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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몽사 동화집

딸기21 2007. 2. 13. 2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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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주는 '나를 만든 팔할은 바람이었다'고 했는데, 저의 경우는 아마도 어릴적 갖고 있었던 두 종류의 동화집들이 나를 만든 팔할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벌써 몇차례나 이야기를 했던 것 같은데요, 알라딘의 hnine집 서재에 들렀다가 계몽사 동화집 이야기를 읽었는데, 저는 이 책 이야기만 나오면 말이 많아지거든요(저는 조금 친해진 이들에게는 거의 100% 이 책 이야기를 합니다). 이 책의 1, 2, 3권 제목을 말씀드렸더니 몇몇 분들이 기억력 좋다고 칭찬해주셨어요(히히). 이야기 나온 김에 댓글 길게 달다가 아예 포스팅으로 넘어왔습니다. 추억 속 이야기, 조금 올려볼까 해서요.


실은 저는 계몽사 전집에 대해서라면 정말이지 한권 한권(비록 순서는 못 외우더라도^^) 생생하게 기억해낼 수 있을 것 같아요. 47, 혹은 48권 정도 됐었던 것 같은데, 한국현대동화집에 나왔던 마해송 선생의 '바위나리와 아기별'이라든가, 민들레 홀씨를 먹고 사람이 된 인어 이야기, '언네'(인형) 만들어달라고 조르던 가난한 아이 이야기... 생각해보면 참으로 가난했던 시절의 동화였지요.



혜란이라는 아이가 있었는데요, 엄마는 폐병으로 자리에 누워있고 그렇게 모녀가 살아가고 있었답니다. 친구들은 다 엄마가 만들어준 언네를 갖고 노는데 혜란이만 없어요. "넌 네 언네 갖고 놀렴." 친구들에게 설움받던 혜란이는 몸져누운 엄마 곁에 가서 바늘을 들고 팔뚝을 찌르려고 합니다.

놀란 엄마가 왜 그러냐고 물으니, "주사(바늘)맞고 빨리 나아 언네 만들어달라고 그런다" 이렇게 말합니다. 엄마가 얼마나 가슴이 아팠을까요. 각혈을 하면서 엄마는 언네를 만들어주고, 그걸 들고 혜란이는 밖으로 나가요. 그날따라 친구가 안 보이네요. "군자야, 놀자~" 혜란이가 새 언네를 들고 친구를 부르는데 대답이 없으니 계속 목소리가 커집니다. 그동안 방안에선 엄마가 밭은 기침을 하면서 혜란아, 혜란아, 하는데 골목길 아이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방안 엄마 목소리는 점점 잦아듭니다.

생각하면 너무 슬픈 이야기이지요. 친구 이름이 '군자'였던 것, 인형을 옛스럽게 언네라 썼던 것은 생생한데 아이 이름이 혜란이였는지 혹은 군자 말고 딴 친구 이름이 혜란이였는지는 조금 혼란스럽네요. 얼마나 가난했던 시절의 이야기였을까요.

홀씨 먹고 사람이 된 인어 이야기는, 조금 독특해서 우리나라 동화 같지가 않았었어요.

어떤 남자가 바닷가에서 인어를 만나요. 인어는, 자기를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부탁합니다. 남자는 아주 담담하게, 어떤 마법도 격정도 없이, 자기 사는 곳으로 돌아와 이꽃 저꽃 홀씨를 섞어 인어에게 가져다준답니다. 그걸 먹고 인어는 사람이 되어 사내의 각시가 되었어요.

그런데 항상 신부의 마음 속엔 바다가 있었답니다. 항상 숨기고 있었고, 남자는 이제 아내가 바다를 잊었나보다 했지요. 어느날 양장점 앞을 지나쳤는데 집으로 돌아온 아내가 사라져버립니다. 남자는 그제서야 깨달았어요. 아내가 보았다는 양장점의 '짙은 하늘빛 옷감'이 실은 바다빛이었다는 것을. 그렇게 아내는 가버립니다. 둘 사이에 태어난 어린 아들이 있어요. 남자는 아이에게 바다빛 같은 것은 보여주지도 않고, 바다를 떠올리게 하는 것은 모두 피해가면서 아들을 키웁니다.

그러던 어느날 아이가 바로 그 '짙은 하늘빛'으로 푸른 바다를 그리고 있는 것을 보고는, 헛된 노력이었음을 깨닫고 아이와 바닷가 여행을 떠납니다. 내용이 좀 휑하니 이상하지요?

슈토름의 '호수'는 아마도 아시는 분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독일 낭만주의 작가의 짧은 단편인데, 계몽사 동화집에서 읽었고 뒤에 을유문화사에서 나왔던 두꺼운 책으로 다시 읽었던 듯해요. 너무나 순수했던 첫사랑을 훗날 다시 만난다는, 아주 단순한 줄거리인데 주인공 이름이 라인하르트와 엘리자베스였어요. 두 사람은 서로 좋아했지만 어찌어찌 하다보니(그런걸 어른들은 '인연이 아닌게벼' 하지요;;) 엘리자베스는 에리히라는 남자와 결혼하게 돼요. 둘이 나중에 다시 만나서... 어떻게 되었을까요? ^^


'호반'이라는 제목과 '첫사랑'이라는 제목, 두 가지로 나와있네요


아무튼 줄거리는 뭐 로맨틱 신파였습니다만 그 이름들이 어찌나 멋있게 들렸던지... 호숫가, 멋진 이름의 주인공들, 그런 것들이 겹쳐져서 여전히 햇살받고 반짝이는 호수처럼 아름다운 느낌으로 기억되고요.

