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군·경찰의 강경진압에 밀린 무슬림형제단 시위대는 17일 카이로 시내에 있는 알파트 모스크에 집결해 농성을 벌였다. 조용하던 사원은 시위대의 야전병원 겸 시신 안치소로 변했다. 하지만 곧 경찰이 들이닥쳐 발포했고, 시위대는 줄줄이 체포됐다.
그런데 이날 모스크 봉쇄와 강제해산을 주도한 것은 군이나 경찰이 아니었다. 쇠파이프와 고무 호스를 든 ‘민간인’ 수백명이 모스크를 에워싼 뒤 농성 중인 무슬림형제단 시위대를 공격했다. 뉴욕타임스 기자 카림 파힘은 “이 ‘민간인들’이 현장에 있던 외신기자들을 한 곳에 몰아넣고 취재를 막기도 했다”고 전했다. 이들이 군부(정부)에 의해 조직된 것인지, 자발적으로 나선 시민들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수백명의 목숨을 앗아간 이집트 사태는 ‘군부 대 국민’의 구도로 가느냐, ‘정부 대 무슬림형제단’의 구도로 가느냐의 갈림길에 서 있다. 지금 구도대로라면 군부와 과도정부가 무슬림형제단을 고립·와해시키는 국면으로 갈 가능성이 더 높아 보인다. 현재로서는 무슬림형제단이 국민 전체의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봉쇄, 진압... 아수라장이 된 카이로의 알파타 모스크 앞. /AP
이집트 정부는 시위대에 대한 강경 진압을 ‘테러와의 전쟁’으로 몰아가고 있다. 하젬 엘베블라위 총리는 18일 각료회의를 소집, 무슬림형제단에 대한 해산 절차에 들어갔다. 대통령 보좌관인 모스타파 헤가지는 기자회견을 열고 “우리는 지금 나날이 고조돼 가는 테러리스트들과의 전쟁에 직면해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의 대테러전 이후 세계 곳곳의 권위주의 정부들이 국민 탄압의 빌미로 삼아온 ‘테러와의 전쟁’ 주장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무슬림형제단은 이미 1954년 가말 압둘 나세르 정권 시절 불법화됐으며 군부정권 내내 탄압을 받았다. 아랍의 봄으로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이 축출된 뒤 2011년 4월 ‘비정치 단체’로 합법화됐고 이어진 총선과 제헌의회 선거에서 승리를 거뒀으며, 대통령까지 배출했다. 하지만 무르시 축출과 함께 2년여만에 다시 해산의 기로에 놓였다.
정부는 이미 실질적으로 무슬림형제단 해체에 들어갔다. 모함마드 무르시 대통령 축출 뒤 지도부를 대거 체포한 데 이어, 16일과 17일에도 조직원들을 대대적으로 연행했다. 내무부는 이번 시위 진압 과정에서 “폭탄과 무기를 소유한 무슬림형제단원 1004명을 체포했다”면서 “그 중에는 알카에다 지도자 아이만 알자와히리의 형제 모함메드 알자와히리도 있다”고 주장했다. 시위 진압 과정에서 무슬림형제단 창설자 하산 알반나의 손자와 정신적 지도자 모하메드 바디에의 아들 등이 살해된 것도 다분히 의도적인 ‘보복’일 수 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튀니지 노점상 청년의 분신자살이 범아랍권 민중시위로 이어졌던 ‘아랍의 봄’ 때와 달리, 무슬림형제단은 안팎에서 별로 원군을 얻지 못하고 있다. 관영 일간지 알아흐람은 국민들이 무슬림형제단을 비난하고 주장했다. 세속주의 정당인 마스르 엘호레야(자유당)과 좌파 세속주의 정당인 사회주의인민연합당은 무슬림형제단이 혼란의 원인이라며 비난했다. 특히 무슬림형제단이 소수 종교 집단인 콥트교도 주민들을 공격한 것은 이슬람주의와 거리를 두고 안정을 바라는 국민들의 정서를 외면한 자충수로 귀결되는 분위기다.
음모론으로 몰기엔, 이집트 군부가 저지른 짓이... 그림 트위터 @DaliaEzzat_
또 그간 무슬림형제단 정부와 거리를 둬온 미국과 유럽이 유혈사태 뒤 입장을 바꿔 현 과도정부를 규탄하자 이집트인들 사이에서는 ‘분란을 일으키려는 외부의 음모’라는 소문이 퍼져나가고 있다. 트위터에서는 성조기와 이스라엘기로 된 모자를 쓴 ‘외부세력’이 이라크, 시리아에 이어 이집트를 혼란에 빠뜨리려 하는 장면을 묘사한 카툰이 널리 유통됐다. 무르시 축출 운동을 펼쳤던 ‘타마로드(반역)’ 운동 측은 “미국의 내정간섭을 피하려면 차라리 미국의 원조를 받지 말자”며 ‘원조중단(Stop the Aids)’ 운동을 벌이기 시작했다.
터키와 튀니지 등 일부 지역에서 학살 규탄 시위가 열리긴 했으나, 주변국들에서도 무슬림형제단에 대한 동조는 극히 제한적이다. 무슬림형제단을 극도로 기피해온 사우디아라비아의 압둘라 국왕은 17일 “테러범들과 싸우는 이집트 정부의 노력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사우디는 무르시 축출 직후 이집트에 50억달러 원조를 약속하기도 했다.
군주국가인 아랍에미리트연합(UAE)과 바레인, 요르단 정부도 일제히 사우디 국왕 발언을 지지하고 나섰다. 미국과 유럽국들은 이집트 군부의 강경진압을 비판하긴 했으나, 군부에 압박을 가할 수 있는 실질적인 ‘행동’과는 여전히 거리를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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