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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케임브리지 중국사

딸기21 2004. 11. 17.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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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케임브리지 중국사
The Cambridge Illustrated History of China
 
패트리샤 버클리 에브리 (지은이) | 윤미경 | 이동진 (옮긴이) | 시공사 | 2001-04-25





책을 읽으면서 나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듯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까짓거, 재미없고 영양가 없는 책이라면 그냥 읽기를 포기하고 던져버리면 된다. 굳이 인내심을 시험해가면서까지 읽어야 하는 책이란, 대저 내용 자체는 꽤 괜찮거나 그럭저럭 쓸만한 편임에도 불구하고 번역이라든지, 내용 외적인 무언가가 맘에 안들어서 꾸역꾸역 참아가며 봐야하는 그런 책을 말함이니.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케임브리지 중국사', 거창한 제목에 '시공 아크로총서 2'라는 그럴싸한 브랜드네임이 붙은 이 책이 그 중의 한권이렷다.

같은 시리즈로 나온 '케임브리지 이슬람사'를 사면서 이 책을 곁다리로(다시 말하며 충동적으로) 구입한지 어언 몇년.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이라는 말처럼 책표지엔 컬러 도판들이 실려있다. 시공사는 유명한 출판사이고 이것은 그중에서도 '총서'라는 이름이 붙은 시리즈의 하나이니 필히 훌륭한 책이리라 생각하고 구입을 했고, 일본에 오면서 이 무거운 놈을 기어이 끌고 왔다. 

책값을 생각하니 안 읽고 넘기기엔 너무 아까워서 '의무감으로' 읽어나갔다. 선사시대부터 중화인민공화국까지, 말 그대로 사진과 그림을 잔뜩 실어서(그것도 대부분 컬러 도판으로) 제법 볼만하게 꾸며놨다. 말 그대로 '볼만하다'. 

다시 말하면 '읽을만한' 것은 아니다. 책의 내용에서 다소 맘에 안 드는 구석이 있긴 하지만(예를 들면 서구 제국주의 국가들의 치외법권 요구를 딱 서구인 입장에서 '인권 위주'로 설명한 것이라든가 신해혁명 이후 중국을 국민당과 장제스 중심으로 서술한 것 따위) 중국사를 재미나게 읽기에 꽤 괜찮은 책이다. 서술방식도 '총서'라는 이름에 걸맞게 정치사회경제문화를 망라하고 있어 통사 위주로 쭉 읽어내려가기에 무리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 대한 미디어 리뷰들을 읽어봤다. 뭐가 꼼꼼하고 성의있는 책이란 말이야.. 씨이... 저자의 저술은 성의있는 것이었는지 몰라도 적어도 번역이라든가 편집에선 무성의가 더 많이 눈에 띄었단 말이다.

내 아무리 도서훼손을 취미로 하는 사람일지언정, 적어도 글자가 들어있는 부분은 뜯어내거나 찢지 않음으로서 책에 대한 예의를 지키고 있거늘.. 나의 파괴노력이 없이도 낱장이 떨어져나가 자연사해버리는 것은 싫단 말이다. 게다가 두꺼운 책 가운뎃 부분은 (역시나 별다른 노동력이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쩍하니 갈라져 버렸다. 이 정도 제본이면... 이거이거 혹시 파본 아냐?

더 열 받는 것은 번역이다. 좀 치사한 것 같지만 시비를 걸고 넘어가자면. 

역자는 '일러두기'를 통해 친절하게 '강희제 이전에 나오는 인명은 한자로 표기했으며 그 이후에는 중국 발음으로 표기했다'고 써놨다. 외래어표기법에 따르면, 대개 신해혁명을 기준으로 해서 그 이전 인명은 한자 발음으로, 이후 이름들은 중국어 발음으로 쓴다. 굳이 '강희제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했던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저 '일러두기'는 책과 상관없는 것이었는지, 리훙장은 이홍장으로 쓰고, 캉유웨이는 캉유웨이로 썼다. 아마도 일러두기와 별개로 본문에서는 신해혁명을 기준으로 삼았거나(그렇다면 역자는 참으로 재밌는 사람이 아닐 수 없다) 짜깁기 번역을 한 것임에 틀림없다. 실제로 두 사람이 번역한 것으로 되어있는데, 앞부분에선 그나마 괜찮았던 번역이 뒷부분에 가면 황당해진다.

존 듀이는 중국의 청년들이 개방적인데 감명을 받아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학생들이 만장일치로 열렬하게, 특히 사회적 경제적 문제에 대한 근대적이고 새로운 사상에만 관심을 보이고 기존 질서와 현 상황을 중시하지 않는(사실상 그만큼 언급되지 않는) 국가는 세계에 없는 것 같다". 


