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얘기 저런 얘기/여행을 떠나다

아프리카, 말하기 힘든 여행에 대한 재미없는 시작

딸기21 2006. 9. 29.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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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를 운 좋게 세번이나 다녀오게 됐다. 이집트(북아프리카)를 빼고도 다섯 나라다. 이번에 방문한 곳은 남아프리카공화국과 케냐. 사실 아프리카 갔다왔다고 말하려면 이 두 나라는 가봐야 하는데(그 전에 내가 가봤던 토고, 시에라리온 이런 나라들로는 '명함'을 내밀기가 힘들다;;) 기회가 생겼으니 얼씨구나 좋아라 했다. 


이번 출장은 회사에서 벌어진 자잘한 에피소드?들 때문에 기분이 좀 언짢은 부분도 있었고, 다녀와서도 개운치가 못하다. 하지만 출장 아닌 '여행'으로 생각하고 보면 '감격 100%의 여행'이었다. 다만 그것을 말로 설명하기가 힘들다는 얘기다.


초원의 사파리, 마른 호수 바닥을 달리는 기분, 회오리 기둥과 신기루, 사자의 사냥, 레이저빔처럼 나를 쏘아버린 은하수, 희망봉의 평원에서 바람을 맞던 순간, 고래의 도약, 펭귄 바닷가, 흑백/빈부에 따라 두 개의 세상으로 나뉘어버린 남아공, 강도가 무서워 해진 뒤에는 돌아다닐 수도 없었던 요하네스버그, 도자기 화로 속 숯불이 빛나고 있던 나이로비의 까페, 그런 것들을 어떻게 말로 생생히 전달할 수가 있단 말인가.



남아프리카공화국 최대 경제도시 요하네스버그의 샌튼 거리에는 흑인과 백인 국민들 모두에게 영웅으로 추앙받는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의 이름을 딴 만델라 스퀘어라는 광장이 있다. 이 광장 주변에는 서울 강남 뺨치는 호화 쇼핑몰과 레스토랑들, 금융기관과 호텔들이 몰려 있다. 


지난 25일 요하네스버그 구시가지에서 북쪽으로 조금 벗어나 있는 샌튼을 찾았다. 1990년대 이래 기업 활동이 옛 도심에서 이곳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이 곳은 백인 상류층과 흑인 신중산층, 중국인과 인도인 등 유색인종들, 관광객들이 한데 모이는 호화로운 상업지역으로 변신했다. 흑백 분리의 산물이라고도 볼 수 있는 샌튼은 이제는 2010년 월드컵 개최를 앞둔 남아공의 경제개발 붐을 상징하는 새로운 도심이 돼 있었다.

흑인도, 백인도 "정치 대신 경제"

2년 가까이 계속되고 있는 고(高) 유가, 그에 연동된 금·은·백금·구리 등 천연자원 가격 급등 덕에 남아공 증시는 호황을 구가하고 있고, 남아공의 화폐인 랜드도 강세를 보이고 있다. 남아공은 과거 백인정권 시절 인종차별로 국제사회의 지탄을 받고 제재를 당할 적에 석탄에서 기름을 추출하는 액화기술을 개발했다. 고유가 시대에 이 기술이 효자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어,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도 견학을 올 정도다. 


1990년대 연간 10% 이상을 기록했던 인플레는 2000년대 들어와 4~5% 수준으로 안정됐다. 반면 부동산 가격은 치솟고 있다. 유럽과 아시아로부터의 이주민이 끊이지 않는 남단 케이프타운의 경우 집값 상승률이 세계 최고 수준이다. 케이프타운에 거주하는 교민 이강하(38)씨는 "남아공의 발전은 정말 하루하루가 다르다"면서 "2년전 여기 왔을 때만 해도 살만한 물건이 없었는데 요새는 남아공 자체 브랜드도 많고 공업 제품 질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샌튼의 만델라 동상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던 흑인 청년 에드가(28)와 마이크(33)는 "외국 투자도 많아진다고 하고, 나라가 발전한다는 걸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모두들 우리를 주시하고 있다는 걸 안다"면서 "빈부격차 같은 문제가 크긴 하지만 미래에 대한 희망이 커지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백인들이 떠나간 요하네스버그 구시가지 스몰(Smal) 스트리트에는 PC 트레이닝 & 비즈니스 컬리지라는 기술학교가 들어섰다. 아직까지 인구 80%를 차지하는 흑인들의 교육수준은 높지 않다. 정부는 유.소아 무상의료, 흑인 교육 확대 등을 중점적으로 추진하고 있으며 사설 기술학교들도 늘고 있다. 교민 허문준씨는 "젊은 세대들의 교육열이 높기 때문에 1~2세대가 지나면 강한 나라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백인 상권과 흑인 거리, 인도계가 장악한 오리엔탈 플라자 주변 지역과 차이나타운 등 `무지개 국가'라는 별명답게 요하네스버그는 다양한 색깔로 모자이크되어 있다. 1994년 흑인정권 출범 이후 12년, 이제 사람들의 마음은 정치보다 경제로 확실히 이동해간 듯 했다.


