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칼럼

[기협 칼럼] 취약한 사회

딸기21 2018. 11. 29.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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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약속이 있었는데 전화가 불통이다. IPTV로 즐겨 보던 중국드라마를 못 보게 된 것 정도는 별일 아니지만, 인터넷만 끊긴 게 아니고 전화가 아예 먹통이 된 건 처음이었다. 우리집 인터넷이 문제가 아니라 뭔가 사고가 났구나 하면서 동네를 서성이다가 3G 연결망이 이어진 곳을 찾아 뉴스를 확인했다. KT 아현지사에 화재가 났다고 했다. 인명피해가 없었던 것은 다행이지만, 정보기술(IT) 사회의 약점이 그대로 드러났다. 

 

가족 중 한 명이 어느 통신사의 협력업체에서 일하는 엔지니어다. 이날 먹통 사태에 대해 대뜸 꺼낸 말은 “KT가 금융사업에 치중하면서 엔지니어들을 많이 잘라냈다”는 것이었다. 일요일, 우리 부서의 이혜인 기자가 취재를 해보니 그동안 KT가 구조조정을 참 많이도 했던 모양이었다. 그 회사만을 탓하고 싶지는 않다. 구조조정을 하지 않았더라면 “비효율적인 방만 경영”이라고 비난하는 사람들, 인력을 줄이라고 소리치는 언론들이 적잖았을테니까. 


Psychology Today


 

정규직 직원들을 몰아내고 외주화한 자리에서 하청업체 직원들이 일한다. 아마 상당수는 하청업체의 비정규직들일 것이다. 돈을 아끼기 위해 심지어 그 노동력마저 줄인다. 5개구 지역의 회선이 집중된 아현지사에 사고 당시 근무자는 단 2명에 불과했다는 기사가 보인다. 그런 곳이 KT뿐이겠는가. 그저 이 사회의 취약점을 확인시켜준 것뿐이다. 통신망으로 모든 것이 연결된 사회를 탓하며 문명비판적인 감성에 빠져들기엔 우린 너무 많이 왔다.

 

월요일자 경향신문 기획기사. 의사 대신 수술 가운을 입고 집도를 하는 의료기기 영업사원 얘기가 실렸다. 환자들 처지에서 보면 대리수술을 시키는 의사나 메스를 잡는 영업사원들이나 모두가 불법행위를 하는 범죄자다. 하지만 영업사원들이라고 그게 불법인 줄 몰랐을까. 먹고살기 위해 그랬을 것이다.

 

그 직장에서, 그 직업을 가진 이들이 해야할 일이 외주화라는 이름으로 ‘바깥’으로 밀려난다. 때론 돈에 눈먼 사람들이 불법으로 ‘대리’를 내세운다. 그 ‘안’의 누군가를 믿고 맡겼던 일들이, 책임도 권한도 밥그릇도 제대로 갖지 못한 다른 이에게 맡겨진다. 하청은 합법이고 대리수술은 불법이라는, 얼핏 매우 커보이는 차이가 있긴 하다. 하지만 여러 불법파견 논란에서 보이듯 그 차이가 실은 종이 한 장 두께밖에 안 된다. 이익을 위해 아래로, 아래로 일을 떠내려보내는 것이 이젠 당연한 현실이 됐다. ‘국가기간통신망 관리조차 외주화해서야’라는 개탄에 동의할 이들이 적지 않겠지만, 인천국제공항에서 보듯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바꾸겠다고 하면 그땐 이해관계자들이 들고 일어나 분노를 뿜어낸다.

 

그것이 숱한 사고의 원인이고, 위험성의 본질이다. 온전치 못한 일자리를 떠안아야 하는 이들뿐 아니라 이 사회의 모든 구성원에게 이런 현상은 위험하다. 누군가의 일을, 삶을 잡아먹는 것으로 떠받치는 사회는 취약하다. 통신이 끊어진 날, KT 사태를 보며 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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