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수상한 GPS

[구정은의 '수상한 GPS']영국은 돌변, 필리핀은 걱정…홍콩을 보는 세계

딸기21 2019. 11. 19. 16:54
728x90

19일 홍콩 이공대에서 부상을 당한 시위대가 들것에 실려 병원으로 후송되고 있다.  홍콩 로이터연합뉴스

 

홍콩 시위가 몇 달 째 계속되고 있고 인명피해도 늘고 있다. 세계 여러 도시에서 중국의 강경대응을 규탄하는 시민들의 ‘연대 집회’가 열리고 있으나 각국 정부들은 이례적으로 조용하다. 독일은 이 와중에 인민해방군 훈련 지원프로그램을 예정대로 시행한다고 해, 홍콩 청년지도자 조슈아 웡이 독일 언론에 공개 비판하는 일까지 있었다. 홍콩 문제를 대하는 반응은 각국이 중국 혹은 홍콩과 맺고 있는 관계를 보여주는 잣대이기도 하다.

 

‘양비론’ 펼친 유엔

 

중국은 거대한 시장을 무기로 세계에 재갈을 물리고 있고, 각국은 베이징의 눈치만 본다. 예전 아시아·중남미의 민주화 시위 때와 달리 이번엔 각국 정부의 목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는다. 단적인 것이 유엔의 태도다. 미첼 바첼레트 유엔 인권최고대표는 8월 성명에서 “시위와 관련된 고강도 폭력”을 우려한다면서 “평화 집회를 할 자유는 최대한 보장돼야 하지만, 마스크를 쓰고 폭력을 선동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고 했다. 정작 그 ‘복면금지법’은 홍콩 법원이 18일 위헌판결을 내렸다.

 

8월 18일 영국 런던에서 중국계 유학생들과 시민들이 보리스 존슨 총리에게 홍콩 시위대 지지를 호소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사진 홍콩프리프레스

 

영국은 22년 전 홍콩을 중국에 되돌려주며 ‘홍콩의 민주주의’를 강조했다. 그런데 2014년 홍콩 ‘우산혁명’ 때 시위대를 편들다가 중국과 갈등을 빚은 영국이 이번엔 태도를 바꿨다. 보리스 존슨 총리 측은 18일 “시위대와 경찰 사이에서 폭력이 고조되고 있다” “심각하게 우려한다”며 양측 모두에 진정과 자제를 촉구했다. 8월 내놓은 영국 외교부 입장도 “(경찰과 시위대) 양측의 폭력적인 행동을 비난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홍콩을 식민통치한 영국은 이번 사태에 직간접적으로 연결돼 있다.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이 복면금지법의 근거로 활용한 긴급정황규제조례(긴급법)는 영국이 만든 것이다. 시위 무력진압에 나선 홍콩 경찰의 모태는 영국의 ‘폭동진압 경찰’이다.

 

유럽연합(EU)은 지난 6월 “홍콩 사람들은 자유롭고 평화롭게 의사를 표현할 기본적인 권리가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인권 지킴이를 자처해온 유럽국들도 중국 앞에선 약해진다. 장-이브 르드리앙 프랑스 외교장관은 홍콩 당국에 “평화적인 해법을 찾기 위한 대화”를 주문했다.

 

독일 총리실은 시위대를 옹호하면서도 “평화로운 방식”을 강조했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기업 경영자들을 끌고 9월 베이징을 찾아가 시진핑(習近平) 주석 등을 만났다. 미·중 무역전쟁과 경제침체 국면에서 중국과 독일의 경제협력을 늘리는 방안을 주로 논의했고, 그간 강조해온 ‘인권문제’는 잠시 접어뒀다. 메르켈 총리는 14년 집권 기간 동안 중국을 12번 방문할 정도로 중국과의 관계에 공을 들여왔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왼쪽)가 9월 6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함께 베이징의 댜오위타이 영빈관에서 기념촬영을 하며 웃고 있다.  베이징 EPA연합뉴스

 

‘중국 개입’ 점친 마하티르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6월 오사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때 시 주석을 만나 홍콩 시위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 “일국양제 하에서 자유롭고 개방된 홍콩이 번영할 수 있다”는 아베 총리의 말은 시 주석의 기분을 거스르지 않으려 애쓰는 것으로 들렸다. 한국 정부 입장도 비슷하다. 외교부는 8월 20일 홍콩 시위가 “당사자 간에 원만히 해결되기를” 기대한다고만 밝혔다.