요하네스버그 신도심 샌튼의 넬슨만델라 스퀘어.
왼쪽편에 있는 동상이 할아버지랍니다. 이번 출장 통해서,
할아버지가 얼마나 위대한 분인지 다시 한번 절감.
그런데 할아버지 동상이 굽어보는 광장에 백인 중산층과 관광객만 있다는 건
누가 뭐래도 아이러니로 느껴지더군요.


건물들 마구마구 올라가고 있는 샌튼의 모습


케이프타운 센츄리시티의 화려한 쇼핑몰
(서울에서도 강남 같은 곳 안 가보는 저에게는, 간만의 '도시 나들이' 였답니다)


요하네스버그의 두 얼굴, '흑인 마을' 알렉산드라의 빈민가입니다.


모잠비크와 보츠와나 등 남아프리카개발공동체(SADC)를 축으로 남아프리카의 발전을 주도하고 있는 것이 남아공이라면, 아프리카 동부에서는 케냐가 우간다 및 탄자니아와 동아프리카경제공동체(EAC)를 만들어 개발 붐을 이끌고 있다. 케냐 수도 나이로비의 조모 케냐타 공항에서 시내 들어가는 뭄바사 로드는 차량으로 붐비고, 하일레 셀라시에 교차로를 지나 의사당과 관공서가 몰려 있는 다운타운은 번화하기가 아시아의 어느 수도 못지않다. 


`동물의 왕국'은 없다


나이로비의 랜드마크라는 케냐타 컨퍼런스 센터를 중심으로 한 도심은 개발도상국의 대도시답게 매연으로 가득 차 있다. 이 곳에서 자연 다큐에 나오는 것 같은 `동물의 왕국'을 보려면 멀리 외곽으로 대여섯 시간은 차를 타고 나가야한다. 삼성전자 나이로비지점의 박한배 지점장은 "나이로비에서 돈 벌어 지방에 있는 자식들을 공부시키는 케냐판 기러기아빠들도 많다"고 현지인들의 교육열을 소개했다. 


발전의 길에 들어선 케냐에서 사업 약속이나 회의에 늦는 `아프리칸 타임'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케냐는, 공항에서 비자 받을 때도 그랬고, 절차가 제대로 진행된다는 느낌. 경험상 가나 Ghana 는 절차가 진행은 되는데 무쟈게 느리고, 토고 Togo 는 절차를 진행 안 시키고 뇌물을 뜯는다...고나 할까)


나이로비의 번화가-- 매연 때문에 숨을 쉬기가 힘들었어요;;


옥수수처럼 생긴 건물은 조모 케냐타 컨퍼런스 센터. 나이로비의 상징 같은 건물이고요,
조모 케냐타는 케냐를 건국한 초대 대통령의 이름이랍니다.



두 달 전 폴 울포위츠 세계은행 총재는 미국 워싱턴 헤리티지재단에서 연설하면서 "아프리카는 코너를 돌아나왔다"는 말을 했다. 빈곤, 질병과의 싸움이 성과를 보이기 시작하면서 아프리카의 개발이 본궤도에 오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는 발전 도상의 아프리카가 "1960년대 높은 교육열과 근면성으로 경제를 일군 남한과 닮았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이 재섭는 자가 우리랑 아프리카를 언급하는 것이 어째 좀 거시기하네? 칭찬은 고맙다만) 

특히 동부, 남부 아프리카의 개발 붐은 세계적인 관심거리다. 이집트 남쪽 인도양에 면한 수단은 석유 수출을 통해 번 돈으로 대규모 개발 프로젝트들을 시작했다. 수도 카르툼에는 연일 건물이 들어서고, 정보통신(IT)기술 붐이 시작됐다. 다르푸르 지역의 무슬림-기독교 분쟁으로 국제사회의 눈총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도 경제 전반은 급상승 중이다.

