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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정은의 '수상한 GPS']미군의 '솔레이마니 사살', 국제법으로 본다면

딸기21 2020. 1. 7. 14:44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6일(현지시간) 열린 가셈 솔레이마니 사령관 장례식에 군중들이 운집해 있다.  테헤란 신화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정부는 이란 혁명수비대의 고드스 특수부대 사령관 가셈 솔레이마니를 살해한 뒤에, 솔레이마니가 미국 시설들을 겨냥한 공격을 모의하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자위권 차원에서 작전을 벌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국제법을 위반한 것이라는 비판이 거세다. 국제법과 이라크 법, 이라크와 미국 간의 협정 등을 기준으로 본다면 미국의 행위는 정당할까.

 

‘임박한 위협’ 있었나

 

미 국무부 이란 담당관 브라이언 후크는 지난 3일(현지시간) 알아라비야TV 인터뷰에서 “솔레이마니가 이라크와 레바논, 시리아의 미국 시설들을 공격해 미국인 수백명을 죽이려 했다”고 주장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솔레이마니를 제거함으로써 “몇백 명은 아닐지라도 몇십 명의 미국인들을 구했고 다른 나라 사람들도 구한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라크 정부는 솔레이마니가 미국 시설 공격을 모의하기 위해 바그다드에 왔다는 미국 주장을 전면 부인하고 있다. 미국도 ‘임박한 위협’의 증거들은 밝히지 않았다.

 

이 사건 조사를 맡고 있는 아그네스 칼라마르 유엔 조사관은 트위터에 “국제인권법으로 본다면 한 나라가 자위 차원에서 공격을 할 수 있는 상황은 극히 제한적”이라면서 “임박한 위협을 막기 위한 것일 때에만” 정당화될 수 있다고 적었다. 또 미군 공격으로 이라크인 운전기사와 경호원 등이 숨지게 한 것은 명백한 불법이라고 했다.

 

“타국에서의 무력사용, 유엔 헌장 어긴 것”

 

설혹 ‘미국 시설 공격’ 움직임이 있었다 하더라도, 타국의 군 장성을 제3국에서 사살한 것은 국제법 위반 소지가 높다. 유엔 회원국이 다른 회원국의 허가를 받지 않은 채 그 나라에 들어가 무력을 쓰는 것은 유엔 헌장 위반이다. 국제분쟁 전문가인 미 노터데임대 메리 엘런 오코널 교수는 NBC방송에 “허가 없이 타국 영토에서 공격을 감행한 것”이라며, 1907년 헤이그 규약과 1949년 제네바협약에 따르면 ‘예방적·선제적 살해’는 금지돼 있다고 지적했다.

 

이란 반정부단체인 ‘무자히딘 이 할크(MeK·인민전사들)’를 지지하는 미국의 이란인들이 6일(현지시간) 워싱턴의 국무부 청사 앞에서 가셈 솔레이마니 장군 사살을 환영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워싱턴 AP연합뉴스

 

이라크는 지난해 말 미군이 친이란계 민병대를 공격했을 때에도 미국에 항의했으며 이번 사건 뒤에도 미국의 행위에 반발하고 있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은 “유엔 회원국이 다른 회원국의 주권을 침해한 사건”이라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문제삼겠다고 말했고, 왕이 중국 외교부장도 같은 입장을 밝혔다.

 

이라크 내 미군은 ‘면책특권’

 

이라크는 2003년 미군에 점령됐고, 이후 미군정의 통치를 받았다. 이후 민선정부가 들어섰으나 미군이 아직도 주둔 중이고 사실상 미국의 영향력 아래에 있다. 미국과 이라크 양국 간의 협정을 기준으로 솔레이마니 제거작전을 들여다본다면 어떨까.

 

미국은 조지 W 부시 행정부 말기인 2008년 이라크 정부와 주둔군지위협정(SOFA)을 맺었다. 2009년 6월 30일까지 이라크 주요 도시들에서 미군 전투부대들이 철수하고, 2011년 12월 31일까지는 이라크 전역의 미군 전투부대가 완전히 물러간다는 것이었다. 협정의 전제조건은 이라크에 들어가 있는 미군과 ‘계약업체’ 즉 미 정부와 군대의 하청업체 직원들이 이라크 형법에 따라 기소되지 않도록 면책특권을 준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미국의 전쟁범죄에 면죄부를 준 협정에 반발이 컸다. 이란과의 관계에서 이라크 내 균형추 역할을 해온 시아파 유력 지도자 알리 후세이니 알 시스타니 같은 이들이 주권 침해 소지 등을 들며 우려를 표시했다. 그 못잖게 이라크인들이 걱정했던 것은 전투부대 철군 이후에도 미군이 기한 없이 이라크에 주둔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미국 내에서도 이라크 주둔 미군이 테러조직 등의 타깃이 될 수 있다는 점과 중동전쟁을 더 이상 끌고갈 수 없다는 점을 들어 완전 철군을 주장하는 여론이 적지 않았다.

 

이라크 미군 주둔 놓고 갈등 계속

 

2011년 철군 때 로버트 게이츠 당시 미 국방장관은 “수천 명의 군대가 더 상주할 수 있다”고 했고, 그 말처럼 여전히 이라크에는 미군이 남아 있다. 지난해 1월 폼페이오는 이라크 내에 남아 있는 미군 규모가 약 5000명이라고 언급했다.