 

정치인생 55년, 역전의 노장인 마하티르 모하맛 말레이시아 총리는 홍콩 시위에 대해서는 지지도 비판도 하지 않은 채 베이징과 홍콩 당국의 딜레마를 지적했다. 말레이메일 보도에 따르면 지난달 4일 그는 한 포럼에서 홍콩 시위에 대한 질문을 받고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이 사임해야 한다”고 했다. 결국 중국 본토에서 시위 진압에 개입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1989년 톈안먼 사태 같은 일이 벌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젊은 세대의 구미를 잘 맞춰온 저스틴 트뤼도 캐나다 총리도 홍콩 문제에선 튀는 발언을 삼갔다. 그는 지난 8월 “중국은 홍콩 시민들을 신중하게, 존중하는 태도로 다룰 것을 요청한다”면서 대화를 촉구했다. 

 

올 7월 유엔에서 연설하는 홍콩 가수 데니스 호.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는 시위대를 테러범인 양 몰아가는 홍콩 당국에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면서, 지난 8월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에게 “시위대의 요구에 귀를 기울이라”고 촉구했다. 뉴질랜드의 자신다 아던 총리는 9월 홍콩 시위대의 ‘표현 자유’를 옹호하는 발언을 했다.

 

필리핀은 이주노동자 걱정

 

북한은 확고한 중국 편이다. 리용호 북한 외무상은 9월 2일 평양을 방문한 왕이 중국 외교부장을 만나 “홍콩은 ‘중국의 홍콩’이고 외부 세력이 간섭해서는 안 된다”며 강력한 지지를 표명했다. 중국의 주권과 안보, 영토적 통합성을 전적으로 지지한다고 했다. 파키스탄 외교부도 “중국의 국내문제”라면서 ‘외부 세력의 개입’을 비난했다.

 

평소 거칠던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의 반응은 좀 달랐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지난 8월 실베스트르 벨로 노동장관과 함께 성명을 내고 “홍콩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고 했다. 필리핀 노동자들이 홍콩에서 많이 일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무렵 홍콩에선 필리핀 이주노동자가 시위에 참가한 혐의로 체포됐다. 역시 민감할 수밖에 없는 싱가포르의 리셴룽 총리는 “어려운 이슈”라면서 “홍콩과 중국공산당 모두 어려움을 극복하기를 바란다”고 했다.

 

홍콩 센트럴지구에서 휴일을 즐기는 필리핀 출신의 이주노동자들. 사진 hongkongnews.com

 

미국의 압박 속에서 중국에 의존하고 있는 이란도 베이징 편에 섰다. 아바스 무사비 외교부 대변인은 홍콩 시위에 ‘미국의 개입’이 있었다고 비판하며 중국 정부의 입장을 되풀이했다. 이스라엘은 논평을 삼간 채 홍콩에 있는 자국민들에게 “시위에 연루되지 않도록 조심하라”고만 경고했다.

 

백악관-의회 갈라진 미국

 

공개적으로 중국 정부를 강경 비판한 나라는 사실상 대만뿐이다. 시위가 격화된 6월에 차이잉원 대만 총통은 “대만의 민주주의는 힘들게 얻어낸 것이고 계속 지키고 새롭게 만들어가야 했다”면서 홍콩 시민들에게 연대를 표했다. 자신이 대만 총통으로 있는 한 ‘일국양제’를 보장하고 있다는 중국의 주장을 결코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6월 오사카에서 시 주석을 만났을 때 ‘홍콩 사태를 이슈화하지 않을 것’을 약속했다. 8월 1일에는 시위대를 ‘폭도(riot)’라 부르면서 “홍콩은 중국의 일부이므로 그들 사이의 문제”라고 했다.

 

9월 18일 미국 워싱턴의 의사당을 찾은 홍콩 ‘우산혁명’ 지도자 조슈아 웡(오른쪽)이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과 함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워싱턴 AP연합뉴스

 

그러자 양당 상원의원들은 “홍콩의 자치를 침해하는 베이징”을 비판하는 서한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냈다. 의원들은 대통령의 발언이 중국 지도자들에게 면죄부를 줄 뿐이라고 비난했다. 거센 공격을 받은 트럼프 대통령은 8월 19일에는 중국에 ‘인도주의적인 방식으로 문제를 풀라’고 촉구하면서 “홍콩에서 폭력적인 방식으로 한다면 (시 주석과 무역협정에) 서명하기가 힘들어진다”고 했다.

 

반면 의회는 ‘홍콩 지지’를 명확히 하고 있다. 홍콩 청년지도자 조슈아 웡이 9월 18일 워싱턴의 의사당에서 연설한 뒤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 등을 만났고, 중국은 거세게 반발했다. 하원은 10월 15일 홍콩인권·민주주의법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이달 14일에는 상원에 비슷한 법안이 제출됐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