부패, 에이즈 장애 넘어야

가난의 대명사였던 남서부 앙골라는 나이지리아에 이어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제2의 산유국으로 부상했다. 확인된 석유매장량 250억 배럴, 매장량으로만 치면 세계 13위다. 석유수출구기구(OPEC)는 수단과 앙골라를 회원국으로 가입시키는 논의를 진행 중이다. 앙골라는 최근 OPEC 회의를 유치, 수도 루안다에 대형 컨벤션센터를 짓기 시작했다. 아직 빈곤선 이하 인구가 전체의 70%에 이르는 빈국이지만 지난해 경제성장률은 무려 19.1%에 이르렀다. 

1990년 남아공에서 독립한 나미비아는 유럽, 미국 등지에서 온 부자들의 휴양지로 이름이 알려지면서 관광수입이 급격히 늘고 있다. 보츠와나와 모잠비크도 1990년대 이래 꾸준히 경제개발을 추진해온 덕에 빈곤과의 전쟁에서 성과를 보이기 시작했다. 

물론 아직까지 남아있는 문제들도 많다. 가장 큰 사회불안 요인은 빈부격차와 부패다. 케냐의 경우 2001년 국제통화기금(IMF)이 정부 관리들의 부패를 이유로 차관 제공을 일시 보류했었고, 최근에는 세계은행이 같은 이유로 원조를 중단하는 사태를 만났다. 

음와이 키바키 대통령이 이끄는 정부는 부패 청산을 기치로 내걸고 있지만 가시적인 성과가 나오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또 대부분 국가들이 인프라 부족과 치안 불안 같은 고질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에이즈로 인해 노동력이 잠식되고 사회적 비용이 크다는 것도 문제다. 그러나 일단 시동이 걸린 만큼 아프리카의 빈곤은 바닥을 쳤으며 발전의 `속도'가 문제가 될 것이라고 외신들은 내다보고 있다.




■ DRC를 잡아라

신흥 석유부국으로 떠오른 앙골라와 함께 아프리카에서 서방 투자자들의 집중적인 관심을 끌고 있는 곳은 콩고민주공화국(DRC)이다. 아직까지도 `자이르'라는 옛 이름으로 더 익숙한 DRC는 아프리카 중앙에 234만㎢의 넓은 땅을 차지하고 있다. 

1994년부터 2002년까지 르완다, 부룬디 등 주변 국가들과 함께 격렬한 유혈 분쟁을 벌였던 DRC는 지난 몇 년 동안 전쟁의 참화에서 벗어나 민주주의-시장경제 체제를 정착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내전의 극심한 혼란이 가신 것과 함께 DRC는 막강한 성장 잠재력으로 서방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확인된 석유매장량은 15억 배럴, 중동 국가들이나 인근 앙골라 등에 비하면 많은 것은 아니지만 다이아몬드 구리 코발트 우라늄 아연 같은 다른 광물자원들이 많다. 무려 9개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는 점에서, 아프리카의 전략요충지로 정치적 중요성도 크다. 콩고강이 흐르고 있기 때문에 사하라 남쪽 주변 아프리카국가들과 달리 가뭄 걱정도 적은 편이다. 

내전 종식 뒤 조셉 카빌라 대통령이 이끄는 거국 과도정부는 국가 재건 과정을 무난히 진행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 7월30일 역사적인 민주선거를 치렀지만, 아직 대선 결과는 발표되지 않고 있다. 결과에 따라 정국 향방이 달라질 수 있겠으나 카빌라 대통령이 우세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정불안이 가라앉으면서 서방 기업들은 DRC를 향해 쇄도하고 있다. 영국 BBC방송은 DRC 남부 광업 중심지 루붐바시에 외국 자본이 갑자기 밀려들고 서양인 광산기술자들이 넘쳐나 지역민들의 원성을 살 정도라고 보도했다. 

국내에서도 몇몇 기업들이 DRC 진출을 노리고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살고 있는 한 교민은 "한국의 지인들로부터 DRC의 구리를 채굴하려 하니 도와달라는 연락을 받았다"고 전했다. DRC와 한국은 1963년 국교가 수립됐으나 관계가 소원했다. 지난해 3월 카빌라 대통령이 방한해 투자보장협정을 체결한 뒤 킨샤사 상주공관이 생겨 교류가 활발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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