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은 시리아 북부 이들리브의 바리샤라는 작은 마을에 숨어 있던 이슬람국가(IS) 우두머리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가 자폭한 뒤 하루만에 그의 사망을 확인했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거창한 기자회견을 열고 이를 발표했다. ‘은둔형 지도자’로 외부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알바그다디의 신원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15년 전에 확보한 그의 DNA 덕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27일(현지시간) 기자회견에서 “15분만의 그의 신원을 확인했다”고 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알바그다디는 미군 특수부대 델타포스 요원들이 들이닥치자 몸에 두른 폭탄을 터뜨려 자폭했다. 특수부대원들은 돌무더기에 깔린 그의 신체 일부를 수거해 DNA를 추출했다.
15년 전 확보한 DNA 정보
2004년 2월 알바그다디는 이라크의 미군에게 체포돼 쿠웨이트 접경 지대의 테러용의자 수용소에 수감된 적이 있다. 당시만 해도 위험인물이 아니어서 10개월만에 석방됐지만, 그 때 미군이 확보한 DNA 정보와 알바그다디의 시신에서 나온 정보를 대조해 동일 인물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뉴욕타임스는 전자레인지 크기의 최신형 DNA 검사기는 군용 헬기에도 장착할 수 있으며 90분 안에 신원을 확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알바그다디의 딸에게서 얻은 DNA 정보도 미국이 확보해놓고 있었다고 보도했다.
미군이 제거작전에 착수한 것은 5개월 전이다. 은신처는 알바그다디의 부인을 체포해 알아냈다. 몇 주 전 부인과 연락책을 붙잡아 심문을 했고, 이라크 국가정보국과 쿠르드족이 주축이 된 시리아민주군(SDF) 등을 통해 이들에게서 얻은 은신처 정보를 확인했다. 26일 자정(현지시간) 쯤 CH-47 군용헬기 8대가 이라크 아르빌의 군사기지를 떠나 시리아 국경을 넘었다. 이들리브 상공을 통제하던 러시아군이 하늘길을 열어줬다.
알바그다디가 이틀 전 도착해 숨어 있던 집 앞에는 위장폭탄과 부비트랩들이 깔려 있었다. 군용기와 헬기들이 포격으로 엄호하는 사이, 델타포스가 건물 옆쪽 벽을 부수고 안으로 들어갔다. 알바그다디는 자녀 셋을 데리고 지하터널로 도망쳤다. 미군은 군견을 투입해 추격했다. 알바그다디는 항복을 거부하고 자폭했다. 세 아이와 부인 2명, IS 조직원들도 숨졌다. 이 작전의 이름은 ‘카일라 뮬러’였다. 시리아에서 구호활동을 하다가 2015년 IS에 인질로 붙잡혀 희생된 미국 여성의 이름이다.
“IS 우두머리였다니” 놀란 주민들
작전은 성격상 극비리에 진행됐고 미 정부 내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을 비롯해 극소수만 알고 있었다. 가장 놀란 것은 바리샤 주민들이다. 시리아 최대 상업도시 알레포와 이들리브 사이에는 알 무두눌 마이타, 즉 ‘버려진 도시들’이라 불리는 곳들이 있다. 1~7세기 지어진 도시들이지만 후대에 버려져 이런 이름이 붙었으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이 지역에 속한 바리샤는 인구가 1000명이 조금 넘는 마을인데, 근래 내전 피란민 7000명이 들어가 국제원조에 의지해 살아가고 있다. 이 시골마을에서 알카에다 계열의 하야트 타흐리흐 알샴(HTS)이 IS 조직원들과 경합을 해왔다.
미군 작전이 끝난 뒤 알바그다디가 죽었다는 사실을 들은 주민들은 “IS 우두머리가 여기 사는지 몰랐다”며 당혹해했다고 AFP통신 등은 전했다. 한 주민은 알바그다디가 자신을 ‘알레포에서 온 상인’으로 소개했다고 말했다. 이 주민은 “친해지려고 애썼지만 그가 응하지 않았고, 집으로 초대해도 오지 않았다”고 했다. 아마드는 그와 친해지려고 지속적으로 노력했지만 실패했다며, “그 사람과는 인사만 나누는 사이였다”고 말했다.
