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르면 내년 초부터 이란에 대한 경제 제재가 풀릴 것 같습니다. 지난 7월 ‘역사적인 핵 합의’가 타결되면서 이란이 국제 에너지 시장 복귀를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지난 4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5개 상임이사국에 독일을 더한 6개국(P5+1)과 이란이 핵협상의 큰 틀에 합의했고, 7월 13일에 최종 합의에 도달했습니다. 이란 핵 ‘의혹시설’을 국제기구가 사찰하고, 그 대신 서방은 경제 제재 해제의 절차와 범위, 시한 등을 정한 것이죠. 타결되고 일주일만인 7월 20일 유엔 안보리가 핵 합의안을 추인했습니다. 이때부터 90일 이후 협정이 발효되게 돼 있으니, 발효 시점은 10월 19일입니다.
협정이 발효되면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이란 핵시설을 조사하게 됩니다. 아마노 유키야 IAEA 사무총장은 올 연말까지 이란의 과거 핵 활동을 살펴보게 될 것이라 말한 바 있습니다. IAEA가 사찰을 하고 이란이 협력했음을 확인하면, 미국과 유럽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제재를 풀게 되죠. ‘제재 조치를 동결시키는’ 즉, 제재를 일시 중단하는 형식이지만 이란이 국제무대에 복귀하는 것이고, 에너지 시장에서 날개를 펴게 되는 것인 만큼 그 관심은 엄청납니다.
이란에 손 내미는 나라들
이란 석유에 가장 먼저 손을 뻗친 나라는 인도입니다. 계약액은 수십억 달러에 이릅니다. 지난 9월 30일 인도 에사르 오일(Essar Oil)과 망갈로르 정유·석유화학회사(Mangalore Refinery and Petrochemicals Ltd), 인도석유(Indian Oil Corp)와 힌두스탄석유(Hindustan Petroleum Corp) 같은 인도 기업들이 이란 원유 첫 인도분 대금 7억 달러를 지불했습니다. 10월 12일에는 2차분 대금 7억 달러를 결제했고요. 뉴델리의 비즈니스스탠더드 보도에 따르면 이들은 총 65억 달러어치를 사들일 계획이라고 합니다.
일본의 움직임도 빠릅니다. 비잔 잔가네 이란 석유장관은 10월 12일 미국의 제재가 풀리는 대로 이란 석유 수입량을 늘리기 위해 일본이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국영 프레스TV에 따르면,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상이 이란을 방문하여 잔가네 장관과 만나 석유를 사가는 문제를 논의했다고 하는데요. 일본은 액화천연가스(LNG) 생산에 큰 관심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잔가네 장관은 9월 26일에는 폴란드의 야누스 피에초친스키 부총리를 테헤란에서 맞아 원유 거래 문제를 논의했습니다. 정유시설을 갖추기 위해 그간 나름 인프라 투자를 많이 해놨던 폴란드가 이란 원유를 들여다가 정유를 하겠다는 내용이었죠. 잔가네 장관은 LNG 공급 역시, 의제 중 하나였다고 국영 IRNA통신에 말했습니다. 개별 국가들과의 협상뿐만 아니라, 내년 2월엔 영국 런던에서 석유·가스 컨퍼런스를 열고 대대적으로 에너지 수출 판로를 찾을 계획이라고 합니다.
지난 4월 핵 협상의 큰 틀이 합의된 뒤 각국 기업은 인구 8,000만 명의 거대 시장이자 석유·천연가스 부국인 이란에 진출할 준비를 해왔습니다. 때문에 제재가 풀리게 되면 이란으로 들어가게 될 돈이 엄청날 것이란 걸 예상할 수 있습니다. 이란 의회 예산위원회는 외국 은행에 묶인 돈이 1,000억 달러 규모에 이른다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자원을 팔아 얻을 이익이 아니라 제재로 동결돼 있던 자산만 그 정도라는 거죠.
원유 매장량 세계 4위, 천연가스는 2위
이란은 세계에서 에너지 자원 보유량으로는 몇 손가락 안에 드는 나라입니다. 지난해 1월 추정치 기준으로 이란은 베네수엘라와 사우디아라비아, 캐나다에 이어 네 번째로 석유 매장량이 많았습니다. 매장량 추정치는 1,570억 배럴에 이릅니다.
천연가스 추정치도 한번 볼까요?
하지만 그동안 이란의 자원 수출은 극히 제한돼 있었습니다. 이란은 2011년 석유를 팔아 950억 달러를 벌었으나 지난해에는 536억 달러의 수입을 얻는데 그쳤습니다. 이란 석유가 시장에 나오면 기름 값이 더 낮아질 수 있습니다. 비록 기름 값이 싸졌다고는 하지만, 이란이 제재가 강화되기 이전 수준으로만 돌아간다 해도 수백억 달러가 이란으로 유입될 것입니다.
