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타르타스 통신은 러시아를 비롯해 키르기스, 우즈베키스탄, 벨로루시 등 집단안보조약기구(CSTO) 소속 7개국 정상이 이날 모스크바에 모여 신속대응군 창설에 합의했다고 보도했다. 러시아 공수부대를 주축으로 1만명 규모가 될 이 신속대응군은 역내 분쟁, 테러, 마약밀매 등 조직범죄에 공동대처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통신은 전했다.
전날 키르기스는 러시아로부터 20억달러 이상의 원조를 받는 대신 수도 비슈케크 인근 마나스 공군기지의 미군을 내보낼 것이라 밝혔었다. 이 곳은 아프간전 개시 이래 미군이 군수품 수송기지로 삼아왔던 곳이다. 러시아는 새로 창설될 신속대응군 기지로 마나스를 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코밑 미군을 내보내고 자기네 군사기지까지 챙기는 일석이조를 노리고 있는 것. 러시아는 또 벨로루스에도 원조를 약속하며 미사일기지 유치를 제안했다. 벨로루시와 인접한 폴란드, 체코에 신설될 미군 미사일방어(MD) 기지를 의식한 조치임이 분명하다.
지난해까지 흥청이던 러시아 경제는 유가 하락과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 때문에 위기를 맞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도 러시아가 주변국들에 ‘군사적 우산’을 다시 펼쳐들고 나선 것에 대해 해석이 분분하다.
AP통신은 “러시아는 미국에 맞서 유라시아에서 영향력을 재확인하고 싶어한다”고 분석했다. 미국은 아프간전을 계기로 중앙아시아 여러 곳에 발을 들였는데, 러시아는 이를 매우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우즈베크의 미군 보급기지는 2005년 미-우즈베크 간 관계가 악화되면서 폐쇄됐지만 키르기스 기지는 남아있어서 러시아의 눈엣가시가 돼왔다. 이 기지가 폐쇄되면 미국은 아프간 북부 보급로가 끊겨 절박한 처지가 될 것이 뻔하다. 오바마의 아프간 증파 계획에도 차질이 불가피해진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은 4일 기자회견을 갖고 “러시아와 (옛소련권) 동맹국들은 미국의 아프간전을 도울 준비가 돼 있다”면서도, 미국이 대러시아 정책을 바꿔야만 협력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이는 동유럽 나토 확대, MD기지 배치 등을 멈추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AP는 “크렘린이 오바마에 보내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중앙아시아로부터의 도움을 원한다면 먼저 러시아와 상의하라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중앙아시아 뉴스사이트 유라시아넷은 “집권 초반인 오바마 정부의 기세를 눌러 유라시아 복판에서 미국이 공세적으로 나오지 못하게 하려는 목적"이라고 보도했다.
일부 언론들은 18~19세기 러시아와 영국의 중앙아 쟁탈전에 비유, “미-러 간 ‘그레이트 게임’이 재연되려 한다”고 보도했다. 로이터통신은 “러시아는 오바마를 상대로 위험한 게임을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미국 카네기평화재단의 알렉세이 말라셴코 연구원은 “지금은 오바마가 전임 행정부의 강경노선에서 탈피해 냉전시절의 적들과도 대화하려고 나선 시점”이라면서 “러시아는 시비를 걸기엔 최악의 시기를 골랐다”고 평했다.
러시아가 아프간전에 개입하려 한다는 분석도 나왔다. 이슬람 극단주의가 퍼지면 미국보다 먼저 피해를 입는 쪽은 러시아다. 러시아는 1979년 아프간을 침공했다 10년간 피를 흘리고 물러난 전례가 있어, 아프간 발(發) 혼란이 확산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일부 전문가들은 “크렘린은 이슬람권의 반발을 사온 미국과 서방보다는 러시아, 중국, 중앙아 국가들이 공조해 아프간의 안정을 돕는 편이 더 효과적일 것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며 “아프간 문제를 미국 주도가 아닌 역내 다자간 협력체제를 통해 풀고자 하는 것이 러시아의 구상”이라고 지적했다. 신속대응군 창설과 키르기스 미군기지 폐쇄는 이같은 목표와도 관련된 다목적 포석이라는 것이다.
지난해 러시아의 그루지야 공격을 지지해주지 않은 CSTO 국가들을 다시 모스크바 밑에 줄세우려는 부차적인 목적도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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