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잠보! 아프리카

'자매결연'도 윤리적으로

딸기21 2010. 9. 30. 20:11


S African academics allege that Ben-Gurion university has collaborative projects with the Israeli army [REUTERS]



남아프리카공화국과 이스라엘의 대학 간에 이색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요하네스버그 대학교(UJ)가 이스라엘 벤구리온 대학 측에 “우리가 내놓는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하면 결연관계를 끝내겠다”고 통보를 했습니다. UJ는 29일 자신들이 원하는 ‘조건’을 담은 문서를 벤구리온 대학에 전달했다고 알자지라방송이 보도했습니다.
조건 중에는 벤구리온 대학이 팔레스타인 대학들과 함께 연구프로젝트를 수행할 것, 그리고 이스라엘의 대팔레스타인 군사활동과 팔레스타인 자치지역에 대한 점령통치를 지원하는 모든 직·간접적인 활동을 중단할 것 등이 들어있다고 합니다.

UJ는 이날 발표한 성명에서 “두 대학 간에 교환된 양해각서(MOU)를 개정해 팔레스타인 대학들이 우리와도 직접적으로 연구 연계를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또 “벤구리온 대학이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군사적인 활동을 할 경우 그들과 어떤 활동도 함께 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우리 대학의 학문자유위원회에서 벤구리온 대학의 군 지원 여부를 감시할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UJ는 이런 조건들을 내놓고는 6개월의 시한을 제시했습니다. 내년 4월1일까지 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양측의 협력은 자동적으로 끝난다는 것이죠.

겉보기엔 두 대학 간의 일이지만, UJ의 요구사항에서 보이듯 그 속에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 통치에 대한 반대, 대학과 군의 밀접한 협력을 비롯한 이스라엘 전반의 ‘군사국가화’에 대한 비판, 대학기구와 학문을 비롯한 모든 영역에서 ‘윤리적 판단’을 행동의 가치기준으로 삼으려는 노력 등이 다 들어있습니다.


“인간 존엄성의 문제”

UJ의 아담 하비브 부총장은 알자지라 방송과 인터뷰를 하면서 이번 결정은 두 가지 원칙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첫째, 억압받는 사람들 편에 설 것임을 스스로 확인하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두번째, 인간 존엄성을 높이고 화해를 위한 환경을 만들어내고자 한다는 것이다.”
하비브 부총장은 “우리는 벤구리온 대학이 이스라엘 군과 협력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으며, 그 대학이 연구한 정부 정책들이 결과적으로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에 대한 차별로 이어진다는 점 또한 알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팔레스타인연대위원회(PSC)의 살림 발리 선임연구원은 알자지라방송에 “UJ의 움직임은 사회정의를 위한 교육기관들의 투쟁에 전례 없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습니다. 팔레스타인 측은 이스라엘에 대한 이와 비슷한 ‘보이콧’이 확산돼 자신들에게 힘이 되어주길 바라는 분위기라고 합니다.

UJ가 ‘정치적으로 올바른 협력관계’를 선언하고 나온 데에는 이 대학이 갖고 있는 상징성, 나아가 남아공이 갖고 있는 상징성이 들어있습니다.

UJ는 예전에는 란드 아프리칸스 대학(Rand Afrikaans University)이라 불리던 학교입니다. 아파르트헤이트 정권이 무너지기 전까지는 백인들만 입학이 허용되는 학교였지요.
란드 아프리칸스 대학과, 소웨토(백인정권 때 강제로 만든 흑인 거주지역)의 한 흑인 대학이 합쳐져 2005년 현재의 UJ가 출범했습니다.

UJ가 벤구리온 대학과 결연관계를 맺은 것은 지난해 8월입니다. 두 대학은 학술 협력과 연구진 교환, 담수화 연구·미세해조류 연구 등 연구협력을 하기로 하고 MOU를 교환했습니다.

