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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반정부 시위로 또다시 대규모 유혈사태가 일어났다. 이슬람 시아파 명절인 아슈라를 맞아 테헤란 등지에서 격렬한 시위가 벌어지자 진압병력이 시민들에 발포, 10명이 숨졌다. 개혁파 지도자 미르 호세인 무사비의 조카가 저격수에 암살되면서 시위가 더욱 격해진 가운데, 희생자의 주검을 도둑맞는 일까지 벌어졌다. 6월 대선 때 미온적인 비판만 했던 미국은 이번에는 즉시 이란 강경파 정부를 비난하고 나섰다.
반년만에 최악 유혈사태
프레스TV 등 현지 언론들은 27일에 이어 28일에도 반정부 시위대가 테헤란 시내 중심가를 점거하고 경찰과 충돌했다고 보도했다. 당국이 ‘3명 이상 집결금지령’을 내린 이맘후세인 광장 등에 시위대 수천명이 나와 경찰과 대치했으며, 일부 시위대는 경찰차에 불을 붙이고 “(최고지도자) 하메네이에 죽음을!”이라는 구호를 외쳤다. 유튜브에 공개된 동영상에는 시위대가 테헤란 시내 경찰서 한 곳을 완전히 불태우는 모습 등이 담겨 있다.
당국이 강경진압에 나서면서 희생자가 속출했다. 시위대는 진압병력이 시민들에 총을 쏴 테헤란에서 5명, 북서부 타브리즈에서 4명, 남부 시라즈에서 1명 등 27일 하루에만 최소 10명이 숨졌다고 전했다. 타브리즈는 무사비의 정치적 고향이고 시라즈 역시 무사비 지지가 높은 곳이다.
테헤란 경찰은 “시위대 5명이 사망했다”고 밝혔지만 발포 사실은 인정하지 않았다. 국영TV는 당국의 발표를 인용해 “시위대 5명이 테러범들에 숨졌고, 반정부조직 ‘인민무자헤딘’ 대원 10명이 사살됐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AP통신 등 외신들은 시위대에게서 입수한 처참한 현장 사진들을 공개했다. 머리에 총을 맞은 듯 피투성이로 쓰러진 남성, 불 탄 자동차, 시위대와 경찰의 육박전 장면 등이 이번에도 인터넷을 통해 퍼져나갔다.
(어제 외신 사진을 찾아보다가... 너무 끔찍한 장면을 그만 보고말았다. 그런 사진은 물론 신문에는 싣지 않는다. 오늘 아침 H일보가 모자이크 처리를 해서 무리하게 넣은 것을 빼면, 다른 신문들은 모두 '시각적 충격이 적은' 사진으로 대체했다. 여담이지만 영어로는 graphical 이라는 단어가 나오는 경고가 붙어 있으면 '끔찍한 사진'이라는 뜻이다. 조심하지 않으면 시각적 충격이 오래 갈 수도 있다.)
‘아슈라의 순교자'
27일은 1300년 전 예언자 무하마드의 손자 후세인이 이슬람 주류파(수니)에 맞서다 오늘날의 이라크 케르발라에서 살해된 날이다. 후세인과 그 아버지 알리를 추종하는 시아파에게는 ‘순교’를 기리는 최대의 명절이다. 이란 정권은 전쟁 시에도 아슈라에는 전투를 중단할 정도로 조심해왔으나, 이번에는 시민들에게 발포를 서슴지 않았다. 신정체제의 붕괴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는 방증이다.
개혁파 대선후보 중 하나였던 메흐디 카루비는 웹사이트에 “우리 종교체제에 무슨 일이 일어났기에 이런 날 무고한 시민들에게 총을 쏘는 일이 생겼단 말이냐”며 정부를 맹비난했다.
27일 숨진 이들 중 한명은 무사비의 조카 세예드 알리(43)였다. 국영TV는 “알리는 알수 없는 누군가에게 살해됐다”고만 보도했다. 그러나 프랑스에 머물며 무사비 측과 긴밀히 연락해온 영화감독 모흐센 마흐말바프는 “알리는 다른 희생자들과 달리 저격수에 살해됐다”며 “무사비를 위협하려는 암살로 본다”고 말했다. 시위대는 알리를 ‘아슈라의 순교자’라 부르기 시작했다.
28일에는 알리의 시신이 사라지는 일까지 일어났다. 알리의 동생 레자는 “시내 병원에 안치돼 있던 형의 주검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앞서 경찰은 “알리의 사망 경위를 조사할 것”이라 밝혔으나 당국을 믿는 이들은 거의 없다. 보안당국이 진상조사와 추모행사를 막으려고 주검을 빼돌린 것으로 무사비 측은 보고 있다.
백악관, 이번엔 즉각 비판
경찰은 1979년 미대사관 인질사건 때 중재에 나섰던 반정부 인사 에브라힘 야즈디를 28일 아침 전격 체포했으며, 개혁파 원로인 모하마드 하타미 전대통령 측근들도 잇달아 잡아들였다. 개혁파 웹사이트는 최소한 7명 이상의 야당인사들이 붙잡혀갔다고 전했다. 그러나 탄압 속에서도 시위는 이슬람 성지 쿰과 남부 이스파한, 시라즈, 나자파바드, 바불 등지로 퍼지고 있다. 지난 20일 타계한 개혁파 성직자 알리 후세인 몬타제리의 고향인 나자파바드에서는 시위가 격해져 당국이 군법 적용 등 사실상의 계엄을 선포했다. 강경-유화 정책을 써가며 나름 유연하게 체제를 유지해온 이란 신정이 돌이킬 수 없는 균열의 길을 가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6월 대선 부정선거 때 이란 비판을 삼가 눈총 받았던 미국은 이번에는 즉시 강경진압을 비난했다. 마이크 해머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대변인은 “보편적 권리를 요구하는 시민을 폭력적으로 진압한 것을 강력 비난한다”는 성명을 냈다. 프랑스와 독일, 유럽연합(EU)도 이란 정부를 강력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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