이번엔 델타포스
공격에 투입된 미군은 100명이 채 안 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이 이 대단한 작전을 승인했다고 자랑했고,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은 CNN에 나와 “대통령이 성공할 확률이 가장 높은 옵션을 골라 단호하게 조처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뉴욕타임스는 군 관계자를 인용해, 시리아 북부에서 미군을 철수시킨 백악관의 결정 탓에 몇 주 전부터 계획했던 공습 일정이 바뀌었고 위험한 야간작전을 할 수 밖에 없었다고 보도했다.
2011년 파키스탄 아보타바드에서 벌어진 오사마 빈라덴 제거작전에는 미 해군 특전단 6팀(네이비실)이 투입됐다. 하지만 이번엔 델타포스가 나섰다. 이번 작전에 해군과 해병대, 공군 병력도 동원됐지만 은신처에 구멍을 내고 맨 먼저 들어간 것은 델타포스였다. 미 합동특수전사령부(JSOC)의 핵심 전력인 델타포스의 공식 명칭은 제1특수부대작전분견대다. 1977년 영국 공수특전단(SAS)을 모델로 만들어졌다. 네이비실은 2년 뒤 이란 테헤란 미대사관 인질사태 뒤 만들어졌다.
시리아 작전에 델타포스를 투입한 것은, 이들이 이라크 북부 쿠르드지역인 아르빌에서 비밀리에 활동해왔기 때문이다. 이 지역에 주둔 중인 델타포스 대원이 200명에 이르는데, 이들은 IS 테러범에 관한 유용한 정보가 나오면 곧바로 작전에 들어갈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고 한다.
델타포스는 2015년 5월 필리핀의 이슬람 극단조직 지도자 아부 사야프를 사살한 선례가 있다. 그러나 시리아에서 이들의 작전이 늘 성공하지는 않았다. 2014년 7월 IS에 억류된 제임스 폴리 기자 등 미국 인질들을 구출하지 못했던 것은 뼈아픈 일이었다. IS는 폴리를 참수해 잔혹함과 악명을 세계에 처음 각인시켰다.
프랑스는 축하, 러시아는 시큰둥
플로랑스 파를리 프랑스 국방장관은 트럼프 대통령 발표 뒤 곧바로 트위터에 “우리의 동맹 미국이 작전을 완수한 것을 축하한다”는 글을 올렸다. 프랑스는 2015년 11월 파리에서 IS가 관련된 동시다발 테러가 일어나자 곧바로 전투기 12대를 동원해 시리아를 공습했고, 병력 1000명을 파병하기도 했다. 파를리 장관은 IS에 의한 희생자들을 애도하면서, 테러조직과의 싸움은 끝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러시아의 반응은 사뭇 달랐다. 타스통신에 따르면 러시아 국방부는 “알바그다디가 미국 공습에 제거됐다고 볼 믿을만한 증거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러시아에 감사를 표했지만, 러시아 국방부는 이들리브 일대 안전지대 영공을 열어준 것에 대해서도 ”알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이란은 시리아 정부를 지원한다는 점에서 미국과 입장이 다르지만, 수니 극단조직인 알카에다나 IS와는 대척점에 서 있다. 알리 라비에이 이란 정부 대변인은 트위터에 “알바그다디의 죽음으로 다에시(IS)와의 전투가 끝난 것은 아니다”라면서 “그들의 테러리즘을 키우는 미국의 중동정책, 오일달러, 타크피리(수니 극단주의)를 박멸해야 한다”고 적었다.
트위터에서 종종 트럼프 대통령을 공개적으로 공격해온 아자리 자흐로미 정보통신부 장관은 “그들(미국)은 자신의 피조물을 죽였을 뿐”이라는 글을 올렸다. IS의 모체 격인 알카에다와 수니 극단주의 무장조직들이 1980년대 미 중앙정보국(CIA)의 지원 속에 배태된 사실을 지적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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