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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깊이보기]중국 위협하며 '비상경제권법' 거론한 트럼프...'노딜 무역갈등' 오나

딸기21 2019. 8. 25.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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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관 인질사태, 대량살상무기(WMD) 개발과 국경을 넘나드는 조직범죄, 미국을 강타한 초대형 허리케인, 자국민 학살과 내전. 미국이 긴급한 경제적 제재조치가 필요하다고 규정했던 상황들이다. 중국의 대미 무역흑자를 이런 ‘위기상황’이라고 규정할 수 있을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그렇다’고 주장했다. 트럼프는 “중국이 필요 없다”면서 미국 기업들이 중국과 거래를 끊는 상황까지 거론했다. 그러면서 지난 24일(현지시간) ‘국제비상경제권법(IEEPA)’을 근거로 들었다. 적대국가 혹은 비상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을 중국에 적용하겠다는 얘기다. 미·중 무역갈등은 점입가경으로 치닫고 있고, 다음달 양국 협상도 암운이 가득하다. 세계는 두 나라의 치킨게임을 보며 경기후퇴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다.

 

프랑스 비아리츠에서 열리고 있는 주요7개국(G7) 정상회의에서 25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 두번째),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오른쪽) 등 정상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비아리츠 EPA연합뉴스

 

재난·테러 수준으로 대응?

 

트럼프는 중국의 보복관세에 재차 보복을 선언하면서 중국과의 무역 ‘단절’까지 거론했고, “그러기 위한 권한도 있다”고 했다. 트럼프가 대통령의 권한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제시한 법이 IEEPA다. 1977년 통과된 이 법은 대통령이 ‘국가적인 비상 상황’이라 판단하면 경제적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대통령이 결정할 수 있는 것들의 범위는 매우 넓다. 특정 국가·조직 혹은 특정 활동에 관련된 사람·기구의 외환 거래나 금융활동을 조사·규제·금지하도록 명령할 수도 있고, 자산을 동결하거나 몰수할 수도 있다. 트럼프가 멕시코와 중국을 상대로 보복관세를 부과했듯, 관세를 무역협상의 도구로 쓰는 것도 넓게 보면 이 법을 통해 허용된 행위다.

 

당초 이 법이 만들어진 것은 대통령이 이런 권한을 너무 포괄적으로 행사하지 못하게끔, 의회가 견제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1차 세계대전 와중인 1917년 만들어진 ‘적성국교역법’에 따라 대통령이 광범위한 제재조치를 할 수 있게 했는데, 지나치게 초법적이라는 지적이 많았다. 그래서 IEEPA를 만들어 대통령이 사전에 의회와 협의하도록 하고 사후에도 의회에 반드시 보고하도록 했다. 하지만 의도와 달리 IEEPA는 국무부의 ‘테러지원국가’ 규정처럼 미국이 적대적인 세력을 압박하기 위한 수단으로 쓰였다.

 

지난 3월 미 의회가 발간한 ‘IEEPA의 기원, 진화, 활용’ 보고서에 따르면 올 3월 현재 이 법이 발동된 ‘비상사태’는 54건이고, 그 중 29건이 지금도 적용된다. 최장기간 지속되고 있는 것은 1979년 테헤란 미대사관 인질사건 뒤 이란에 대한 발동한 제재로, 1979년부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쿠바와 짐바브웨, 이라크, 시리아, 소말리아, 베네수엘라, 북한도 대상국이다. 국가가 아닌 특정 상황에 대해 발동한 전례도 많다. 생물학·화학무기 등 대량살상무기나 테러리즘에 관련된 경제활동, 무장조직이나 마약갱 등 범죄조직의 국경을 넘나드는 거래, 허리케인 카트리나 같은 재난이 그런 예다.

 

문제는 중국에서 재난·분쟁·테러나 정변 같은 위기 상황이 벌어진 게 아닌데도 이 법을 적용할 수 있느냐다. 대통령이 미국 기업과 기업인들에게 ‘중국을 떠나라’고 하려면 그럴 만한 상황이 있어야 하지만 트럼프는 단순히 중국에 대한 보복을 정당화하기 위해 이 법을 언급했다.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국제경제 담당 보좌관을 지낸 대니얼 프라이스는 뉴욕타임스에 “이 법은 특별한 국가안보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것인데, 지금 같은 상황에서 이 법을 발동하면 권한 남용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커 기브스 상하이 미국상공회의소 의장은 “중국 시장은 너무 크고 너무 중요하다”면서 트럼프 발언을 비판했다.

 

‘노딜 무역갈등’ 오나

 

중국을 겨냥한 트럼프의 공격은 이미 외교적인 표현의 범위를 진작부터 넘어섰다. 중국이 지적재산권을 ‘도둑질’한다고 했고, 기준환율을 고시하기도 전에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했다. 지난 23일에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을 ‘적(enemy)’으로 지칭하기까지 했다. 트럼프 정부가 지적재산권 도용이나 남중국해 무력과시를 ‘중국이 미국의 국가안보를 위협한다는 증거’로 삼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물론 트럼프가 실제로 이 법을 중국에 적용하도록 지시를 내릴 지는 알 수 없다. 트위터를 통해 엄포를 놓기는 했지만, 트럼프 특유의 협박에 그칠 수도 있다. 그렇다 해도 이미 입밖에 낸 이상 무역갈등을 더 악화시킬 것은 뻔하다. 뉴욕타임스와 CNN 등 미국 언론들은 “이런 위협 자체가 중국과의 관계에 악영향을 미치고 중국 내에서 강경론이 힘을 얻게 만들 수 있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베이징의 분위기는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중국은 23일 대미 보복관세를 발표하면서 물러서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보여줬다. 중국 상무부는 이튿날 성명에서 “미국은 분쟁을 고조시키는 행위를 멈추라”고 촉구하면서도 추가 보복조치는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미리 예고했던대로 조만간 화웨이 제재에 맞선 미국 기업 ‘블랙리스트’를 발표할 것으로 보인다.

 

[라운드업] 미·중 무역전쟁, 어떻게 진행돼왔나

 

중국 언론들도 일제히 대미 강경론을 쏟아냈다. 인민일보는 25일 사설에서 미국의 보복조치들을 “독불장군식 행보” “교활하고 졸렬한 행위”라고 맹비난했고, 환구시보는 “미국에 반격할 망치는 많다”고 썼다. 환구시보의 후시진 편집장은 앞서 트위터에 “14억 인구의 중국 시장이 없다면 미국 농부들이 파산할 것”이라면서 “중국은 ‘노딜(No Deal)’ 시나리오도 준비하고 있다”는 글을 올렸다. AP통신은 다음달 워싱턴에서 열기로 돼 있는 양국 고위급 무역협상이 이뤄질지 불확실하며, 갈등이 누그러질 가능성은 훨씬 낮아졌다고 지적했다.

 

양국이 관세를 놓고 전면전을 벌이고 무역협상이 파국 위기를 맞으면서 ‘R(경기후퇴)의 공포’는 더욱 커졌다. 10년 짜리 미국 장기 국채 금리가 2년짜리보다 낮아지는 ‘금리 역전’이 지난주까지 2주 새 네 차례나 일어났다. 워싱턴과 베이징의 설전이 일어날 때마다 세계 증시는 요동을 치고 있다.

 

26일부터 한 주 동안 미국에선 2분기 국내총생산(GDP) 증가율과 제조업지수·주택가격지수 등이 잇달아 발표된다. 미국의 경제지표들과 프랑스에서 열리고 있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합의 등이 글로벌 경기 후퇴의 가늠자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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