 

이란 테헤란의 옛 미국대사관 건물 앞으로 6일(현지시간) 한 여성이 지나가고 있다. 대사관 건물 벽에는 미국을 규탄하는 벽화가 그려져 있다.  테헤란 AP연합뉴스

 

이라크에 미군 몇 명을 주둔시킬 지를 놓고서는 이라크 정부와 미국 간 갈등이 계속돼 왔다. 지난해 10월 트럼프 정부는 시리아의 미군 1000명을 빼내겠다면서 이들을 일단 이라크로 옮기겠다고 했다. 미군이 자국을 마음대로 들락거리는 것에 대해 이라크 정부는 “합의해준 적 없다”는 성명을 내며 반발했다. 다만 논쟁의 여지는 있다. 이라크 북부 쿠르드 자치정부가 미군 입국허가를 내준 적이 있기 때문이다. 쿠르드군은 이라크 북부와 시리아에서 IS와 싸운 주력부대이며, 이라크 중앙정부와 입장 차이가 있었던 것이다. 마크 에스퍼 장관은 추가로 주둔하게 될 미군이 이라크에 장기간 남지는 않을 것이라고 달랬고, 이후 상황이 복잡해지면서 결국 시리아 미군 철수는 유야무야됐다.

 

치안력이 취약한 이라크 정부에 미군 주둔은 벗어날 수 없는 딜레마다. 현재 미군은 이라크군을 훈련시키고 미국 관련 시설을 지키는 역할을 한다. 버락 오바마 미 행정부는 IS와의 싸움에 미군을 투입하면서도 전투부대가 아닌 ‘자문관 파병’이라는 입장을 고집했다. 문제는 이라크 정부가 미군에 통제력을 전혀 행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 것이 이번 사건이다.

 

‘합법 조직’ 이라크 민병대 부사령관도 사망

 

2008년 협정에서 미국은 이라크에서 제3국을 무력 공격하지 않는다는 데에 합의했다. 미국이 이라크 영토에서 이란을 겨냥한 공격을 한 것은 이를 위반한 행위다. 미국이 이라크와의 약속을 어긴 사실에 미군이 주둔중인 나라들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미군 1만명 이상이 남아 있는 아프가니스탄은 솔레이마니가 숨진 뒤 “미국이 제3국을 공격하는 데에 아프간 영토를 이용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의 이란 대사관에 5일(현지시간) 미군 공습으로 숨진 가셈 솔레이마니 사령관의 사진이 걸려 있다.  다마스쿠스 신화연합뉴스

 

솔레이마니는 이란인이었지만, 미국의 이번 작전 과정에서 솔레이마니뿐 아니라 이라크 시아파 민병대 PMF의 아부 마흐디 알무한디스 부사령관도 목숨을 잃었다. PMF는 이라크 법과 총리령에 따라 치안부대로 편제된 합법적인 조직이다. 그런데 이 조직의 멤버가 미군에 살해됐다. 미국은 이번에도 면책특권을 주장할 것으로 보이지만, 이라크의 반미 감정을 더욱 부추길 수 있다. 이라크 의회는 4일 미군 철수 결의안을 채택했다. 구속력은 없지만 이라크 민심을 보여준다.

 

미 대통령 ‘포괄적 권한’ 해당되나

 

솔레이마니 사살은 미국 법에도 저촉될 수 있다. 민주당이 다수인 미 하원은 법적 절차 없이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작전을 결정했다며 반발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전쟁 개시는 의회 승인을 받은 것이지만, 이란을 상대로 한 무력사용은 의회가 승인한 적 없다는 것이다.

 

백악관은 헌법에 따라 대통령이 공습을 결정할 권한을 갖고 있다고 주장한다. 또 대통령이 ‘테러리스트에 맞선 무력 사용(AUMF)’을 결정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AUMF는 모호하게 돼있기 때문에 백악관 주장이 설득력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솔레이마니를 ‘테러범’이라 하는 것이 국제사회에서 받아들여질 지는 회의적이다. 트럼프 정부는 지난해 4월 이란 혁명수비대를 ‘외국 테러조직’으로 지정했으나 타국의 정규군을 그렇게 규정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는 비판이 많았다.

 

예멘의 시아파 반군 후티 전사들이 수도 사나에서 6일(현지시간) 미군 공습에 숨진 이란 장군 가셈 솔레이마니와 이라크 민병대 부사령관 아부 마흐디 알무한디스의 얼굴이 인쇄된 포스터를 들고 집회를 하고 있다.  사나 AP연합뉴스

 

명백한 표적살해(targeted killing)인 이번 사건이 ‘암살(assassination)’인지 군사작전인지도 논란거리다. 1960~70년대에 미국 중앙정보국(CIA)은 쿠바 지도자 피델 카스트로를 암살하려 여러 작전을 벌였다. 비난이 커지자 1976년 “어떤 사람도 미국 정부의 이름으로 암살에 개입하거나 모의에 관여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의 ‘행정명령 11905호’가 발령됐다.

 

‘암살’의 법적 정의는 명확하지 않다. 세계 언론과 전문가들은 ‘암살’이라 말하지만 3일 미 국방부 공식 성명은 살해(killing)라고 표현했다. AP통신은 이 사건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지를 놓고 자체 표기준칙을 3일 소개했다. 그에 따르면 암살은 ‘정치적으로 중요하거나 저명한 개인을 갑작스런 공격으로 살해하는 것’이다. 이란은 미국이 선전포고한 상대가 아니며 따라서 미-이란 긴장이 아무리 고조된들 ‘평시 상황’이다. AP는 이런 때에 이란 측 인사를 살해한 것은 ‘암살’이라는 전문가 의견을 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