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한국 사회, 안과 밖

캄보디아 유혈사태, 한국 공장, 한국대사관

딸기21 2014. 1. 17.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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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에서 10여일 전 노동자들의 임금인상 요구 시위를 군경이 유혈진압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캄보디아 신문들(캄보디아데일리, 프놈펜포스트)을 찾아보니 유혈진압 사건이 벌어지기 전날(1월 2일)부터 이미 캄보디아 언론들은 "왜 한국기업을 지키기 위해 공수부대까지 투입했느냐"고 캄보디아 당국을 향해 문제를 제기하고 있었습니다. 

경향신문은 이 사태에 대해 당연히 보도를 했지요.



그리고 6일에는 현지 한국기업 대표를 전화취재해 확인하고, 이런 기사를 실었습니다.



사설에서도 손배소의 문제점을 지적했습니다.



물론 3일의 시위가 한국 기업 때문에 일어난 것은 아니며, 한국 기업 안에서 벌어진 것도 아니고, 한국 기업(약진통상) 앞에서 시위대를 해산한 군부대(911 공수부대)에 의해 저질러진 것도 아니었습니다. 한국 기업에서 일하던 노동자가 숨진 것도 아니고요.


그런데 주캄보디아 한국대사관이 "캄보디아 정부와 군에 요청해 우리 기업들을 철저히 경비해주도록 요청했다"는 내용의 글을 올리면서 파장이 커졌습니다. 


[글로벌포스트] South Korea pulled strings as Cambodia’s military cracked down on protesters


근 20년 전 나이지리아 남부 '니제르델타' 유전지대에서 채굴하던 다국적 에너지회사 셸이 환경/원주민보호 운동을 벌이던 소수민족 활동가 탄압과 관련된 사실이 드러난 적 있습니다. 


가장 큰 논란거리는 1995년 셸의 채굴과 환경오염에 반대하던 현지 운동가 켄 사로 위와(이 분에 대해서는 언제고 꼭 포스팅을 하리라 마음먹고 있지만 게으름때문에...;;) 등이 처형된 사건이었습니다. 


셸은 "나이지리아 정부가 그들을 체포해 처형했을 뿐 우리와는 관련이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영국 정부와 국제기구들의 조사 결과, 켄 사로 위와를 체포하러 가는 군인들을 셸의 헬기가 실어날랐다는 사실을 비롯해 빼도박도 못할 증거들이 드러납니다. 결국 셸은 미국 법원에서 소송에 휘말렸고, 2009년 일부 배상금을 물기로 합의했습니다. 1990년대, 파키스탄 아동노동자들이 생산한 나이키·아디다스 등의 '눈물의 축구공' 논란과 함께 '글로벌 기업의 사회책임'에 대한 문제제기를 일으켰던 유명한 사건이죠.


한국 공장 앞 군부대 '경비'...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궁금했습니다. 비단 '군 투입' 때문이 아니더라도, 이미 글로벌 시장의 소비자가 되어 캄보디아 등 동남아시아에서 저임금 노동자들이 생산한 소비재를 사서 쓰는 한국의 '시민'들이 이 문제를 좀더 생각해볼 수 있게끔 후속취재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침 국제민주연대 등이 소속된 아시아다국적기업감시네트워크가 국제현장조사단을 만들어 현지 조사를 한다고 해서, 저임금 노동 문제에 계속 관심을 가져온 정유진 기자가 프놈펜으로 날아갔습니다.


[‘저임금 노동’ 한계에 부딪힌 동남아] 군, 삼엄한 감시… 캄보디아 여공들 공장 앞 좌판서 점심


조사단의 현지조사 과정을 지켜보고, 조사에 응한 노동자들에게서 '군 투입 그날'의 상황을 들어봤습니다.



일각에선 "노동자들이 80달러 월급을 160달러로, 갑자기 2배로 올려달라 하면 어떡하느냐"고 할 것이고, 또 다른 이들은 "160달러로 올려봤자 한달 20만원이다, 노동자들도 먹고 살아야 하는데 착취만 하려고 하면 어떡하느냐"고 할 것입니다. 사실 유혈진압 문제와 별개로 아시아 저임금노동 문제는 글로벌 경제의 분업구조 속에서 바라봐야 하는 문제입니다. 이 부분을 지적하기 위해 정유진 기자가 현지 공장주와도 만나봤습니다.


