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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민중사 -하워드 진을 따라 긴 강을 건너다

딸기21 2007. 5. 7.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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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민중사 A People's History of United States 

하워드 진 (지은이) | 유강은 (옮긴이) | 이후 | 2006-08-31 


하워드 진의 이름은 함부로 막 부르거나 쓰고 싶지가 않다. 좀더 경외심을 가지고 얘기하고 싶기 때문이다. 현재의 불의 앞에 눈 감지 않지만 역사의 발전(억압받는 자들의 승리)를 낙관하고, 막 나가는 사회를 통렬히 비판하면서도 인간에 대한 애정을 잃지 않는 역사학자. 미국민중사는 잘 알려진 책이고, 하워드 진의 ‘대표작’이다. 그래서 두껍고, 거기다 2권으로 돼 있고, 비싼 이 책을 사서 읽었다. 



미국 역사에 대한 관심보다는 하워드 진에 대한 애정 때문에 이 두꺼운 책들을 읽은 셈이다. 갖고 다니기도 무거워서 저녁마다 집 식탁에 앉아 줄 쳐가며 읽었다. 어떤 부분은 좀 지겨웠고 어떤 부분은 신기했다. 미국 역사를 워낙 잘 몰랐던 탓일까. 너무 자세히 써놓아서 머리 속에 잘 안 들어와 슬슬 넘어간 부분도 많았다. 


미국민중사를 읽으면서 들었던 생각 하나. 역사학자가 쓴 역사책에서 나 같은 독자가 얻을 수 있는 ‘최대한의 것’은 무엇일까? ‘민중사’가 그냥 미국의 역사와 다른 것은 분명한데, 역사학적 방법론에서도 달랐다면 더 재미있었을지 모른다(어떻게 달라야하는 건지는 나도 잘 모르지만). 대통령과 정치인 중심의 역사가 아니라 밑바닥 중심의 역사라는 점에서 보면 그냥 ‘역사’와 ‘민중사’는 크게 다른 것 같긴 하다. 


그런데 역사를 보는 또 다른 눈과 방법론을 일깨워주는 측면에서라면 차라리 윌리엄 맥닐의 '전염병의 세계사'처럼 아예 새로운 시야를 틔워주는 쪽에 더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두 종류의 역사학자를 비교하는 것이 우습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굳이 비교를 하는 것은, '전염병의 세계사' 쪽이 "국왕과 장군 만으로 역사가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라는 걸 더 잘 보여줬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럼 국왕과 장군 외에 누가 역사를 움직였나? 맥닐은 전염병, 기후, 기생적 정치체계의 발달 같은 요인들을 든다. 하워드 진은 '민중의 투쟁'을 든다. 


둘 다 맞는 얘기인데, 시야를 넓혀준 쪽은 (내 경우) 맥닐이었고, 감동적인 것은 하워드 진 쪽이다. 역사학자라면 역사학으로 평가받아야지 '진보냐 안 진보냐(좌파냐 안 좌파냐)'를 기준으로만 평가해서는 안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학문적 성과'만이' 평가의 기준이 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중요한 부분임에는 틀림없다. 


그 점에서 '미국민중사'는 (이 책을 1970년대에 읽었다면 엄청 감동했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전염병의 세계사'보다 재미 없었다. 하워드 진에 대해 특별한 관심이 있다면 모르되 그렇지 않고 그냥 미국 역사를 알고 싶은 것이라면, 좀 많이 부담스러운 ‘미국민중사’보다 조금 간단한(그렇다고 해서 얇은 책은 아니지만) 케네스 데이비스의 ‘미국에 대해 알아야 할 모든 것, 미국사’를 읽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민중사가 감동적인 이유는? “싸우려 애써봐야 소용없어”“역사는 강자의 편이야”라고 말하는 무기력함 앞에서 희망과 용기가 되어주는 것은 하워드 진과 같은 역사의 메신저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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