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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폴라니, 새로운 문명을 말하다

딸기21 2015. 5. 22.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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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폴라니, 새로운 문명을 말하다

칼 폴라니. 홍기빈 옮김. 착한책가게



한동안 책만 펼치면 아마티아 센, 그 후 몇 년 동안은 베블런, 그 다음에는 폴라니. 너무 유행하는 거라 안 보고 있었지만 그래도 발에 걸리는 걸 안 읽으면 자꾸 넘어지니 책 챙긴 김에 읽었다. 별로 재미는 없고, 다른 책들을 더 찾아봐야겠다.


산업혁명은 인류의 역사에서 결정적인 분기점이었다. 기술, 경제 조직, 과학이라는 서로 다른 세 개의 힘들이 순서대로 서로 엮이기 시작했다. 그 시작은 여러 발명품들의 출현이었고, 그 다음에는 인위적으로 시장을 조직하기 위한 운동이 나타났다. 맨 마지막으로 여기에 과학이 결합된 것은 거의 1세기가 지난 뒤의 일이지만 그 효과는 실로 폭발적이었다. 그 뒤에는 이 세 가지 모두에 가속도가 붙었다. - 50 


서양의 문화란 과학, 기술, 경제 조직이 아무런 제약도 고삐도 없이 서로서로를 강화시키면서 인간의 삶을 만들어내는 문화다. ... 서양은 이제 그 스스로가 낳은 아이들을 제대로 훈육시켜야 할 과제를 떠안게 된 것이다. 사회학자들은 핵분열 현상, 원자폭탄, 아시아 여러 나라의 혁명, 이 세 가지를 과학, 기술, 정치라는 세 개의 다른 영역으로 분류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이 세 가지 현상은 하나의 산업문명이 성장해나가는 과정 안에서 보면 지극히 밀접하게 연결된 단계들이다. -51


시장경제는 새로운 유형의 사회를 창출하였다. 경제 시스템 혹은 생산 시스템은 스스로 알아서 움직이는 장치에 위탁되었다. 하나의 제도적 메커니즘이 인간의 일상 활동은 물론 자연의 자원까지도 통제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일종의 ‘경제 영역’이라는 것이 출현하였고, 이는 사회의 다른 제도들과는 날카롭게 구별되는 경계선을 가지고 있었다. 

... 이렇게 해서 출현하게 된 인간 군집이 역사상 존재했던 그 어떤 사회도 감히 넘볼 수 없을 정도의 ‘경제적’ 성격을 가지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이다. 

... 인간은 결코 이 이론이 요구하는 만큼 이기적인 존재였던 적이 없다. 인간으로 하여금 노동을 하게 만드는 유인이 ‘경제적’ 동기 하나뿐이었던 적은 한번도 없었다. 면밀히 조사해보면 여전히 인간은 놀랄 정도로 ‘혼합된’ 동기로 움직이는 존재임이 밝혀진다. 여기에는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 대한 의무라는 동기도 있으며, 심지어는 은근히 자신의 노동 그 자체를 즐기는 동기마저 있다. 

... 하지만 굶주림과 이득이라는 두 가지만이 순수한 ‘경제적 동기들’로 여겨져 특별한 지위를 부여받게 된다. 그리고 인간은 실제로 이 두 가지 동기를 행동의 근거로 삼는 존재라고 여겨지며, 명예와 자존심, 시민로서의 책무와 도덕적 의무, 심지어 자존감과 체면 같은 것들까지도 생산과는 무관한 것으로 여겨졌고 ... 사회의 여러 제도들은 모두 그 경제 시스템에 의해 ‘결정된다’는 교리가 대두되었다. -59

모든 생산요소들에 자유로운 시장이 확립되어야 한다는 이 명제는 곁보기에는 아주 단순해 보입니다만, 실제로는 사회 전체가 시장 체제의 필요에 복속되어야 한다는 것을 뭇합니다. 그리하여 거의 아무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전대미문의 것 하나가 출현하게 됩니다. 바로 경제적 사회라는 것으로서, 즉 사회가 그 존속을 오로지 물질적 재화에만 의존한다는 가정에 기초한 인간 공동체입니다. -350