[‘저임금 노동’ 한계에 부딪힌 동남아] “노동자도 힘들지만 우리도 도산할 판”


이렇게, 노동자들의 현실과 한국 기업-군부대 관계에 관한 주장, 그리고 기업을 운영하시는 분의 말을 들어봤습니다.


그런데....


17일, 오늘, 주캄보디아 한국대사관이 장문의 '공지' 글을 웹사이트에 띄웠습니다.




내용을 보니..... 한숨이 나옵니다. 그래서 이 긴 글을 적고 있는 겁니다... 


대사관 공지 전문을 읽어볼까요. 


캄보디아 유혈시위사태, 그건 이렇습니다.


 최근 캄보디아의 유혈시위 사태와 관련하여 SNS는 물론 일부 언론보도에 까지 잘못된 정보가 난무하고 있습니다. 특히, 한, 두사람이 인터넷 매체에 사실과 전혀 맞지 않는 악의적인 기고문을 보냄으로써 마치 이번 유혈사태의 배후에 우리 대한민국 공관이나 투자 기업이 있는 것처럼 알려지고 있습니다. 이번 오보사태로 2중, 3중의 피해를 겪고 있는 우리 기업 임.직원들에게 위로의 말씀을 드림과 아울러 잘못된 주요 정보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명백히 밝혀드리는 바입니다. 


1. 한국기업에서 노동자들의 시위가 촉발된 것이 아닙니다.

2013년 12월 24일 노.사.정이 참여하는 자문회의를 거쳐 캄보디아 정부에서 결정, 발표한 최저임금에 반발한 6개 과격 노조단체 회원들이 세를 불리기 위해 정상조업중인 여러 공장들을 찾아다니며 시위가 벌어진 것이지 우리 한국기업 공원들이 공장내에서 시위를 벌이거나 시위를 주도한 것이 아니다.


2. 한국기업들은 원인제공자나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일 뿐입니다.

이러한 과격 시위대는 정상조업중인 공장 앞에서 시위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일부는 공장 정문이나 담벼락을 부수고 난입하여 근로자들의 작업을 방해하였다. 이에따라 12월 25일부터 많은 공장들이 두려움에 떨며 공장문을 닫거나, 아니면 공원들이 출근을 하지 않아 정상적인 조업이 이루어지지 않게 된 것이다. 이는 우리 기업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고 캄보디아에 투자해 있는 많은 나라의 기업들에 공통된 사항이다.

따라서 기업들은 직접적으로 시설물이 파괴되는 피해를 입었거나 정상적인 조업을 하지 못하게 됨에 따른 생산차질과 납품차질 및 그로 인한 claim 피해 등 다양한 피해를 입게 된 것이다. 

한편, 12월25일부터 많은 기업 임.직원들이 현 상태를 사실상 무정부 상태라고 규정하며 대사관에 애로를 호소하면서 재산피해는 물론 신변안전에도 불안감을 느낀다고 전달해 왔다.


→한국 기업들이 '유혈사태'의 직접적인 원인 제공자나 가해자는 아니고, 경제적 피해를 입은 부분도 분명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저임금 노동자들 문제에서 한국 기업들이 자유롭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기업들에게도 그 산업분야에서의 입장이란 게 있을 테지요. 

 

3. 우리 투자기업(약진통상) 안에서 시위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사망자가 발생한 것도 아니다.

2014.1.2 오전 우리 투자기업인 약진통상 근처에서 시위가 벌어졌는데, 이날 처음으로 군부대가 투입되어 강경진압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하여 일부 언론에서는 우리 기업 안에서 시위가 있었다고 하는가 하면 어떤 언론에서는 이 시위 진압과정에서 사망자가 발생하였다고 오보를 하고 있다.

이날 시위는 타겟을 찾아 헤매던 과격시위대가 우연찮게 우리 기업근처에서 시위를 벌인 것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일부에서는 이날 군부대의 동원에 우리 대사관이 관련돼있다는 낭설을 배포하고 있는데 대사관에서는 강경진압이 우리 투자기업 근처에서 벌어졌다는 사실 자체를 다음날 조간신문을 보고 알았을 정도다.