이게 대체 뭔 말이래?

'간부들은 그들이 정실 추구자들로부터 받는 고기 때문에 살이 찌곤 한다'

정실 추구자들... ㅋㅋ 말 뜻이야 알아들었지만, 짜증난단 말이다, 저런 문장들. 오자가 많은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이탈리아의 투스카니 대공을 굳이 영어식으로 '터스커니 대공'이라고 쓴 책은 처음 봤다. 매카트니는 영어 발음을 살리려던 것이었는지 모르지만 '머카트니'로 해놔서, 영어 철자를 보고서야 알 수 있었다. -_-

역자가 아닌 저자의 문제이겠지만, 청대까지의 아름다운 예술품 사진들과 달리 현대 중국 서술부분에 들어와서는 유독 선전책자에서 뽑아낸듯한 질낮은 사진들이 깔려있다는 점도 눈에거슬렸다. 시시콜콜 시비를 거는 이유는? 책이 너무너무 미워서라기보다는, 역시나 책값이 아까워서다. 이 정도 두께에 이 정도 가격의 책을 포켓북으로 사는 사람은 없다. 이런 종류의 책은 아마도 '소장용'으로 구입하는 사람이 대부분일 것이다. 소장용이라 하기엔 옥의 티가 너무 많아서 기분이 좀 나빠져 버렸다. 


잡담을 좀 하자면.

오늘 이래저래 시공사가 내 눈에 많이 들어온다. 알라딘 첫페이지엔 시공사 이벤트(지펠 냉장고에 트롬세탁기라니 굉장한걸) 광고판, 또 어느분의 블로그에는 아티누스가 폐점한다는 글이 올라와 있고, 어제 도착한 어술러 르귄 '바람의 열두방향'을 읽어보려니 시공사에서 나온 그리폰북스다. 그런거 잘 안 보고 책을 사는데, 우연의 일치다.

나는 시공사 책들을 별로 안 갖고 있고, 시공사라는 출판사를 좋아하지도 않는다. 꽤 이뻐보이는 책들을 내는 곳이고 제법 잘나가는 출판사중의 하나라는 점 정도는 알고 있다. 무슨 책들을 냈었지, 시공사에서? 

그리폰북스라면 두어권 갖고 있다가 소리님 줬고(소장하고픈 마음은 없었던 책들이었다) 그 밖에 디스커버리 총서 몇권을 갖고 있다. 그나마도 내가 산 것은 아니지만. 아크로 총서 '중국사'와 '이슬람사', 그리고 이번에 산 '바람의 열두방향' 정도가 아마도 내가 직접 구입한 시공사 책들의 전부일 것이다. 그러니 나하고 취향 면에서 아주 안 맞는 출판사임에 틀림없다.

왜 안 좋아하느냐. 나는 다독속독이 안 되는 인간이라서, 책을 볼 시간이 늘 모자란다(그렇다고 프리셀과 지뢰찾기를 중단할수는 없다). 지난 몇년간 소설책도 거의 못 읽었다. 요사이 시간이 좀 나서 소설을 읽어볼까 생각하고 있는 중이지만 그동안에는 일 하는데에 필요한 책들 말고는 읽지를 못했다. 
그러니 시공사에서 많이 내는 '잡학상식'류의 책들에까지 손을 댈 능력과 에너지가 없었다. 나는 시공사 하면 디스커버리총서의 이미지가 너무 강해서 '잡학상식 출판사'로 단정지어버렸고, 그러니 이 출판사의 책을 읽을 기회는 별로 없었다. 교보문고를 지나가다보면 할인판매 단골메뉴로 올라와 있는 조그만 판형의 디스커버리 총서를 자주 볼 수 있었다. 책 참 이쁘고, 표지 구경하면 재미난다. 하지만 굳이 사고싶지는 않았던 것이, 내가 읽은 그 문고판 책들은 번역이 정말 맘에 안 들었다. "이 책은 외국책이니 외국 문체로 읽어주십쇼" 하는듯한 어색한 번역들. 때로는 외국문체가 외국스러워서 로만치크하게 보일 때도 없지는 않지만 말이다.

뭐 내가 굳이, 청렴한 아버지 땜에 축의금도 몰래 받아야 했다는 어느 형제들 때문에 시공사를 평가절하하는 것은 아니다. 아티누스의 폐점 소식은 나한테도 뉴스라면 뉴스다. 비록 나는 아티누스에서 책을 산 적은 한번도 없으며 아티누스보다 그 옆 카페의 안위가 더 걱정되는 편이긴 하지만(이 카페에서 서비스로 주는 와인빙수는 참 맛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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