슈토름의 단편과 같이 있었던 것은 아마도 '집 없는 천사'와 '인형놀음장이 폴레'였던 것 같네요. 꼭두각시 인형극단의 단장 아들인 신분 낮은 폴레와 어느 아가씨의 첫사랑 이야기였는데, 폴레가 '자투리 천'(이 말을 그 책에서 처음 보았어요)을 가지고 인형을 만들던 모습이 생각나고요, 좀 슬펐던 것으로 기억해요.

독일동화집에 나왔던 '황새가 된 임금님'은 얼마전 딸아이 책으로 다시 읽었어요. 빌헬름 하우프라는 작가의 작품인데 아주 유명해서 아마도 아이 책으로 읽으신 분들이 많을 것 같아요.

임금님이 마법사의 속임수에 넘어가 재상과 함께 황새가 되어버리고, 주문을 잊어버려서 헤매고 다니는. 둘은, 현명한 부엉이 아가씨 덕에 ‘무타불’이라는 주문을 기억해내게 되지요. 그리고 마법에서 풀린 임금님은, 역시 마법에서 되돌아온 부엉이 공주님과 결혼한다는 줄거리예요. 글의 배경이 바그다드이고, 주문이라든가 분위기가 아랍풍인데 어째서 이 이야기가 독일동화집에 있었을까 두고두고 궁금해 했었어요. 이번에 아이 책을 보면서 의문이 풀린 셈입니다.




독일동화집에는 저 이야기와 함께 또 다른 재밌는 이야기들이 잔뜩 있었는데요, 특히 하우프의 또다른 작품들인 꼬마 요리사 이야기(지금 검색해보니 '난장이 코'라고 되어있네요)와 '난장이 무크'는 어찌나 재미있게 읽었던지. 지금도 달밤이 되면 밖에 나가 버섯을 찾아야할 것 같은 기분;;이랍니다. ^^ 독특한 버섯으로 너무나 너무나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요리사와 마법에 얽힌 이야기였지요.

이 이야기들에는 '무스타파'라는 이름이 나왔는데 어째서 터키식 이름이 들어가 있었는지 역시 궁금했었어요. 아마도 하우프는 아랍풍, 혹은 오스만풍에 심취해있었는지도 모르겠네요. 저 이야기들은 모두 하우프가 어느 집 아이들에게 들려준 것이라고 하는데, 지금 언급한 것들 모두 묶어서 '사막의 카라반' '카라반 이야기'라는 두 종류 책으로 나와 있군요.

그리고 또 손꼽을 수 힘들 정도로 기억에 새겨진 것들이 많지만 --

조르주 상드의 ‘사랑의 요정’, 일곱 남매 이야기가 나오는 ‘사랑의 집’, ‘사랑의 학교’로 번역됐던 쿠오레, 이렇게 ‘사랑의~’로 시작되는 책들 이야기랑, 네덜란드라는 나라에 대한 환상을 심어주었던 ‘은 스케이트’, 일본 동화집에 나왔던 모모타로오와 잇손바시 이야기, 또 세계명작동요동시집(이게 아마도 맨 끝권이 아니었던가 싶어요)에 나왔던 마더구스의 동시들, 기타하라 하쿠슈의 드문 동시들... 이런 이야기는 다음에 또 해볼께요.



라인하르트 대신 엘리자베스가 에리히하고 결혼했었지. 은스케이트, 라스무스, 지노의 모험, 인형놀음장이 폴레도.... 

나중에 알게 된 것인데, <프란다스의 개> 뒤에 <뉘른베르크의 난로>가 있었잖아, 그런데 원본에도 그렇더라구. 놀라웠던 것은 <프란다스의 개>가 훨씬 분량이 짧은거야. 어릴 땐 그게 더 길어보였는데, 우연히 미술평론가 이주헌 선배네 집에 갔을 때, “선배 예전에 어떤 책에 계몽사 주황색 50권짜리 문고 이야기 쓰셨던데 저도 그책 너무 좋아했어서 선배 글보고 공감했어요”하니까. 이선배가 “그거 몇권을 우리 아버지가 번역했어요”하시면서, 서재 아래 문을 열더니 아직 보관하고 있는 20여권을 꺼내서 보여주셨어. 그때 ‘저거 뺏아오고 시프당’ 그런 웃기는 생각이 들었던 기억이 소로록...



음... 오빠가 댓글에다가 이상한 소스를 올린 것 같네... 지난번에 바람구두하고도 뉘른베르크의 난로 이야기를 막 했었는데. 

그 뒤에 있던 건 ‘뮤우플로우’였었고. 그런건 어케든 뺏어와~ ^^



아, 나는 며칠전에 은진미륵과 개미 생각을 했어. 한국현대동화집에 있던 건데 이너넷에서 찾아보니깐 역시 없어서... 아까워라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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