약진통상 관계자도 군부대 출동을 결코 요청한 바가 없고 공장이 군부대 인근에 있어 평시에도 부대 경계구역이라 소요사태의 발생으로 군부대가 출동한 것으로 안다고 대사관에 밝혔다.

1.3일 조간에 따르면 한국계 기업 앞에서 시위가 있었고 경찰이 아닌 군 공수부대가 투입된 것이 의외라면서 부대장이 투자지분이 있다는 소문이 있다는 내용과 함께 일본대사관이 최근 시위가 과격해지고 있음에 큰 우려를 전달한 것이 영향을 미친 것 아니가라는 기사가 크게 실렸다. 그 때만 하더라도 우리 대사관이나 우리 기업이 요청을 했다는 내용은 단 한줄도 들어있지 않았었다.


한국대사관의 요청으로 약진통상 앞에 군부대가 간 것이 아님은 확실해 보입니다. 군부대 출동을 한국기업이 요청했느냐는 부분에 대해서는 국제조사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약진통상 내부 또는 주변에서 사상자가 나오지는 않았지만, 혹시나 한국기업이 현지 정부와 군부대까지 동원해 반노동적인 행동을 취한 적은 없었나 문제를 제기하는 것입니다. ‘부대장 투자지분’은 저희 보도와 관련이 없으니 넘어가겠습니다.


4. 사망자가 발생한 카나디아 공단은 소수의 한국 기업들만이 입주해 있는 곳이다.

시위 진압과정에서 사망자가 발생한 것은 1.3일이었다. 카나디아 공단은 대부분 중국, 대만계 공장들이 많이 입주해 있으며, 우리 투자기업은 6개에 불과하다.


역시 저희 보도와 관련이 없으니 넘어갑니다.


5. 약진통상앞 진압군 복장에 달린 태극기는 우리도 알 수 없는 일이다.

대사관으로서도 정확한 사유를 알 수 없다. 다만, 한국의 민간인 봉사자들이 캄보디아에서 봉사활동을 하는 경우가 많고 가지고 온 물건을 선물로 남기는 경우가 있는데 그렇게 남겨진 복장이 아닌가 추측된다. 캄보디아인들은 한국 물건을 좋아하고, 한국어나 태극기가 부착된 물건 차량 등을 소지하고 있음을 자랑스러워한다.


역시 저희 보도와 관련이 없으니 넘어갑니다.


6. 한국대사관은 대테러부대를 접촉한 적이 없다.

한국대사관은 대테러부대를 접촉한 적이 없다. 연말행사로 초청된 캄보디아 고위인사중의 한 분이 여러 개 직함(대테러위원회 상임위원,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 반부패청장)을 보유하고 있는데, 만찬 계기에 이 인사를 포함한 참석자들에게 한국기업들의 심각한 우려를 전달하고 문제해결을 위한 노력을 부탁한 것 뿐이다.


7. 한국대사관은 캄보디아 정부에 유혈 강경진압을 요청한 적이 없다.

한국대사관은 시위로 우리 기업들이 어려움에 직면하게 되어 정상적 외교활동으로 주재국 정부에 대해 신변안전과 재산보호를 위해 노력해 줄 것을 요청한 것이지 특정한 대응을 요구한 것이 아니다.

신변안전과 재산보호를 위한 노력 요청은 우리 대사관만이 아니라 중국, 일본 등 관련이 있는 나라들 대사관 모두 당연히 했을 것이다. 이는 대사관의 책무 중 가장 기본에 해당하는 사항이다. 


8. 한국대사관은 캄보디아 군을 직접 접촉한 적이 한 번 있다. 왜냐하면 당시 그 지역의 치안유지 권한이 군에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대사관은 카나디아 공단에서 1월3일 총격발생이후 해당지역에 위치한 우리 기업의 보호요청이 있어 경찰당국과 접촉 등 다양한 노력의 결과, 그 지역의 치안책임이 군부대(수경사)로 이관되었음을 확인하고 1.4일 우리 기업인과의 대면 접촉 및 치안당국의 보호 요청 등을 위해 군부대와 접촉하였다. 당시 외부에서 카나디아 공단 쪽으로 진입하기 해서는 수경사 사령관의 서명이 요구되기도 하였다.