다만 제재가 풀린다 해도 이란이 곧바로 석유 생산량을 늘리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이란은 막대한 석유와 천연가스를 보유하고 있으나 오랜 제재로 시설이 낙후됐고, 특히 정유 능력이 크게 뒤쳐져 있습니다. 2013년 이란의 하루 석유생산량은 311만 배럴이었고, 시점이 좀 오래 전이기는 하지만 2011년 이란의 정제유 생산량 역시 하루 172만 배럴에 그쳤었죠. 제재가 더 강화되기 이전이었는데도 정제 용량이 적었던 겁니다.
그래서 자원 대국인 이란은 가솔린을 사들이는 실정이고, 이란 국민들은 에너지난에 허덕이고 있죠. 실상 이란이 핵발전을 해야겠다고 했던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가 전력 부족이었습니다. 이 부분은 타당성이 있기에, 미국을 비롯한 협상 파트너들도 이란이 다른 나라들처럼 ‘평화적 용도(즉 발전 용도)의 핵 이용’은 스스로 결정해서 할 수 있도록 어느 정도 인정해준 것입니다. 분석가들은 이란이 동결됐던 자산을 들여가 막혔던 돈줄이 좀 풀리면 내년 상반기에만 10억 달러어치의 가솔린을 수입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2010년만 해도 이란의 가솔린 수입량은 하루 10만 배럴이었는데 2012년에는 거의 ‘0’으로 떨어졌죠.
이런 걸 보면 제재가 이란 국민들의 삶에도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을지 짐작해볼 수 있겠지요. 지금은 하루에 4만1,000배럴을 수입하고 있습니다. 블룸버그 통신은 이란의 가솔린 수요가 제재 해제 뒤 적어도 20%는 늘어날 것으로 예측했습니다. 최소한 매일 5만 배럴은 들여가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죠. 미국과 서방의 정유 업체들이 이란 시장을 눈여겨보는 것은, 원유 생산국이기도 하지만 정제유 수입국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원유 많은데 정제유는 수입, 인프라 만드는 게 관건
바로 이런 이유에서 이란은 석유 산업의 인프라를 대폭 확충하려 하고 있습니다. 이란이 계획대로 정유 능력을 늘릴 수만 있다면, 이르면 내년 말에는 가솔린 수입을 중단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란은 지금 걸프에 면한 남부 지역의 반다르 압바스 항구에 ‘페르시안 걸프스타’라는 이름의 새 정유소를 짓고 있습니다. 이 시설이 완공되면 하루 360만 배럴의 정제유를 생산할 수 있게 되죠. 이게 가동되면 가솔린 수입국에서 수출국으로 바뀌게 되는 겁니다. 물론 지금 추진하고 있는 정유시설 가동 프로젝트가 ‘예상대로 착착 진행된다면’이란 전제가 붙긴 하지만요.
전문가들은 이란 정유부문에 향후 투자돼야 할 돈이 2,00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봅니다. 이란은 산유·정제시설을 보수하기 위해 외국 투자와 다국적 기업들의 참여를 바라고 있습니다. 영국·네덜란드 합작기업 셸과 프랑스 토탈, 이탈리아 ENI의 간부들이 이미 지난 6월에 오스트리아 빈에서 이란 측과 접촉한 바 있죠.
월스트리트저널은 중국을 핵 협상 타결의 최대 수혜국으로 꼽았습니다. 이란 석유가 시장에 풀리면 가장 많이 사들일 나라는 결국, 중국이라는 겁니다. 중국은 이미 지난해부터 핵 합의를 내다보며 이란산 석유의 수입량을 늘려왔습니다. 이란은 중국의 잠재적 에너지 공급원인 동시에, 중국이 노리는 시장이기도 하죠. 그러므로 이란 인프라·설비 투자에 중국이 상당 부분 관여할 것으로 관측됩니다.
중국은 핵 협상에 적극적으로 관여하지는 않았으나, 러시아와 함께 이란을 엄호하는 쪽이었습니다. 아직 미국 기업들은 정부의 눈치를 보고 있지만 중국과 유럽 기업들이 앞 다퉈 테헤란으로 향하는 상황에서 손 놓고 있지는 않을 게 확실합니다.
하지만 지나친 낙관론을 경계하는 시각도 적지 않습니다. 10월 5일 뉴욕타임스는 이란이 석유회사들에게 당장 엄청난 광맥(bonanza)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지적하는 기사를 실었습니다. 잠재력이 엄청나다는 것이지, 당장 이란에 돈이 넘쳐나게 되고 석유와 천연가스가 펑펑 쏟아져 나오는 것은 아니니까요. 결국 시간이 걸린다는 얘기입니다.
유가가 떨어져 있는 상황에서 섣불리 투자를 했다가 기업들이 오히려 손실을 볼 수 있다는 관측도 있습니다. 미국 국무부에서 에너지분야 전문가로 일했던 데이비드 골드윈은 이 신문에 “이란에서의 수익성은 높지만 실제 투자는 느리게 진행될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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