우리 시대 이전의 그 어떤 사회에서도 노동과 토지의 운명이 수요-공급-가격 메커니즘으로 결정되도록 허락한 경우는 없었습니다. 왜냐고요? 노동이란 이름만 다를 뿐 사실 인간을 뜻하며, 토지 또한 이름만 다를 뿐 사실 자연을 뜻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시장경제란, 인간과 인간이 살아가는 자연을 통째로 들어서 스스로의 법칙에 따라 스스로의 궤도를 운행하는 메커니즘의 눈 먼 작동에 내맡기는 것에 다름 아닙니다. -70


우리는 정말 실제로 굶게 될까 봐 두려워하는 것인가? 우리 대부분이 늘 굶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으며 그것 때문에 일을 한다니, 이게 도대제 일말의 진실이라도 담고 있는 것인가? 우리 사회를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조직하는 원리는, 모든 이들로 하여금 소득을 얻기 위해 팔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팔도록 만드는 것이다. 

... 나의 논점은, 시장경제라는 것이 우리가 ‘경제적 동기들’이라고 부르는 것, 즉 굶주림에 대한 공포와 이득에 대한 희망에 완전히 기대고 있다는 가정이 옳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하지만 굶주림과 이득을 경제적 동기들이라고 부른다는 것은 곧 삶의 경제 영역을 새롭게 조정하고 변화시켜 나갈 수 있는 가능성 자체를 미리 꺾어버리는 짓이 아닐까? -81 


시장경제가 확립되기 이전에는, 사람이 생산 활동에 참여하게 만들기 위해서 굶주림에 대한 두려움을 동기로 삼는 경제 시스템은 단 한 번도 존재한 적이 없었다. 물론 공동체 전체 차원에서는 언제나 식량에 대한 걱정이 있있을 것이다. 하지만 공동체가 이러한 걱정을 개인들에게 떠넘겨서 자신이 사냥이나 경작 혹은 수확에 어느 만큼이나 참여하는가에 따라 자기 입으로 떨어지는 몫이 얼마나 될까를 걱정하게 만들지는 않았다. 원시 사회에서는 개개인이 굶주림에 대한 공포라는 동기 때문에 경제 영역에 들어오는 일이 없도록 여러 제도적 안전장치들이 있었다. 중세 사회에 대해서도 똑같이 말할 수 있으며 심지어 중상주의 시스템조차도 실은 그러했다. 동서고금 어디에서나 우리가 경제적 유인이라고 부르는 것을 멀리 하려는 경향이 존재했다. 한 개인이 굶주림을 두려워한다는 것은 그 사람이 더 잘 살게 되거나 못 살게 될까봐 걱정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문제라는 것이며, 우리 사회보다 더 가난한 사회들에서 굶주림의 채찍이라는 것은 분명코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84 


과학은 방법을 통하여 모태에서 떨어져 나온다. 어떤 과학이 탄생하게 되면 그것이 착상되고 자라났던 모태는 파괴된다. 예를 들어, 수학은 과학이 되기 위해서 수비학(數秘學)을 제거해냈고, 물리학은 ‘질료’ 개념을 스스로 제거했으며, 화학은 연금술을 떨궈버렸고, 생리학은 ‘생명력’ 개념을 제거했고, 논리학은 ‘진리’라는 관념을 벗어버렸다. 과학은 이러한 위업을 성취할 수 있는가에 비례하여 이론적 과학으로서의 서열을 부여받게 된다. 과학은 완숙해질수록 그 모태로부터 더욱 먼 곳을 떠돌게 된다. 


... 영혼, 가치, 주권, 이런 것들은 과학의 모태로부터 넘어온 잔존물들이지만, 이제는 각 과학 안에 설 자리가 없는 것들이다. 한 과학이 이렇게 스스로가 거의 소실점에 이를 지경으로까지 많은 요소들을 제거해낸 뒤에는, 전혀 예측하지 못한 방향으로 확장해나갈 수도 있다. 자연과학과 마찬가지로 사회과학 또한 유효한 과학이 되기 위해 서로서로 차별화되며, 삶을 영위한다는 당장의 과제 때문에 인간이 적응하지 않을 수 없는환경적 세계의 실태를 방법론적으로 왜곡하게 된다. -182 