→군부대와 접촉했음을 대사관도 인정합니다. 약진통상과 군부대 간의 지리적 근접성과 ‘친분관계’에 대해 국제조사단이 조사하고, 기자도 취재하고, 노동자들 증언을 들은 것입니다. 한국대사관 스스로 시위 발생 뒤 웹사이트에서 캄보디와 정부, 군에 한국기업들 경비에 만전을 기해달라고 요청했다고 밝혔습니다. 추후 그 글이 글로벌포스트 등에 보도되자 글을 지웠습니다. 대사관은 페이스북에도 비슷한 내용을 올렸다가 역시 삭제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공지에서 ‘해명’한다면서 접촉 사실을 또 공개했습니다. 노동문제를 떠나, 외교공관에서 왜 자꾸 이런 글을 올려 기름을 붓는지... 


9. 한국 기업만 캄보디아 군이 경계해 준 것은 당시 우리 기업인들만 피신하지 않고 공장을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1월3일 유혈사태 이후 중국계 기업을 포함한 대부분의 기업인들이 피신하여 공단이 텅 빈 상태였다. 그러나 우리 기업 6개 공장 대표들만은 끝까지 공장을 사수하겠다며 대사관의 피신 권유를 거부하였다.

이들의 신변안전 문제가 크게 우려되었기 때문에 대사관에서는 치안책임을 맡은 군부대를 방문해서 현장에 같이 가서 우리 기업인들의 목소리를 들어줄 것을 요청한 것이다. 현장에서 다시 한번 피신을 요청했지만 우리 공장 대표들의 사수 의지가 워낙 강했기 때문에 군의 보호를 요청한 것 뿐이다.


10. 노동조합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는 한국기업이 주도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노동조합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계획은 캄보디아 봉제기업들이 결성하고 있는 GMAC이 주도하고 있다. GMAC의 회원사는 430여개로 한국기업은 약 10% 정도에 불과하다. GMAC 이사회 29명의 이사중 한국인은 단3명에 불과하며, 손해배상 청구를 결정한 이사회 회의에서도 한국 이사들은 관련 발언을 한 적이 없다고 한다.


→현지진출 한국 봉제회사 사용자단체 부회장이 “한국 기업들이 주도하고 있다”고 스스로 말했습니다. 소송을 주도하는 GMAC의 부회장은 한국기업 경영자라고 하네요. 그리고 기업이 소송을 하느냐, 안 하느냐의 문제이지, 손배소 움직임을 '주도'하느냐 아니냐는 이슈가 아닙니다.


11. 한국 대사관은 기업의 이익만 생각하고 캄보디아 근로자들의 인권은 도외시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대사관의 기본적인 설치 목적중 가장 대표적인 두 가지는 양국관계의 안정적 발전을 통한 우리 국가이익의 증진과 재외국민과 투자 보호에 있다. 우리 기업인들이 불법적인 제3자의 시위로 신변안전을 우려하는 상황에서 대사관에서 노.사문제이니 손을 놓고 있으라는 것은 언어도단이 아닐 수 없다.

우리 대사관은 캄보디아 국민들의 기본적인 인권 보호를 위해 교육시설, 의료시설 등 다양한 공적원조 사업을 계획, 집행하는데 기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KOTRA와 협조하여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고 우수 사례를 발굴 시상하고 있다. 많은 기업들이 근로자 교육기회 제공, 역사 탐방, 화장실 설치 등 환경 개선 사업을 벌이고 있으며 이러한 시상식에 캄보디아 정부나 ADB, World Bank 등 국제기구들도 큰 관심을 보이는 등 우리가 선도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분야도 있다.


→주재국에서, 더군다나 한국 기업들이 진출해 있는 공단에서 유혈참사가 벌어졌다면 먼저 애도하고 유감을 표하는 게 상식이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 기업은 우리가 요청해서 잘 지켰다”고 홍보하다가 오히려 논란에 불을 지피니 이모저모로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이런 일들을 보면서, 지난해 방글라데시 '사바르 참사' 때도 마찬가지였지만, 글로벌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이 가져야 할 '연대의식'이 어떤 건지, 얼마나 필요한 건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됩니다. 


암튼 내일자에는 정유진 기자가 캄보디아 사태를 바라보는 '소비자이자 시민의 시각'은 어때야 하는지를 고민해보고 기사를 쓸 예정입니다. 의견 있으시면 댓글 매우 환영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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