기 쌀과 밀 수출을 제한한 탓이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 식량가격지수 FAO 웹사이트

 

문제는 세계의 식량의 양이 아니라 수급망이 깨진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한쪽에선 식료품값이 올라가는데 산지에서는 수확하지 못한 곡물이나 시장에 내다팔지 못해 쌓아둔 작물이 썩어나간다”고 보도했다. 유엔은 아프리카와 중동의 식량 수입국에서 시장이 무너지는 걸 무엇보다 걱정한다. 저개발국의 대도시 주변에는 예외없이 대규모 슬럼들이 있다. 도시 빈곤층은 시장에 먹을 거리가 안 들어오면 꼼짝없이 굶어야 한다.

 

WFP는 “사회안전망이 없는 상황에서 코로나19로 소득이 줄어든 사람들은 위기를 만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WFP는 나이지리아 북서부의 빈곤층, 남수단과 시리아·예멘의 난민들 등을 심각한 우려 대상으로 꼽았다. 이 기구는 코로나19가 퍼진 뒤 식량지원을 늘려 19개국 1억6800만명을 돕고 있지만 역부족이라고 했다.

 

FAO 식량가격지수의 변화 추이. FAO 웹사이트

 

미국과 유럽국들은 거액의 농업보조금을 주면서 농업을 지탱해왔다. 사실상의 ‘무역장벽’인 이런 보조금 때문에 저개발국 농민들이 생산하는 작물은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고, 현지의 농업생산이 붕괴한다는 지적이 계속 나왔다. 그런데 보조금으로 저개발국의 농업을 무너뜨린 부국들이, 전염병이 돌자 교역을 중단하거나 수출을 줄이면서 세계 빈곤층의 목줄을 죄고 있다. WFP는 “이웃이 굶주리게 만드는 것은 좋은 정책이 아니다”라며 결국 지정학적 불안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올 것이라 경고했다. 실제 2008~2009년 부국들이 금융·재정위기 겪을 때 비슷한 조치를 취했다가 2010~2012년 일부 지역에 식량수급 위기가 닥쳤다. 2011년 아랍의 봄도 당시 식료품값 폭등 때문에 촉발됐다는 분석이 많았다.

 

유엔 자료에 따르면 12일 현재 세계의 코로나19 감염자 780만명 중 절반 이상인 425만명이 고소득 국가 주민이다. 중위소득 국가 중 상층부에 있는 감염자가 255만명, 하층부에 있는 사람이 76만명이다. 저소득 국가에서 확인된 감염자는 7만명에도 못 미친다. 감염증이 퍼지지 않아서가 아니라 진단 역량이 부족해 확진자가 적은 것이다. 아직 전체 확진자 수는 적다 해도, 미국 존스홉킨스대 통계를 보면 최근 신규 감염자가 늘어나는 나라들 중에는 중미의 수리남과 아이티, 아프리카의 모리타니와 남수단, 모잠비크 등 빈국들이 많다.

 

시리아 알레포 근교의 데이르하페르에서 한 여성이 유엔 세계식량계획(WFP) 구호식량을 받아 집으로 돌아가고 있다.  WFP

 

이런 지역에서 영양 부족이 면역력을 약화시키고, 코로나19가 퍼지게 만드는 악순환이 벌어질 수도 있다. 소말리아와 남수단은 2018년 기준으로 총 4000만톤의 식량을 수입했다. 수출국이 빗장을 지르거나 시장이 요동치면 엄청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앙골라나 나이지리아 같은 아프리카의 산유국들은 석유 수출량이 줄어 재정이 흔들리고, 식량 수입이 줄어들 것으로 WFP는 보고 있다.

 

빈국의 경제는 여러 방면에서 감염증의 타격을 받는다. WFP 수석경제학자 아리프 후사인의 12일 뉴욕타임스 기고를 보면 카리브해 섬나라 아이티는 국내총생산(GDP)의 37%를 미국에서 일하는 이주자들이 보내온 송금에 의존한다. 네팔은 GDP의 27%가 송금에서 나오는데 그 3분의 2는 걸프 국가들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보내준다. 타지키스탄은 송금 비중이 GDP의 28%이고 그중 70%가 러시아 한 나라에서 온다. ‘호스트’ 국가들의 코로나19 위기가 송금경제에 의존하는 나라들에게는 막대한 경제적 타격이 되는 것이다. 세계은행은 저소득 국가들의 경제 규모가 올해 20% 가까이 줄어들 것으로 봤다. 가뜩이나 부족한 재정을 코로나19 대응에 투입해야 하는 빈국은 식량 수입에 차질을 빚을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