한 사회가 ‘현대적’이 되는 것은, 다름 아닌 시장 제도들의 영향력이 한 공동체의 전체 문화, 특히 경제생활에 얼마나 깊이 침투하고 있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궁극적으로 따져보면 현대적인 생산 조직이란 곧 시장 조직이기 때문입니다. 현대의 사회 계급들이란 특정한 시장에서 결정되는 각종 소득을 통하여 형성된 계급들입니다. 또 현대의 사회적 투쟁이란 경제적 계급들, 즉 시장 계약에 의해 그 지위가 결정되는 집단들 간의 투쟁이며, 여러 갈등 또한 그러한 시장 계약을 둘러싼 갈등입니다. -249


형식적 경제학에서는 교역, 화폐, 시장이 모두 두드러진 경제 제도의 위치로 격상됩니다만, 그 시스템에 있어서 중심축을 이루는 것은 그 셋 중 하나, 즉 시장입니다. 나머지 둘은 그저 시장 시스템 자체에 함축되어 있는 과정의 측면들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화폐, 교역, 시장이라는 세 가지가 논리적으로 한 묶음이라는 가정은 오직 자의적인 구성물에 불과하다는 것, 이 세 가지는 모두 각자 독자적인 제도적 기원을 가지고 있다는 것, 따라서 다양한 화폐 용법과 여러 다른 요소들이 훗날 교역으로 굳어졌다고 해도 그 기원에 있어서는 서로 별개로 제도화된 것일 수 있다는 점을 깨닫기 위해서는 정말로 마음을 독하게 먹고 진짜로 개념의 대전환을 해야만 합니다. 


경제라는 말의 실체적 의미에 착목하게 되면 이렇게 시장의 존재라는 가정을 제거한 제도적 분석이 가능하게 되며, 그와 함께 자꾸 경제 현상을 경제주의적이며 근대적인 방향으로 생각하게 만드는 개념의 연상 작용도 제거해낼 수 있게 됩니다. -99 


영국-프랑스 대혁명의 목적은 경제적 자유를 실현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혁명은 완수되지 못했다. 이동의 자유와 더불어 토지에 대한 자유로운 소유가 곁들여질 때에야 비로소 노동과 자연의 여러 힘이 자유로운 관계를 맺을 수 있었을 터인데, 이것이 실현되지 못한 것이다. 바로 이 때문에 자본주의가 나타나게 된다. 자본주의는 폭력과 자유의 혼종으로서, 과거의 적나라한 폭력이 낳은 혐오스런 산물과 자유로운 미래의 여러 힘이 결합된 것이다. 이는 ‘발전에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단계’가 결코 아니며, 창조적 힘이 마침내 처음으로 완전하게 표출되려 하는 바로 그 시점에 발전이 정체되는 바람에 생겨난 산물이다. 


... 굶주림 때문에 농촌을 떠나 도시로 몰려드는 싼값의 노동자 집단 또한 바로 이 토지에 대한 독점 그리고 지배적인 순종적 형태의 노동이 가져온 결과물일 뿐이다. 오늘날 경제를 지배하는 것은 자유가 아닌 독점이다. 잉여가치는 자유시장경제의 가치 법칙에 따라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그것과 모순을 이루면서 생겨나는 것이다. 강제력에 기초한 재산 소유가 자유로운 경제를 제약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유주의적 사회주의의 입장에서 볼 때에는, 자본주의의 근본적 문제라고 할 정의롭지 못한 경제적 구성 그리고 이를 떠받치는 착취 등은 모두 노동의 진정한 자유에 여러 제약이 가해진 결과물들이다. -271


잉여가치에서 완전히 해방된 경제라면 수요와 공급은 생산과 분배를 조화롭게 규제하는 장치로서 기능하게 된다. 여기에서는 합당한 임금 이외에 그 어떤 ‘사업가의 이윤’도 존재하지 않는다. 경제 위기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생산이 사회적 필요욕구와 상충되도록 만드는 ‘이윤 경제’의 여러 변태적인 행태 또한 사회의 이익을 보장하는 탁월한 장치로 탈바꿈하게 된다. 


... 자유로운 협동이 협업의 일반적 형태가 된다. 생산과 소비는 자율적인 협동조합들이 서로 유기적으로 맺는 구조 안에서 다름 아닌 시장에 의해 조직될 것이며, 유통 과정을 복잡하게 만드는 중간 거래, 투기, 그 밖의 모든 기생적 행태들은 완전히 배제될 것이다. 하지만 이는 이제 기계적이 아닌 유기적 형태로 조직될 것이다. -2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