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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 가을, 홍콩] 홍콩에서의 첫날밤

딸기21 2000. 10. 1. 15:13

9월23일 토요일, 오전 8시50분 서울발 홍콩행 대한항공 603편에 몸을 실었습니다.
비행기에는 빈 자리가 더 많더군요. 9월에, 토요일 아침에 홍콩에 가는 사람은 많지 않은 모양입니다. 앞자리에서는 동남아인 부부가 어린 아들 둘을 데리고 탔는데 아이 둘이 3시간의 비행 동안 줄곧 떠들고 소리지르거나 아버지한테 야단맞아 울었습니다. 무지하게 시끄러웠다고 봐야죠.
이번 여행의 목적은 '관광'과 '휴식'이었습니다. 홍콩엔 보통 쇼핑하러들 간다지만, 저야 뭐 쇼핑할 돈이 없으니까요. 관광 계획을 잡아놓긴 했지만 불안한 것은 여전했습니다. 특히, 예약한 호텔의 바우쳐를 받지 못한 채로 출발한 거였거든요.

드디어 홍콩에 도착한 것은 오전 11시40분. 친절한 홍콩 사람들의 안내로 호텔에까지 오기는 왔는데, 아니나 다를까 역시나 예약이 돼 있지 않았습니다.



☆ 가이드북에 현혹되지 말 것을...

도리 없이 비싼 호텔에 방을 잡고, 셔틀버스를 타고 시내에 나왔습니다. 
홍콩공원에 도착했는데, 정말 별볼일 없는 곳이었습니다. '분수광장'이라기에 가보니 별로 크지도 않은 분수 하나가 덩그머니 놓여 있는 거였고, 거의 뭐 양재시민공원보다도 못한 수준이었습니다.
어쨌거나 당초 잡았던 계획대로 '피크 트램(Peak Tram)'을 타고 빅토리아 피크(Victoria Peak)에 올랐습니다. '피크 트램'은 말하자면, 땅에 붙어서 다니는 케이블카입니다. 30도가 넘어 보이는 급경사를 5분 넘게 올라가면 정상(Peak)이 나옵니다. 홍콩의 전망을 구경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곳이라고 여행가이드북에 써있었는데, 혹시 앞으로 홍콩여행 가실 일 있으시면 그런 가이드북에 절대 현혹되지 마십시오. 안 올라가도 됩니다. 올라가봤자 실망만 합니다. 
도시 전체가 거대한 쇼핑몰이라는 홍콩답게, 피크에 있는 것은 이상한 '믿거나 말거나 박물관'(너무 비싸서 구경 안 했음)과 레스토랑, 쇼핑센터 뿐입니다. 어쨌든 여기서 사진을 한두방 찍었습니다.

☆ 홍콩의 야경을 보다!

그리고 다시 피크 트램을 타고 내려와서 애드미랄티(Admiralty)라는 무서운 이름을 가진 곳으로 왔습니다. 
남은 밤을 어떻게 보낼까 고민하던 저는 어디 근사한 스카이라운지 같은 곳에 가서 혼자 분위기를 잡아볼까 궁리하면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9월 하순인데도 낮기온은 섭씨 29도. 밤이 되니까 좀 움직일만 했습니다. 어두워지니까 비로소 홍콩이 빛을 발하기 시작하더군요.
저는 홍콩섬 북쪽을 걷기로 했습니다. 지도에 나와 있는 컨벤션센터가 눈 앞에 보였습니다. 맞은 편에는 구룡반도. 한강 너비만 밖에 안 되지만 어쨌든 눈 앞에 있는 것은 바다였습니다. 바다 냄새도 났고요.

내친 김에 컨벤션센터까지 걸어가는데, 시멘트 제방 위에서 사내애 둘이 플래시로 비춰가며 뭔가를 구워먹고 있더군요. 신림동 녹두거리 앞 도림천 riverside가 생각나는 순간이었습니다.
컨벤션센터에 도착하니 미녀들이 줄을 이어 어디론가 가고 있길래 따라가봤습니다. 원래 제가 좀 우아하지 않습니까. 행렬을 따라가보니 '자선 보석경매'가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저랑 별로 상관 없는 경매라서, 자개(칠보?)로 만들어진 지구모형 따위를 잠시 둘러본 뒤 그랜드 하얏트 호텔 라운지에서 휴식을 취했답니다.

☆ 나는 너무 많은 것을 알아버렸다

아, 저는 홍콩에 도착한 첫날 너무 많은 것을 알아버렸습니다! 
홍콩이 얼마나 좁은 도시인지를요. 
중국 행정구역상의 홍콩은 구룡반도와 신계(New Territory), 여러 섬을 포함한 매우 넓은 지역이라고 하는데 보통 관광지로 찾는 홍콩은 구룡반도의 중심가와 홍콩섬만을 가리키는 아주아주 좁은 지역이더군요. 
낮에는 쇼핑몰 구경하며 적당히 카페테리아 같은 데에서 폼이나 잡다가 밤에 돌아다니며 야경을 감상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관광일텐데 왜 아무도 저에게 그런 얘기를 안 해준 겁니까.
도쿄가 무슨 지방 소도시인 줄 알고 하루 4건씩 취재약속을 잡아 점심도 못 먹고 전철역에서까지 뛰어다녔던 97년 초겨울이 생각났습니다. 그 악몽 때문에, 혹시나 이번 홍콩여행 스케줄도 너무 빡빡하지 않을까 걱정했더니...정말 기우였습니다.
지도상에 상당히 넓은 지역에 걸쳐져 있는 코스를 따박따박 걸어서 모두 돌아본 딸기는 트램(이건 정말 재밌습니다. 뒤에 따로 설명할께요)을 타고 호텔로 돌아왔습니다. 그렇게 '홍콩에서의 첫날밤'은 끝이 났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