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orld Is Flat
토머스 L. 프리드먼 (지은이) | Farrar Straus and Giroux | 2006-04-18
어떤 부분은 지겹다 싶고 또 어떤 부분은 제기랄... 이러면서도 프리드먼의 새 책이 나오면 읽지 않을 수가 없다. 내가 이 사람의 글을 좋아하건 좋아하지 않건, 이 사람의 글 속에 통찰력이 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몇 년 새 프리드먼의 책들이 번역돼 나오면 웬만한 것은 다 읽어보았고, 더불어 로버트 카플란도 가능하면 읽으려고 애쓰는 중이다. 지난 여름엔 벼르고 벼르던 파리드 자카리아의 책도 간신히 한권 읽었고, 지금은 니알 퍼거슨의 책을 손에 잡고 있다.
제국주의를 연구한 영국 학자인 퍼거슨은 우선 논외로 하자. 프리드먼과 카플란, 자카리아는 모두 미국에서 통칭 국제문제에 대해 글을 쓰는 사람들이다. 이 정도만 공통점일 뿐, 이 들의 글은 참 많이 다르다.
카플란은 냉혹한 사람이다. 못됐지만 분명 정곡을 찌르는 부분이 있다. 왜냐? 못됐기 때문에... ‘막말’을 해도 되니까... 늘 그렇듯, 못된 소리는 못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다(노빠를 미워하는 자들은 전여옥을 좋아한다). 못된 사람들로 하여금 “거봐, 이렇게 여러곳 돌아다닌 사람이 무슬림들은 한심하다고 하잖아, 아프리카 깜둥이들은 미련하다고 하잖아, 미국이 다 쥐고 흔들어야 세상이 돌아간다고 하잖아” 이렇게 말한 ‘근거’라는 걸 만들어주는 것이 카플란 같은 사람들인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플란을 읽는 이유는? 잘난 사람들, 착한 사람들이 별로 돌아다니지 않는 곳들을 돌아다니며 ‘미련하고 한심한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카플란이기 때문이다. 꼴 보기 싫지만, 그래도 이 자가 하는 말들엔 ‘좌파’들이 애써 귀 닫는 일말의 진실이 있기 때문에. 그것이 바로 카플란의 통찰력이기 때문에.
자카리아도 마찬가지다. 카플란같이 못되진 않았지만 말투는 냉랭하다. 민주주의에 대한 자카리아의 시각은, 외교를 바라보는 카플란의 시각과 일맥상통. 그러나 자카리아는 카플란에 대면 훨씬 공정하다. 민주주의가 없는 게 아니라 너무 많아서 문제다! 제3세계를 놓고 이렇게 말하면 개발독재주의자의 뻘소리처럼 들리겠지만, 미국의 ‘과도한 민주주의’에 대한 자카리아의 지적을 잘 들여다보면 새겨들을 구석이 없잖아 많이 있다.
그럼 프리드먼은? 프리드먼은 원래 중동 전문가인데, '렉서스와 올리브나무' 때부터 세계화 문제에 천착하고 있다. '경도와 태도'에서는 9.11 이후 미국 맛 간 지식인들의 전형적인 또라이 끼를 드러내 보이더니, '세계는 평평하다' 부분에 이르러서는 다시 '렉서스' 논조로 돌아섰다.
난 항상 불만이었던 것이, 프리드먼은 카플란보다는 착한 것 같은데 왜 못돼먹은 카플란만큼의 통찰력이 안 보이는 것일까 하는 점이었다. 프리드먼이 유명하기도 훨씬 더 유명하고, 책도 훨씬 더 많이 팔았을 텐데 말이다.
이유는 어쩌면 단순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프리드먼은 유대계이고, 정상적인, 조지 W 부시 식의 일자무식 외교와는 딱 선을 긋는, 민주당 성향의 저널리스트다. 프리드먼은 유대계 언론 뉴욕타임스의 유대계 간판 필자이고, 중동이나 이슬람 사회에 대한 이해 정도가 누구보다도 높은 사람일 것이다. 그러니까 카플란처럼 ‘무식하게 까대는’ 짓은 안 하고, 못 한다. 자카리아는 학구적이고 카플란은 '끝까지 함 가보는' 그런 스타일인 반면에 프리드먼은 적당히 학구적, 적당한데서 끝내는, 어딘가 나이브하면서 전형적으로 ‘저널리스틱한’ 그런 스타일로 보였다는 얘기다.
이 책에서 프리드먼은 '렉서스'보다 조금 더 나아간다. 영화 ‘트랜스포머’에서, 쿠웨이트의 미군들은 로봇군단에게 개박살 난다. 미군들은 본국으로 SOS 전화를 때린다. 전화는 누가 받나? 인도의 전화교환수들이 받는다. 글로벌 아웃소싱의 한 단면에 대한 절묘하고도 멋지구리한 풍자! 프리드먼은 '트랜스포머'보다는 쫌 덜 극적으로, 쫌 덜 재미있게, 그러나 세계화에 대한 다른 책자들보다는 그래도 생생하게, 최소한 생생한 척 하면서, 유명한 사람들(주로 세계적인 기업 총수들)과 ‘평범한 이웃들’의 말을 조잘조잘 섞어가면서 글로벌 경제의 속살들을 헤짚는다.
이 책의 타이틀을 놓고서 “세계가 뭐가 평평해, 불평등이 얼마나 많은데”라고 비판하는 건 좀 어불성설이다. 이 책은 “세상의 모순 따윈 이제 없어졌다”고 예찬하는 것이 아니라, ‘평평해져 가는 세계’의 일선 주자들을 들여다보고, 그 뒤의 세상을 조금이나마 미리 짚어보기 위한 것이니깐.
뒷부분 테러 얘기 나올 땐 지겨워서 환장할 것 같긴 했다. 하지만 세계화의 구체적인 지점들이 많이 들어가 있어 읽을만했다. 이름 붙이기, 즉 '평평하다' '렉서스와 올리브나무' 식의 브랜드 짓기가 좀 지나치다 싶은 느낌이 들긴 하지만 전반적으로 괜찮은 책이다.
사실 프리드먼은 '미국적인, 너무나도 미국적인' 것처럼 보이면서도 또한 미국의 주류보다 앞서나가는 측면이 있다. 이전 책들 볼 때엔 사실 이렇게 세계를 누비면서 어째 이렇게 꿰뚫어 찌르는게 없나 싶어 짜증이 나기도 했었는데, '세계는 평평하다'에 이르면 프리드먼도 아주 '길이 나서' 통찰력 비슷한 것을 많이 보여준다. 세계화 시대 자기계발법 이런 것에 관심 있는 사람도, 이 책에서 힌트를 많이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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