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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독 통일비용은 과연 얼마?  

딸기21 2014. 11. 7. 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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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 전 동독과 서독을 갈랐던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그후 일주일이 지나지 않아, 동독 인구 1600만명 중 200만명이 장벽 너머 서독이었던 땅을 밟았다. 동독 사람들은 서독의 가게들을 채운 ‘자본주의의 풍요’에 눈이 휘둥그레해졌고, 서독 가게들에선 청바지와 화장품 등이 동이 났다. 식품진열대에선 바나나가 사라졌으며 맥도날드 레스토랑들은 햄버거를 주문하러 온 동독 사람들로 붐볐다. 

그러나 곧이어 그들이 맞닥뜨린 것은 차디찬 현실이었다. 동독 지폐는 곧 값어치가 없어졌으며 서독 정부가 일종의 ‘환영비’로 동독 사람들에게 줬던 1인당 100마르크(당시 돈으로 약 6만원)는 곧 주머니에서 새나갔다. ‘서독의 마르크를 벌어들여야 한다는 현실’이야말로 동서독의 경제적 통합을 가져온 가장 큰 요인이었다. 근 40년에 걸친 분리가 끝날 무렵, 동독은 경제적으로 사실상 붕괴돼 있었다. 독일 정부는 통일 직후부터 옛 동독 지역의 경제를 통합하기 위한 개혁작업에 들어갔고 막대한 예산을 쏟아부었다. 금융지원은 물론이고 사회복지 시스템을 통해 각종 보조금이 동독으로 흘러들어갔다. 


미 항공우주국(NASA)이 최근 공개한 독일 베를린의 야간 항공촬영 사진. 서베를린이던 지역과 동베를린이던 지역은 불빛의 색깔로 확연히 구분된다. 양측의 조명이 다르기 때문이다. 슈피겔(www.spiegel.de)


과연 그동안 독일이 들인 ‘통일 비용’은 얼마였을까.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지 오는 9일로 25년이 된다. 통일 25주년을 맞아 독일에서는 통일비용에 대한 ‘평가’가 한창이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 7일 보도에 따르면 독일 전문가들이 추산한 통일비용은 1조5000억달러에서 2조5000억달러까지 다양하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지금까지도 통일 비용은 계속 들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통일 당시 독일 재무장관이었던 테오 바이겔은 2007년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통일이 됐다고 기뻐한 기간은 짧았다”며
“재정 정책을 결정해야 했지만 동독이 처한 경제적인 조건들을 완전히 알고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고 회고했다. 

동독의 경제상황에 대한 조사가 진행되면서 산업시설은 낙후됐고 인프라는 무너지기 일보직전이며 환경적인 위험도 크다는 사실이 속속 드러났다. 동독 노동자들의 생산성은 서독 노동자들의 절반이었다. 통일 전 동독 사람들이 트라반트나 바르트부르크같은 자동차를 사려면 주문을 해놓고 7년을 기다려야 했다. 열 집 가운데 한 집에만 전화가 있었다. 동독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던 러시아는 연방 붕괴라는 상황을 맞아 동독을 도울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형편이었다.

장벽이 무너질 때 독일 총리였던 헬무트 콜은 지난달 발간된 회고록에서 당시 상황을 전했다. 콜은 옛소련의 마지막 대통령이었던 미하일 고르바초프에게 자금 지원을 요청했고, 고르바초프는 30억마르크를 독일 통일에 쓰도록 주기로 했고, 이와 별도로 동독 내 소련 자산이 1994년 철수할 때 독일이 내줘야 하는 120억마르크를 대신 내주기로 했다.

이듬해인 1990년 2월 바이겔 재무장관은 69억마르크의 긴급 예산을 편성했다. 동독 난민들을 위해 쓰일 돈의 규모만 그 정도였다. 다음 달 1932년 이래 첫 자유선거가 동독에서 실시됐고 ‘계획경제’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 해 5월 서독 정부는 1150억달러 규모의 ‘통일 기금’을 만들었다. 미화로 환산하면 630억달러 정도였다. 7월 1일 단일통화 시스템이 갖춰졌고 10월 3일 마침내 두 나라는 공식적으로 통일됐다. 통일 이듬해인 1991년 독일은 ‘연대세’라는 이름의 통일세를 만들어 통일 비용을 일부 충당했다. 

서독 정부가 한 가지 판단착오를 일으켰던 것은, 동독의 산업자산에 대한 평가 부분이었다. 동독 산업자산의 민영화 과정을 주도한 서독의 트로이한트(신탁기금)는 낙후된 산업시설들을 당초 고평가했던 것이다. 처음에는 6000억마르크의 가치가 있을 것으로 봤지만 나중에 따져보니 절반에도 못 미치는 2500억마르크 가치에 불과했다고 콜은 회고록에서 소개했다. 가격도 문제였지만, 경쟁력이 거의 없는 동독의 공장들을 폐쇄해 팔아치울 경우 당장 동독 사람들의 일자리가 사라진다는 것도 큰 문제였다.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서독, 그리고 이후의 통일 독일 정부가 취해온 통합정책과 옛 동독 지역 경제개발 과정은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여전히 옛 동독 지역의 실업률은 서쪽보다 높다. 분단을 극복하는 과정은 아직 ‘현재진행형’이라고 월스트리트저널은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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