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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티아 센, '윤리학과 경제학'

딸기21 2007. 5. 1.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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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학과 경제학
아마티아 센 (지은이)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09-08-25



<불평등의 재검토>를 가지고 머리 속에 버터를 한 겹 발라 놓으니깐 센의 책을 읽기가 훨씬 수월해졌다. 추천사 빼고 목차 빼고 참고문헌 빼고 나면 111쪽. 글씨도 큼직큼직한데 이런 편집, 이런 분량, 이런 표지에 책 값이 1만원이라면 꽤 비싸다. 한울아카데미답다. 좀 신경 썼으면 훨씬 좋았으련만 참 보기 싫게 만든 책... 하지만 아무튼 내용은 좋았으니 1만원 이상의 값어치는 하는 책이다. 

센이 1986년 UC버클리에서 했던 강연을 손보아 묶은 것이라고 하니깐 21년 전 얘기인 셈이다. 요지는 제목에 다 나와 있다.
윤리학과 경제학. 경제학은 윤리를 알아야 하고, 윤리를 도와야 하며, 윤리와 결합돼 발전해야 한다는 것.


저자의 말을 내 식으로 풀어보면 경제학엔 두 가지 뿌리가 있다. 하나는 아리스토텔레스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다같이 잘 살자 경제학’이고, 하나는 애덤 스미스의 추종자들이 금과옥조처럼 읊어대는 ‘돈 계산 잘 하자 경제학’이다. 


저자의 표현을 빌면 앞의 것은 윤리학적 전통에, 뒤의 것은 공학적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다. 다같이 잘 살자 경제학은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하는 윤리적인 면에 관심을 갖고 목표치를 두는 반면에 돈 계산 잘 하자 경제학은 목표 얘기 생략하고 돈 버는 방법을 ‘공학적으로’ 설명하는 데에 중점을 둔다. 


둘 다 중요한데, 현대에 들어서는 돈 계산 잘 하자 쪽이 압도적으로 우세해졌다. 돈 계산 하는 목적, 인간들 어떻게 잘 먹고 잘 살 것이며 무엇이 잘 먹고 잘 사는 것인가 하는 근본적인 문제는 “시장에 맡겨봐” 한 마디로 정리해버리고 ‘공학적 계산’에 치중하는 것이 경제학의 대세가 됐다. 


그래서 확실히 경제학이 정밀해지는 효과는 있었다. 그런데 윤리가 빠지니까 세상이 어긋나는 것은 물론이고, 시장의 합리성에 대한 신앙과 경제학의 성공에 대해서조차 반론이 나오기 시작했다. 시장은 합리적이다? 보이지 않는 손이 우리를 합리성의 길로 이끌어준다? 


그래서 센은 의문을 제기한다. “무엇이 합리적인가요?” 


사람들은 ‘일관성’과 합리성을 혼동하거나,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곧 합리적인 것이라고 보는 경향이 있다. 일관성을 합리성으로 보든, 이익 추구를 합리성으로 보든 간에 양쪽 다 문제가 있다. 일관되게 좋지 않은 선택만 하는(사업에 계속 실패하는 사람 같은) 경우도 있고, 이익 추구보다는 불우이웃 돕기에 신경 쓰는 사람들도 있다. 비합리적으로 조직에 충성을 바친 일본 기업의 근로자들은 큰 파이를 얻어낸 반면 합리적으로 개인 이익을 주장한 미국 경제는 한때 바닥을 기었다. 


돈 계산 잘 하자 경제학은 ‘합리성’을 내세우지만 이런 현상들을 적절히 설명해주지 못한다. 다시 말해, 경제 돌아가는 것으로는 ‘시장’과 ‘합리성’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는 점이다. 사람의 경제활동에는 여러 가지 다른 요인들이 영향을 미친다. 


다양한 요인들을 더 많이 반영해서 경제학을 더 과학적으로 만들고 돈 계산도 정말 잘 하게 만들려면 ‘잘 먹고 잘 살자’ 개념이 들어가 줘야 한다. 윤리학과 경제학이 다시 만나야 사람들 사는 게 실제로 좀 더 나아지고(잘먹고 잘 사는데 더 도움이 되고) 경제학 자체도 더 발전해서, 돈 계산도 제대로 잘 하게 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더불어, 경제학의 계산법들이 사람들 복지를 좋게 하는 정책들 만드는 데에도 도움이 되니까 후생경제학의 도움을 받으면 윤리학도 더 발전하게 된다는 것이다. 돈계산주의자들이 교조로 모시는 애덤 스미스도 사실은 다같이 잘 사는 법을 찾는 것에 우선 순위를 두었는데, 후대의 신도들이 왜곡을 한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내용은 어렵지 않고 어찌 보면 단순한데 개념을 정리하고 정리하고 또 정리하는 과정이 재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