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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청, 엘살바도르 군정에 피살된 로메로 대주교 ‘시복’ 추진  

딸기21 2014. 8. 19.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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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남미 군사독재정권에 맞서 싸운 가톨릭 해방신학의 상징, 오스카 로메로 대주교가 ‘복권’되는 것일까. ‘좌파 신부’라는 의혹 때문에 가톨릭 내에서 사회적 영향력에 걸맞는 대우를 받지 못했던 엘살바도르의 전 대주교 로메로가 성인 아랫단계인 ‘복자’로 추대될 것으로 보인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18일 한국 방문을 마치고 바티칸으로 돌아가는 전세기 안에서 기자들에게 “나에게 로메로는 ‘하느님의 사람’이다”라면서 “그를 복자로 선포하는 것(시복)을 막던 교리 상의 문제는 이미 해결됐다”고 말했다. 


전통적으로 ‘순교’는 가톨릭 신앙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잃는 경우에 한정돼 왔으나 프란치스코 교황은 사목활동 과정에서 숨지는 것도 순교로 인정할 수 있도록 범위를 넓힐 것을 신앙교리성에 요청했다. 신앙교리성이 이를 받아들였고, 성인·복자 추대를 관장하는 시성성에서 시복절차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오스카 로메로 대주교. 사진 로메로트러스트(www.romerotrust.org.uk)


로메로는 1970년대 엘살바도르를 통치한 우익 군사정권의 인권탄압과 학살에 맞서 싸웠던 인물이다. 1977년 산살바도르 교구의 대주교가 된 뒤 군사정권을 공개적으로 비판했고, 1980년 미사 도중 군정의 사주를 받은 괴한들의 총에 맞아 숨졌다. 그의 장례식에는 25만명이 모여들었지만 군정의 학살 현장으로 돌변, 수십명이 목숨을 잃었다. 



로메로가 숨진 뒤 엘살바도르는 12년간 내전을 겪었다. 1993년 그의 삶을 다룬 영화가 개봉돼 전세계에 이름이 알려졌다. 2010년 엘살바도르 정부는 로메로 서거 30주년을 맞아 대주교의 죽음에 과거 정부가 관여했음을 시인하고 사과했다.

 

하지만 정작 바티칸은 그의 이름을 지우기에 급급했다. 로메로의 사회적 발언의 배경이 된 해방신학을 ‘좌파적’이라고 낙인찍어왔기 때문이다. 로메로를 시복해야 한다는 얘기는 몇년 전부터 나왔으나, 로메로가 피살된 것은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가 아닌 ‘정치적 행동’이었다는 가톨릭 내 보수파들의 주장 때문에 진전을 보지 못했다. 특히 베네딕토16세 전임 교황이 해방신학에 대해 극도로 부정적인 견해를 갖고 있었던 것이 주된 원인이었다.

 

그러다가 프란치스코 교황이 즉위하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프란치스코는 아르헨티나 군사독재정권의 피해자들을 도왔던 사람이다. 프란치스코는 지난해 5월 엘살바도르 대통령과 만나 로메로 시복을 추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로메로 시복이 이뤄진다면 군정에 신음하던 남미에서 해방신학이 가졌던 의미와 사회적 역할을 바티칸이 마침내 인정하는 셈이 된다. BBC방송은 “많은 가톨릭 신자들은 빈민을 대변하다가 숨진 인물(로메로)을 왜 바티칸이 그렇게 오랫동안 무시해왔는지 지금도 의아해한다”면서 프란치스코의 시복 언급이 비록 해방신학에 대한 완전한 공인은 아니더라도 신자들의 환영을 받을 것으로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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