하지만 UJ가 벤구리온 대학과 협력한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거센 비판이 일었습니다.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데스먼드 투투 주교를 비롯해 주요 인사 250여명이 UJ를 향해 이스라엘 기관과의 협력을 끝내라고 촉구했지요. 특히 벤구리온 대학이 이스라엘 군의 군사프로젝트에 협력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비판은 더욱 커졌습니다.
투투는 지난 26일 남아공 일간지에 기고해 “이스라엘의 대학들은 이스라엘 체제의 일부”라면서 “팔레스타인인들은 학교에도 갈 수 없는데 이스라엘 대학들은 그 사이 점령을 계속 유지하기 위한 연구와 기술개발, 논의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스라엘 문제에 남아공이 무슨 상관이 있기에 이렇게 나오냐고요?

팔레스타인 사람들 못잖게, 남아공 흑인들에게도 이스라엘은 증오와 분노의 대상입니다.
남아공 백인정권은 과거 아파르트헤이트 시절 이스라엘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협력으로 남아공이 핵 개발에 나섰다가, 나중에 자발적으로 포기했던 사실은 잘 알려져 있죠.

두 나라는 온 세상에서 음으로 양으로 못된 짓을 참 많이 했었습니다. 둘 다 미국의 암묵적인, 혹은 노골적인 지원을 받으면서 세계에서 미국의 이해관계를 지켜주는 경비견 역할을 했었지요. 이스라엘은 중동에서, 남아공은 아프리카에서 말입니다. 예를 들면 이스라엘은 냉전 시기에 중동 아랍국가들에서 민주화와 사회주의 바람이 일지 못하도록 막는 역할을 하면서 소련의 영향력이 중동에 들어오지 못하게 했고요. 남아공은 주변 아프리카 국가들에 좌파 성향의 민족주의 정권이 들어서지 못하게끔 공작을 했죠.



http://sfpr.uwaterloo.ca


남아공과 이스라엘은 또한 요즘 이라크전, 아프가니스탄 전쟁으로 많이 거론됐던 민간군사회사(PMC)의 원산이기도 했습니다. 남아공의 용병회사들은 세계 곳곳에서 미군을 떠받쳐주거나 제국주의적 수탈을 돕는 역할을 했고, 이스라엘은 암살 공작과 무기 수출 등으로 세계에서 암적인 활약을 했습니다.

특히 남아공 사람들은 이스라엘이 미국을 대신해서 백인정권을 지원했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파르트헤이트 시절에도 남아공에서는 이스라엘 제품 불매운동 등 여러 보이콧이 펼쳐진 바 있습니다.

이스라엘과의 학문적 교류조차 끊으려고 하는 보이콧은 남아공에서만 벌어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2003년 영국의 몇몇 대학들이 이스라엘 연구기관과의 결연을 끊는 것을 추진했다가 무산됐고요. 2005년에는 영국 대학강사협의회에서 이스라엘 하이파 대학과 바르 일란 대학과의 연계를 끊어야 한다는 투표를 하기도 했습니다.

미국에서는 하버드 법대의 앨런 더쇼위츠 교수가 비슷한 운동을 벌였다가 위협을 받고 그만둔 적 있습니다. 미국과 영국에선 그런 시도를 하기만 하면 유대계 단체들이 나서서 ‘반유대주의자’로 몰아붙이기 때문에 실행에 들어가기는 쉽지 않았던 거죠.

남아공의 백인정권이 무너지는 데에는 흑인들의 투쟁에 더해서 이에 공감한 세계 시민들의 캠페인, 거기서 생겨난 국제적인 인종차별 철폐 운동, 결국은 거기에 등떼밀린 미국과 유럽의 금수조치 등이 있었습니다. '국제적 압박'의 힘을 아는 남아공에서 이스라엘에 대한 비판이 나오고 있다는 것이 더욱 반갑고 의미심장하게 보입니다. 무엇보다 팔레스타인에서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은, '중동판 아파르트헤이트'니까요.

UJ의 움직임이 이스라엘의 만행에 다시 한번 경종을 울리고, 이스라엘인들에게 반성의 계기를 만들어줬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