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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탄불에서... 사진은 날려먹음

딸기21 2004. 9. 7.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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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탄불. 역사의 무게가 너무 많이 얹혀있는 도시는 역시 좀 무거운 기분이 든달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탄불의 첫인상은 푸른 마르마라해와 보스포러스, 육중한 모스크들, 알록달록한 거리, 넘쳐나는 관광객 따위로 경쾌한 느낌을 준다. 이 도시에 대해서는 여행책자가 수두룩하게 나와있으니 자세히 소개를 할 필요도 없을 것 같다. 당초 길고 자세하고 유식한 여행기를 써보려고 했으나 이런저런 이유로 생략하고... 나도 '포토에세이'로 밀고나가기로 결심. 



이스탄불의 상징 격인 블루모스크다. 블루모스크와 아야소피아에 대해서는 이미 작년에 여행기를 올린 바 있지만 ^^ 블루모스크의 정확한 이름은 '술탄 아흐멧 모스크'. 이름으로 미뤄짐작할 수 있겠듯이, 술탄 아흐멧이라는 작자가 만든 것이다. 크기가 몹시 크다는 것 외에, 실제 내부에선 감동적이라고 할 것은 그다지 없다. 모스크이건 절이건 간에 무릇 사원은, 종교적인 색채를 띠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종교의 이름을 초월한 경건함 같은 것이 느껴지는. 그런 면에서라면 블루모스크는 가히 꽝이라고 할 수 있다. 불국사에서 경건함보다는 돈 냄새가 나는 것처럼, 블루모스크에서는 관광지 냄새가 너무 많이 난다.







차례로 이어진 석장의 사진은 아야소피아에서 찍은 것들이다. 1. 바깥쪽에서 버티고 있는 날개벽, 2. 장엄하고 압도적인 내부, 3. 두번째 봤지만 역시 감동적인 서판. 저 글씨체는 음... 쿠파체라고 하던가, 이슬람 초서체에 해당되는 건데, 널리 알려진대로 아야소피아의 원래 명칭은 '하기아 소피아'였다. 동로마제국 시절에 지은 것이니... 네 차례 중건됐는데, 마지막 완공된 것이 6세기였나... 가물가물...

아무튼 이 건물은 가히 압도적이다. 여행지에서 무엇보다 나를 감동시키는 것은 '압도하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이집트의 룩소르에서도, 아부심벨에서도, 요르단의 페트라에서도, 하찮은 미물인 나를 압도하는 유적들의 존재는 감동적이었다. 무엇이 '압도적'인가. 유적의 크기는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63빌딩 앞에 섰다 해서 압도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결국 보는 이들을 압도하는 것은, 역사의 두께와 유적의 거대함이 어우러진, 그런 중압감인 것 같다. 인간의 위대함, 바꿔 말하면 오만함을 자각하게 해주는, 그리하여 경외감을 느끼게 하는.


서력기원 시작되고 기껏 몇백년도 지나지 않은 시기, 콘스탄티노플에 왔던 촌놈들은 하기아 소피아를 보면서 얼마나 주눅들고 압도되었을까, 높이 56미터라는 저 돔! 오스만 제국이 들어서고 '아야소피아'로 변한 뒤에 이슬람의 어느 시인이 '지상에 천국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아야소피아라네'라고 했다던 것이 절로 떠오른다. 아야소피아가 천국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제국의 위용을 드높여주는 건축물이었던 것만큼은 분명하겠지. 





이스탄불의 잘 꾸며진 관광지, 술탄 아흐멧 거리에서 시르케지 부두 쪽으로 내려가면 광장이 나온다. 광장에서 다시 허위허위 걸어올라갔다. 술레마니예 모스크를 찾아서. 오스만의 전성기를 일구었던 술레이만 대제 시절의 모스크다. 당대의 건축가 시난이 설계했다고 하는데, 술탄 아흐멧 모스크와 비교할 때 크기에서는 뒤지지 않게 거대하지만 꾸밈새가 안정감 있고 좋았다. 지저분한 시장통 골목길을 한참 지나 언덕 꼭대기에 있어서인지, 아니면 내가 저녁때 갔던 덕분인지 그닥 북적이지 않고 조용했다. 



