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읽은 토머스 프리드먼의 책. 내가 오랜만에 읽은 게 아니고 이 아저씨가 오랜만에 내놓은 책이겠지, 아마도. 프리드먼의 책은 <베이루트에서 예루살렘까지>를 비롯해 경도와 태도, 렉서스와 올리브나무, 뜨겁고 평평한~, 세계는 평평하다 등등 전부 읽었다. 만델바움과 함께 낸 <미국쇠망론> 하나만 빼고.
프리드먼의 책을 찾아 읽기는 하지만 언제나 별로라고 생각했다. 말투가 싫어... 그런데 이번 책은 좀 달랐다. 일단 재미는 있었다. 너무나 빨리 변해가는 세계, 너무나 걱정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낙관주의를 견지하면서 우리 모두가 변화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
프리드먼은 무지막지한 속도로 달라지는 세상의 메커니즘을 대기계(기술의 변화), 대자연(기후변화), 그리고 무어의 법칙(변화의 속도를 곱배기로 만드는)같은 개념들로 설명한다. 프리드먼식 개념붙이기에 너무 얽매일 필요는 없을 것 같고. 롤러블레이드를 타고 다니며 수퍼노바(클라우드를 프리드먼은 이렇게 부른다)의 혁신을 이끄는 에드워드 텔러의 손자를 비롯해, 실리콘밸리와 인도 등등 여러 곳의 격변을 생생하게 묘사했다.
너무 낙관적이라며 트집잡을 수도 있고, '힘센 나라 가진 자들의 논리에만 충실한 것 아니냐, 지금 지구가 개판인데'라고 반발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프리드먼이 그 정도 모를 리는 없을 것같고... 이 혼란 속에 최대한 많은 이들이 적응하고 변해야 하며, 그 변화에 맞춰 개인은 스스로 달라지고 기업은 추동하고 정부는 도와야 한다는 조언은 누가 뭐라든 맞는 얘기다.
오히려 내게 인상적이었던 것은, 이젠 환갑이 지나버린 이 저널리스트의 목소리가 변해가는 과정이랄까. 베이루트~는 유대인 가정에서 자라나 중동에서 전쟁을 취재한 열정적인 기자의 기록이었다. 그 뒤에 그를 세계적인 스타로 만들어준 '렉서스~'라든가 '평평' 같은 책들은 세계를 넘나들며 변화의 현장을 소개하면서 컨셉트를 잘 잡았고 브랜딩도 잘 했지만... 넘나 미국적이고 넘나 주류적인 시각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기분이 나빠지는 그런 책들이었다.
그런데 이번 책에선 어쩐지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것같은 느낌이 난다. 책은 미국 대선이 한창일 때, 하지만 결과가 결정되기 전에 나왔다. 이번 책에서 프리드먼은 "미국은 변화를 주도해야 한다, 미국이 나서야 한다, 여전히 미국은 해줘야 할 역할이 많으며 할 수 있는 게 많다"고 거듭해서 말한다. 미국의 오만함을 체현해보이려고 하는 얘기가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다. 트럼프식 미국우선주의, 거기 동조해 결국 트럼프를 미국 대통령으로 만들어버린 미국인들의 정서, 점점 배타적으로 안팎의 이방인들을 몰아내려는 미국 사회의 흐름을 경계하기 위해 열변을 토하는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트럼프의 당선이었고, 세계는 우익 포퓰리스트들의 선동에 휘둘리고 있으니. 미국 대선이 끝나고 트럼프가 하는 짓들, 거기 박수치며 세상을 거꾸로 살려 하는 사람들을 지켜보면서 이 책을 읽으니 참 허무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허무하게 바라볼 수만은 없지. 이대로 흘러가게 둬서도 안 되고. 유대인들이 여전히 차별받고 집 구하기도 힘들던 시절, 자기 고향 세인트루이스파크는 어떻게 유대인들을 끌어안는 곳이 되었는지를 설명하는 데에 저자는 이 책의 뒷부분 4분의 1 정도를 할애했다.
암튼, 이모저모로 생각할 거리를 던진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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