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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깊이보기]“영국 못 믿어, 노동당 못 믿어” 독자행보 나선 스코틀랜드

딸기21 2016. 6. 28.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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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할 것이냐고? 물론이다. 우리 의원들은 법적인 동의를 해주는 것을 거부할 것이다.”

 

유럽연합(EU) 탈퇴 결정 뒤 영국에서 가장 발빠르게 움직이는 인물은 보수당의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도, 차기 총릿감으로 떠오르는 보리스 존슨 전 런던시장도 아니다. 스코틀랜드 자치정부 수반인 수석장관이자 스코틀랜드국민당(SNP) 대표인 니콜라 스터전(45)이다. 스터전을 중심으로 한 스코틀랜드의 독자행보는 지난 24일(현지시간) 브렉시트 국민투표 결과가 발표된 뒤 갈수록 빨라지고 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 영국과 갈라져서 ‘유럽의 일원’으로 남겠다며 분리독립을 불사하겠다는 태세를 보이고 있다.


니콜라 스터전 스코틀랜드 수석장관(오른쪽)이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국민투표 결과가 나온 다음날인 지난 25일(현지시간) 에딘버러에서 긴급 각료회의를 하고 있다. Getty Images



스터전은 26일 BBC방송 인터뷰에서 SNP 의원들이 브렉시트에 “법적인 동의”를 해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법적 측면을 따지고 들어가면, 스코틀랜드가 브렉시트를 막아낼 ‘자격’이 있는지는 불확실하다. 결국에 가서는 웨스트민스터, 즉 런던 의회가 국민투표 결과를 받아들이며 브렉시트를 승인하는 형식이 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전체 영국에서 EU 탈퇴표가 52%를 차지했던 것과 달리 스코틀랜드에서는 잔류 지지가 62%였다. 스터전과 SNP는 이런 민심을 발판으로 EU에 남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  SNP는 스코틀랜드 의회 의석 129석 중 63석을 갖고 있다.

 

스터전은 28일 에딘버러 홀리루드의 스코틀랜드 의사당에서 EU와의 ‘잔류 협상’에서 자신에게 전권을 위임하도록 의원들에게 촉구할 계획이다. 이 자리에서는 스터전에게 권한을 위임하는 것과 함께 스코틀랜드 분리독립 주민투표를 다시 추진하는 문제도 거론될 것으로 보인다. 2년 전 투표에서는 55% 대 45%로 독립 대신 잔류를 택한 쪽이 많았으나 지금 투표를 다시 하면 결과는 알 수 없다. 앞서 스터전은 브렉시트 투표결과가 나오자마자 주민투표를 다시 실시할 수 있다고 말했다. 25일에는 스코틀랜드만이라도 유럽 단일시장 안에 남을 수 있도록 EU 측과 독자협상을 하겠다고 했다. 

 

스코틀랜드가 이렇게 나오는 것은, 자칫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가 영국의 EU 탈퇴 협상에서 배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석유·천연가스를 제외한 스코틀랜드 수출품의 20% 가량은 EU 회원국들로 향한다. 인구는 530만명 뿐이고 영국의 일부로 묶여 있지만, 스코틀랜드 자체만으로도 EU 전체 회원국들과 비교했을 때 12번째 경제규모를 자랑한다. 영국 국내총생산(GDP)의 1%를 차지하는 북해 석유·천연가스전도 스코틀랜드에 있다. 

 

노동당에 대한 불신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SNP가 득세하기 전까지 스코틀랜드는 전통적으로 노동당 편이었다. 2014년 분리 주민투표 때 잔류로 결론나기는 했으나, 당시 노동당은 지도부의 무능과 분열 탓에 스코틀랜드 유권자들을 설득하느라 막판까지 애를 먹었다. 에딘버러 출신인 고든 브라운 전 총리가 나서서야 간신히 유권자들을 붙잡을 수 있었다. 더군다나 지금의 노동당은 사분오열돼 진흙탕 싸움을 벌이고 있다. 스코틀랜드로서는 더이상 노동당을 믿고 기댈 수 없는 것이다. 정치적, 경제적 이해관계 밑에는 물론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겠다는 오랜 의지도 깔려 있다.



스코틀랜드 정치권 대부분이 스터전의 독자 행보를 지지한다. 스코틀랜드 보수당의 루스 데이비드슨은 브렉시트 투표 전날 BBC가 개최한 대토론회에서 잔류를 호소한 패널 중 한 명이었다. 스코틀랜드 노동당의 케지아 덕데일 대표는 “EU를 떠나기로 한 결정은 스코틀랜드 경제에 해를 입힐 것”이라며 잔류를 지지한 지역 유권자들 뜻을 강조했다. 중앙의회에서 스코틀랜드 노동당에 소속된 유일한 의원인 이언 머리는 제러미 코빈 대표에 항의해 예비내각 명단에서 빠져나간 의원들 중 한 명이었다.

 

그럼에도, 스코틀랜드의 의지가 EU에 어느 정도 반영될지는 미지수다. 아일랜드는 “스코틀랜드가 유럽에 남는 것을 지지한다”고 했지만 EU 지도부와 회원국들은 확답을 않고 있다. 프랑스와 스페인 등 여러 회원국이 내부의 분리독립 움직임에 골치를 앓고 있는데, 스코틀랜드가 영국으로부터 분리되면 분리 움직임이 역내에 확산될까봐서다. 경제적으로도 스코틀랜드와 나머지 영국 간 교역량이 다른 EU 회원국들과의 교역량에 비해 3배에 이르는 만큼 분리되기가 쉽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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