술레마니예 모스크 한쪽 옆에 술탄들과 그 가족들의 무덤이 있다. 



그리고 묘지 한가운데에 대리석 흰 집이 있는데, 술레이만 대제와 술탄 아흐메트(블루모스크를 지은 술탄)의 관을 모신 곳이다.



묘지에서 나와 술레마니예 모스크로 들어가는 문. 사람들이 하도 드나들어 닳아버린 대리석 문턱. 터키는 대리석의 나라라고 해도 될 정도로 대리석이 넘쳐나는데, 대리석은 조각하기에는 좋겠지만 너무 물러서 세월이 흐르면 저렇게 두부처럼 돼버린다.





위 두 장의 사진은 동로마제국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때(5세기) 만들어졌다는 지하수로 '예레바탄'에서 찍은 것이다. 지금은 '지하궁전'이라는 말로 불리는데, '궁전'이라는 말이 충분히 어울린다. 도리아식, 이오니아식, 코린트식이 뒤섞인 300여개의 기둥. 특히 유명한 것은 맨 안쪽에 있는 2개의 '메두사의 기둥'. 기둥 밑부분을 메두사의 머리(조각)가 받치고 있는데, 메두사의 머리들이 왜 여기에 와있는지는 아직도 알수 없다고. 로마제국 시기에 메두사의 머리가 악운을 물리쳐주는 아이콘으로 쓰였다고 하니, 민간신앙의 흔적으로 봐도 될 것 같다.



시르케지 부둣가 광장에 있는 향신료시장에서. 일명 '이집트 바자'라고도 하는데, 정작 살거리는 거의 없었다. 여러가지 향신료들과, '터키시 딜라이트'라고 부르는 말랑말랑한 과자(꼭 엿가락같음) 따위를 주로 파는 곳. 향료세트를 보면서 잠시 '써니언니 사다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안 사왔음 ^^;;





블루모스크 뒤편의 여관 골목에서, 이슬람박물관으로 올라가는 골목은 꼭 영화촬영장같았다.



과거 '오리엔트 특급'의 종착역이었던 시르케지 부두의 기차역. 지금 오리엔트 특급은 다니지 않지만 여전히 기차역으로 쓰이고 있다.



시르케지 부두. 여기서 아시아 쪽(위스크다르)이나 유럽쪽 다른편으로 넘어갈 수 있다. 이 곳 지형에 대해서는 나중에 보스포러스 사진들을 묶어서 따로 설명하도록 하고.



술탄아흐멧 광장.



술탄아흐멧 광장에서 옥수수를 사먹고 있는 아지님



돌아오기 전전날, 불꽃놀이.

솔직히 나는 외국의 여러 도시를 가보지 못했다. 이전에 내가 머물러봤던 곳이라고 해봤자-- 바그다드하고 요르단의 암만, 도쿄, 굳이 넣자면 홍콩에 3박4일 놀러갔던 것 정도다. 하지만 역시 탁월한 적응력 덕분인지(이 적응력은 카이로에서는 거의 쓸데 없었지만) 이틀째가 되면 여그가 울동네같고, 일주일 쯤 있다 보면 골목길에도 눈이 익어서 먹을 것도 사먹고, 집같이 지낼수 있는데, 역시 일주일은 있어봐야 그 도시에 대한 느낌이 오는 것 같다. 
이스탄불에서 지낸 시기를 다 합치면 사실 일주일이 좀 못되는데, 아쉬운 점이 있다면 대중교통수단을 타보지 못한 점. 공항과 술탄아흐멧 호텔가를 오가는 택시, 보스포러스 유람선을 탄 것이 전부다. 그래서인지 이스탄불의 공기를 한껏 느껴보려던 생각과는 달리 '구경만 하다 온'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이스탄불은 이스탄불. 어째서 이 도시가 2천년동안 대제국의 심장이었는지를 느끼고 싶다면 역시나, 직접 찾아가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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